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징 이글’(Rising Eagle).
미국의 북한인권 운동가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NKFC) 대표가 ‘꽃제비’ 출신으로 알려진 북한 청소년들을 중국에서 탈출시킨 계획엔 작전명까지 붙어 있었다. 독수리가 하늘로 솟아오른다는, 다분히 미국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이름이었다. 2012년 8월 북한의 10대 청소년 3명은 타이를 거쳐 미국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독수리’는 온전히 날아오르지 못했다. 이들과 함께 지낸 것으로 알려진 9명은 지난 5월27일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 숄티 대표는 강제 송환 이틀 뒤 인터뷰에서 자신의 심정을 ‘망연자실했다’(devastated)고 표현했다. 그는 미국으로 간 3명과 북송된 9명 등 12명은 모두 ‘주 선교사’로 알려진 한국인의 도움으로 4~5년 동안 중국에 머물러왔으며, 최근 중국 공안 당국의 단속 강도가 심해지면서 탈출을 시키게 됐다고 했다.
숄티 대표는 이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저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2년여에 걸친 탈북 계획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 몰랐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탈출한 어린이까지 추적해 데려가는 것은 김정은 독재가 얼마나 악랄한지(vicious)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김정은 체제가 그만큼 허약하다(vulnerable)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 저주와 분노가 채 식기도 전에 숄티 대표는 북송 청소년들의 애초 목적지를 둘러싼 진실 공방에 휩싸이고 만다. 숄티 대표는 “(탈북 청소년들이) 타이를 거쳐 한국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거쳐가는 라오스에서 예기치 않게 불심검문에 걸린 것”( 인터뷰)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이들의 목적지가 애초부터 한국이 아닌 미국이었고, 미국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나타난 미숙한 상황 대처가 이번 사태의 한 원인이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김희태 북한인권개선모임 사무국장은 지난 6월3일 인터뷰에서 “이번에 (탈북 청소년들을 안내한) 주 목사는 탈북 청소년들을 라오스 주재 미국대사관을 통해 미국에 보내려고 계획했었다. 하지만 지난 5월10일 라오스 경찰에 체포되면서 계획을 한국행으로 급작스레 바꿨다”며 숄티의 주장을 반박했다.
김 국장은 같은 날 YTN 라디오 에 출연해, 더 자세한 사정을 털어놨다.
“저희가 주로 한국행을 지원하는 단체이고 라오스로 가기보다는 타이로 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선교사(주 선교사)님은 미국행을 위해서 타이가 아닌 라오스로 가기를 원해서 저희가 도움을 드리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저희가 4월20일 방문해서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 고아들에 대해 주 선교사님을 설득했는데요, 선교사님 이야기는 한국으로 가서는 이 아이들이 또 보호시설로 가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있고, 정이 그리운 아이들이고 부모가 없었는데 미국으로 가게 되면 입양 절차를 밟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는 미국의 입양이 낫다고 했고, 그래서 저희들은 주 선교사님의 뜻을 존중해서 그냥 돌아왔고요. …수잰 숄티 여사가 이것에 개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이미 미국하고 모종의 합의가 되어 있었고, 입양 절차를 밟고 있고, 이미 미국과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게 도중에 연기를 할 수 없다고 했었고….”
다시 말해, 주 선교사는 숄티 대표 쪽과 더불어 탈북 청소년들을 미국으로 데려가 미국인 가정에 입양시키는 계획을 진행 중이었고, 김 국장은 이들의 한국행을 설득해 도우려다 포기했다는 주장이다.
올 초 발효된 미 북한아동복지법이 배경숄티 대표는 김 국장의 이야기를 다시 반박하고 나섰다. 6월3일(현지시각) 숄티 대표는 인터뷰에서 “저는 (김희태 사무국장을) 친구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그가 말하는 게 절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이메일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주 목사와 몇 년간 접촉해왔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들(탈북 청소년들)이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한 연락 내용(communications)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과 ‘인도주의’를 강조하며 탈북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단체의 주요 관계자들끼리, ‘고작’ 미국행에 대한 진위 여부를 놓고 이런 공개 설전을 벌이는 배경은 뭘까?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올해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종 서명하면서 미국에서 발효된 북한아동복지법(North Korean Child Welfare Act of 2012)이다. 미국 의회는 법안에서 다음과 같은 상황 인식을 표명한다.
