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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이 맞지 않다? 사리가 맞지 않다

조평통 부위원장은 부총리·국정원장·통일부 장관과 유사, 대외 업무 참여하지 않는 김양건 지목은 번지수 잘못 짚은 것… 북한 협상 전술에 잘 대처하는 것이 급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
등록 2013-06-19 15:06 수정 2020-05-03 04:27

남북회담의 ‘격’에 대한 논란 이후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한국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북한국장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통일부 장관을 한 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은 조평통을 “김일성의 발기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별로 대남 접촉을 하기 위해 만든 외곽 단체들을 총괄하면서 남북대화를 주도하는 기구”라고 정의한다.
조평통은 1990년대 이후 각종 대남 제의와 협상을 담당해왔다. 지난 6월6일 남북대화를 제안한 기구도 바로 조평통이다. 조평통의 남북대화 제안에 박근혜 대통령은 곧바로 이를 환영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조평통의 대남 제의를 수용해 남북 장관급 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조평통의 대남 제안을 박 대통령이 수용해서 대화가 시작됐는데, 대화 무산의 배경으로 조평통이 남북대화를 책임 있게 할 조직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민주평통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 남북회담을 위한 대북 제의를 한 적이 없다. 그동안 진행된 수백 차례의 남북 당국 간 회담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시작과 끝의 자기모순
이번 회담 무산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 올봄 북한이 내뱉은 거친 말폭탄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거친 말이나 행동에도, 북한을 잘 다루는 것이 남북관계의 지혜다. 북한에 대한 정책은 강경책이냐 온건책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현명한 정책이냐가 중요하다.
강경 발언을 일삼은 북한에 강경하게 맞설 수 있다. 단기적으로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효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경책 일변도는 현명한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이른바 ‘강 대 강’의 대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민족의 미래를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물고기가 살지 않게 된 이유를 알아야 한다. 물고기 두 마리가 서로 싸워 한 마리가 죽었다. 그놈 살이 썩어 물도 따라 썩어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것도 살지 않게 되었다. (작사·작곡 김민기, 노래 양희은)의 가사를 새겨야 한다. 이런 생각이 강경책과 온건책을 뛰어넘어 현명한 정책을 만들 수 있게 한다.
북한에서 조평통이 노동당의 단순 외곽 기구가 아니라는 점은 남북대화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조평통은 위원장 허담이 1980년대 말 사망한 이래 위원장을 선임하지 못한 상태에서, 당시 북한 대남정책의 최고 실세인 김용순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김용순은 노동당 대남비서와 통일전선부장(통전부장)을 겸임하면서 조평통 부위원장도 맡은 것이다.
김용순이 1994년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이홍구 부총리가 상대였다. 통상 북한 노동당의 대남비서는 부총리급이고 통전부장이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을 합친 격이라고 한다면, 조평통 부위원장은 경우에 따라 부총리,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과 유사한 급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김용순은 노동당 비서를 맡은 이후 7년 만에 조평통 부위원장을 맡았다. 조평통을 노동당의 단순 외곽 기구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정상회담 준비했을 뿐 참석하지 않은 김양건
북한의 조평통은 위원장, 부위원장, 서기국장의 순으로 단순하게 서열화돼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위원장은 오랫동안 공석이었고, 부위원장은 여러 사람이 맡는 게 관례이고, 서기국장은 한 사람뿐이다. 북한의 조평통과 통전부에서 대남 업무를 담당한 안경호·강관주·한시해·윤기복·최우진 등의 경력을 분석해보면 이들은 대부분 서기국장과 부위원장 임무를 불규칙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6월9일 오전 남북 장관급 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 접촉에 북쪽 단장으로 나선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가운데 여성)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기 전에 마중을 나온 남쪽 단장인 천혜성 통일부 정책실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통일부 제공

지난 6월9일 오전 남북 장관급 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 접촉에 북쪽 단장으로 나선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가운데 여성)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기 전에 마중을 나온 남쪽 단장인 천혜성 통일부 정책실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통일부 제공

안경호와 한시해는 장관급이라고 하는 통전부 부부장, 조평통 부위원장을 수행하다가 서기국장을 맡았다. 최우진은 통전부 부부장을 하다가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강관주는 노동당의 최고 실세 자리라는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하다가 조평통 부위원장을 맡았다. 윤기복은 부총리급이라는 노동당 비서를 한 뒤 조평통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처럼 조평통 부위원장과 서기국장이 서열화된 것으로 단순하게 보기는 어렵다. 조평통 서기국장을 ‘국장’이라는 글자 때문에 차관급이거나 그 아래 직급인 이사관급이라고 한다면,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국장급으로 보는 것과 같은 오류다.