“수십만 명의 북한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으며, 북한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북한 어린이와 북한 출신 부 또는 모를 둔 어린이는 이웃 나라에서 무국적 상태에 직면할 수 있다. 국무장관은 이 어린이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보호 방안에는 북한 이외 지역에서 사는 어린이들의 가족 상봉이나, 적절성을 수반한 국내외 입양 등을 통한 즉각적인 조처도 포함된다.”
북한에서 부모를 잃은 채 탈북했거나 탈 북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 곧 지난 5월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9명 같은 이들에 대한 지원 법안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탈북 여성이 탈북 과정에서 (중국인 남성 등과의 사이에서) 출산해 법적 지위가 모호한 어린이들도 대상이다. 법안은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의 노력에 대해 상·하원 외교위원회에 공개적·정기적으로 보고할 (보고자를 지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다음 5가지의 보고 항목을 제시한다.
① 탈북 어린이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한 분석
② 탈북 어린이들에게 가족 상봉 기회를 제공하려는 노력
③ 탈북 어린이를 입양하려는 미국인 가정에 예상되는 어려움과 해결 방안
④ 탈북 어린이들의 무국적 상태 문제에 대해 주변국에 해결 촉구
⑤ 한국 정부와 협력해서 탈북 어린이 가족 상봉 등을 위한 시범 프로그램을 만들 것
법안대로라면, 미국 국무부는 무연고 탈북 어린이 문제 해결에 나설 뿐 아니라, 이들을 찾아내 미국으로 데려와 미국 가정에 입양시키는 일에도 나서야 할 판이다. 실제 지난 1월 이 법안이 통과된 이후 미국 쪽에서 탈북 고아 소개 및 입양을 의뢰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이야기가 국내외 탈북지원단체와 브로커들 사이에서 나온다.
택한 경로와 교통수단도 이례적
숄티 대표가 만약 애초부터 강제 북송된 9명을 미국에 보낼 계획이었다면, 역시 이런 배경에서 ‘성과’를 목표로 진행한 일 아니었겠느냐는 게 김희태 사무국장 같은 이들의 시각이다. 이미 숄티 대표는 미 국무부의 도움을 받아 탈북 청소년 3명을 미국에 보낼 수 있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라이징 이글 작전을 실행하면서) 1년8개월쯤 전인 2011년 9월 미국행 계획에 먼저 착수했다. 미 국무부와 긴밀하게 공조해 미국행 계획을 진행했다. 한국 측도 도왔다.”( 인터뷰)
김희태 사무국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북송된 9명의 여행 경비도 숄티 대표 쪽에서 모두 부담했으므로 미국행이 틀림없다는 주장도 내놨다. “한국 단체가 돈을 대는 애들은 한국에 데려오고, 미국에서 돈을 대는 애들은 미국에 데려가는 것이 원칙이다. 이번에 북송된 애들 9명도 미국의 수잰 숄티 대표가 중국에서 먹이고 입히는 비용부터 이동 비용까지 다 댔기 때문에 미국행이 틀림없었다.”( 인터뷰)
사실 미국행 시도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보호자 없이 구걸과 노숙을 일삼으며 각종 위험에 내몰린 채 국경지역을 떠돌던 ‘꽃제비’들에겐, 적절한 보호처만 제공될 수 있다면 미국행이건 한국행이건 그 상황만 벗어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9명이 북한으로 압송된 뒤 상황은 달라졌다.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이들의 행적을 되짚어보면서, ‘미국행 탓’일 수 있는 ‘미숙함’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청소년 9명으로 구성된 이 일행은 기본적으로 너무 눈에 띄었다. 탈북지원단체 및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탈북 과정에서 조를 짜서 이동할 땐 인원이 많아야 6명이라고 한다. 보기에 자연스럽고 관리·통제도 수월하다는 이유에서다. 9명 모두 연령이 10대 청소년이었던 점도, 신분증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심을 사기 쉬운 부분이다. 실제 5월10일 경찰 검문으로 붙잡혔을 때 이들을 인솔한 주 선교사는 애초 ‘수학여행단’이라고 둘러댔지만, ‘여권을 제시하라’ ‘여행사를 밝히라’는 경찰의 요구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다 끝내 탈북자라고 신분을 밝힌 뒤 청소년들과 함께 억류됐다.
이들이 택한 경로와 교통수단도 이례적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9명은 중국∼라오스 국경을 넘어 라오스 주재 외국대사관들이 있는 수도 비엔티안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던 중 경찰 검문에 걸렸다. 숄티 대표의 이야기대로 라오스를 거쳐 타이로 가려던 길이었다면 비엔티안까지 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타이는 탈북 루트 가운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제3국이지만, 중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아 라오스를 경유해서 입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희태 사무국장의 주장대로 이들이 비엔티안의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가려던 것이었다 해도, 좀더 안전한 경로를 모색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IMAGE2%%]한국대사관 공식 경로 집중한 사이 추방여러모로 준비가 덜 된 ‘여행’이었다. 특히 인솔자인 주 선교사가 그랬다. 그가 현지 사정에 밝았다면 이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을 거란 뒷말도 나온다. 브로커도 없었다. 브로커들과 ‘정착지원금’을 매개로 한 ‘탈북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때문에 브로커들이 많은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이 가장 전문가 집단이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경찰의 검문과 호송, 이민국 수용소 억류, 북한 말투를 쓰는 통역요원 등장 등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에 익숙한 브로커들이었다면 임기응변이 가능했을 거란 얘기다. 주 선교사는 줄곧 ‘안심하라’는 한국대사관을 철석같이 믿었던 셈이지만, 그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청소년 9명의 북한 탈출이 사실상 완전히 무산되고 강제 송환된 마당에, 주 선교사의 이런 미숙함이 김희태 사무국장의 말대로 ‘미국 입양 일정에 맞추기 위한’ 목적 탓에 무리하게 서두르다 빚어진 것으로 밝혀지기라도 하면, 숄티 대표와 주 선교사 쪽에겐 심각한 책임론이 뒤따를 수도 있다.
한편, ‘미국행’ 탓에 일이 꼬였을 가능성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한국 외교부의 대응이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힘들다.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은 청소년들이 이민국 수용소에 억류된 기간에 한 차례도 면담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국대사관의 면담 요구에 라오스 정부 쪽은 “믿어달라, 기다려달라”고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27일 추방 당일 오전까지도 한국대사관은 외교·치안 당국자들을 접촉했지만, 오후 2시45분 비행기로 추방당한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한국대사관이 공식적 경로에만 집중하는 동안, 억류된 청소년들은 출입이 허용되는 이민국 수용소를 나와 식사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봐’ 먹거리를 갖다준 현지 교민도 있었다. 비교적 자유로우면서도 불안감에 ‘한국대사관으로 도망치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한국대사관은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말라. 문제를 더 힘들게 만들 수 있다. 기다리면 잘될 것”이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청소년 9명은 지난 5월27일 북한 쪽에 넘겨진 뒤 바로 공항으로, 다시 항공편으로 중국 쿤밍·베이징으로 이동했고, 다음날 오후 1시30분 고려항공편 비행기로 평양으로 압송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북송된 뒤 미국과 한국에서는 관련 단체들의 비판이 잇따랐고, 아예 얼굴까지 공개하고 나섰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이 국제 조사단 파견 의사를 밝히는 등 국제사회도 동조하고 나섰다.
북-중 국경 지역 꽃제비 2만 명 추산보는 눈이 많다는 현실을 의식한 걸까. ‘꽃제비’ 9명이 평양의 순안초대소에 보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순안초대소는 과거 북한 당국이 교포들을 영접하던 숙박시설이다. ‘동둑(큰 둑)에 세워질 것’(‘공개처형당한다’는 뜻의 북한식 은유)이라던 일각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라오스 정부는 “한국인 선교사가 인신매매를 하려고 했다”며 청소년들의 추방 이유를 밝혔다. 보호자 동의 없이 미성년자들을 데려왔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다음 순서는 북한 체제의 선전 수단으로 거듭난 청소년들이 방송에 나와 선교사에게 유인·납치당한 ‘아픈 기억’을 털어놓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탈북 청소년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 이민국에 수용 중이던 5월17일, 주 선교사는 한국대사관에 연락해 “모두 한국행을 희망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중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하며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감옥살이를 다룬 영화로 올해 초 화제를 모았던 을 함께 보다가 “남조선은 감옥도 호텔같이 해놨다”는 선망 어린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한 드라마에 나온 서울 광화문광장을 보면서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싸이 말춤을 추면 재미있을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떤 이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탈북지원단체의 한 관계자는 “꽃제비가 미국행, 한국행을 따졌겠나. 굶주리지 않고 잘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중 국경 지역의 꽃제비들 규모에 대해, 미국의 한 북한 관련 단체는 약 2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힌 바 있다. 얼마가 됐든, 그 아이들은 미국의 ‘북한아동복지법’에 대한 이야기도, 라오스 국경이나 강제 북송에 대한 이야기도 접했을 리 없다. 주인공은 그들이었음에도 말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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