남북 당국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에서, 정부는 북한의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겸 통전부장이 우리의 통일부 장관에 해당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도 ‘격’이 맞아야 한다며 압박했다.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겸 통전부장이 노무현 정부 시절 서울을 방문했고, 이명박 정부 시절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정상회담을 협의하기도 했는데 왜 통일부 장관의 상대가 될 수 없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책임 있는 사람이 남북회담에 나서라’고 북한에 주문할 수는 있다. 그런데 김양건을 지목한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김양건의 직급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국정원의 대북 및 해외담당 업무, 통일부 장관 등을 포괄하는 통일 부총리급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은 당과 행정부의 기능이 분화돼 있어, 노동당이 직접 대외 업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 노동당의 국제비서도 외교 업무에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외교 업무는 내각의 외상이 담당한다. 미국과의 핵협상을 노동당이 하지 않고 내각의 외교부에서 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외교부 장관이 바로 외상이다. 북한 노동당의 통전부장에게 남북대화에 나서라고 하면, 미국의 상원 외교위원장에게 국무장관을 제치고 미-중 외교를 하라고 주문하는 것과 똑같다. 북한은 노동당이 정부보다 우위에 있는 일당독재 국가이지만, 그래도 북한의 체계가 있다.

1970년대 ‘김영주 지명’ 오류와 비슷

중국공산당에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있는데, 이 직책이 당의 외교정책을 지휘하는 자리다. 그리고 외교는 내각의 외교부장이 한다. 외교는 국가 간에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외교를 하면서 중국 정부의 왕이 외교부장보다 공산당의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책임과 권한이 더 크니, 그에게 협상에 나오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국제 스탠더드’가 아니다.

북한 노동당의 대남비서이고 통전부장인 김양건은 노무현 정부 때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임태희 장관과 싱가포르에서 비밀접촉을 하기도 했다. 이때 김양건의 역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의 특사와 같은 것이었다. 즉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지시를 받아서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지, 남북 장관급 회담에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1994년 노동당 비서로 서울을 방문한 김용순도 마찬가지였다.

남북 사이에서 당국회담의 ‘격’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은, 북한이 우리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부서를 내각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남북을 2개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북한은 당 우위의 독재국가이므로 대남사업은 당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은 조평통 같은 기구나 내각의 책임참사를 통해서 한다.

당국회담의 ‘격’을 둘러싼 갈등은 이처럼 남북 사이의 제도나 권력기구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정부는 이런 남북 사이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남북회담에 나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역시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정치국원과 정치국 후보위원은 북한 노동당의 정책 결정을 총괄하는 최고기구이고, 북한의 대남정책은 노동당 정치국이 아니라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국 후보위원을 통일부 장관 파트너로 나오라는 것은 1970년대에 범했던 오류를 다시 범하는 것이다.

1970년대 초반에 남북 당국회담을 제안하면서, 우리 정부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파트너로 북한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지목했다. 김영주가 김일성 다음으로 권한이 막강한 조직지도부장이고, 김일성의 친동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영주는 대남 업무를 담당하지 않아서 이후락은 평양을 방문했을 때 처음에 김영주를 만나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박성철 부수상과 협상을 했다. 당시 김영주는 권력에서 물러나는 ‘지는 해’였다. 7·4 남북 공동성명을 채택했지만 이 과정에서 북한의 내부 상황을 모르고 김영주를 파트너로 지목한 것은 지금도 오류로 지적되고 있다.

장관급 회담 제안하면서 실무 접촉 빠뜨려

북한 ‘회담일꾼’(회담 전문 요원)의 급을 남한의 직제와 일률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또 그들의 임무는 직급과 다르다. 흔히 북한의 대표단은 대표단, 수행원, 취재기자단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의미가 없다. 북한의 협상 전술을 파악하고 잘 대처하는 것이 북한 협상 대표의 급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정부는 이런 남북회담의 초보적인 것조차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남북 당국회담에 대표단이 아닌 수행원에 명단이 있던 원동연이 어떤 인물인지도 파악 못했던 것이다.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다음날인 6월12일 오전, 애초 회담 장소로 예정됐던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이사업체 직원들이 회담장에 놓았던 가구를 포장해 옮기고 있다.한겨레 김정효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다음날인 6월12일 오전, 애초 회담 장소로 예정됐던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이사업체 직원들이 회담장에 놓았던 가구를 포장해 옮기고 있다.한겨레 김정효

원동연은 북한 노동당의 통전부 제1부부장으로 장관급 이상의 행세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남정책의 실세다. 북한이 회담 수석대표로 조평통의 서기국장인 강지영을 통보했지만, 남북회담의 ‘숙련공’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원동연을 보장성원(회담 지원 인력)으로 포함시켰다. 이런 북한의 ‘전술’을 정부는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북한은 협상 대표를 선발할 때 김정은의 신임이 두터운 자, 당성이 강한 자, 협상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자를 우선시한다. 이런 임무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이들을 회담일꾼이라고 한다. 대표적 회담일꾼인 전금철은 1970년대 초반 남북 조절위원회 대변인으로 남북대화에 참여한 이래, 각종 회의에 다양한 직책을 가지고 참가했다. 2000년대 초반 남북 장관급 회담에선 ‘내각 책임참사’라는 직책으로 박재규 통일부 장관의 상대역을 했다. 전금철의 다양한 직책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북한의 전문 회담일꾼이라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회담을 잘하는 사람을 회담일꾼으로 내세우고, 수행원 가운데 실세가 회담을 통제한다. 대표적 사례가 1990년대 남북 고위급 회담 때 수행원으로 참여한 임춘길(임동옥)이다. 임동옥은 회담에 말단 수행원으로 참여했으나, 그가 회담을 실질적으로 통제했다. 나중에는 북한의 대남 전략을 수립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강지영을 수석대표로 내세웠지만, 원동연에게 임동옥 같은 역할을 맡겼던 것이다.

회담의 ‘격’에 대한 논란이 심해지면서 그보다 더 중요한 회담 전략에 대한 검토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원동연이 참석한 이유도 파악 못하고 허둥댔을 뿐만 아니라, 17시간의 실무회담에서 수석대표와 회담 의제조차 최종 확정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당국회담을 서둘러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다보니 수석대표의 격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제도와 권력 구조의 차이가 있는 남북 사이에서 정부는 6년 만에 장관급 회담을 제안했다. 오랫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됐기 때문에, 남북 사이에 충분한 실무 접촉을 통해 서로의 입장 확인과 철두철미한 준비가 필요했다. 이런 충분한 협의와 준비가 생략된 채, 판문점에서 한 차례의 실무회담만 하고 당국회담에 나섰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정부는 지난 6월6일 장관급 회담을 제안하면서 통상 함께 제안하는 실무 접촉의 일정과 장소를 밝히는 것을 빠뜨렸다. 그러다보니 북한이 실무 접촉을 개성에서 하기를 제안하고, 북한의 제안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판문점으로 장소를 변경했던 것이다. 회담 전략의 부재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최고책임자 위임장으로 ‘격’ 논란 해소

때아닌 ‘격’ 논쟁으로 ‘통일부 장관 대 통전부장’ ‘통일부 차관 대 조평통 서기국장’의 회담은 불가능하게 됐다. 이를 극복하려면 남북의 ‘격’이 일치하는 총리급 회담을 여는 방법만이 남아 있다. 지금으로서는 남북 사이에 냉각기가 필요하다. 냉각기를 거치면서 북한의 회담 전술을 다시 검토하고, 우리의 회담 전략을 치밀하게 수립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총리급 회담을 위한 차관급 예비회담을 세 차례 정도 추진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

쌍방 최고책임자의 위임장을 가지고 회담에 참석하면, 차관급 예비회담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격’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총리급 회담에서는 이산가족, 개성공단 정상화를 최우선 안건으로 추진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운영, 남북 사회·문화 교류 활성화, 북한 지하자원 공동개발 등으로 의제를 확대할 수 있다. ‘북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게 능사는 아니다. 어떻게 하면 북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끌고 갈지를 생각해야 한다. 현명해져야 할 때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changsoo@outl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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