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통점은? 존재감이 없다는 거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 집권여당이 있기는 하나 싶을 정도다. 제1야당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냉소와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5월15일 치러진 두 당의 원내대표 경선은 그래서 오히려 관심을 끌었다. 쪼그라들 만큼 쪼그라든 의회정치를 회복할 책임이 있는 원내 사령탑을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눈치작전인지 알 수 없으나, 두 당은 이례적으로 같은 날 경선을 치렀다. 그리고 ‘강한 여당’ ‘강한 야당’을 표방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3선, 경북 경산·청도)과 전병헌 민주당 의원(3선, 서울 동작갑)이 각각 뽑혔다.
노무현재단이 노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앞두고 공개한 재임 시절 미공개 사진. 2006년 10월 장항 갯벌 현장 시찰을 위해 충남 서천을 방문했을 때 거리에서 만난 어린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무현재단 제공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원조 친박’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발탁됐는데, 이 대통령이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등 ‘친박’ 노선을 충실히 걸었다. 당에 복귀한 2011년부터 친박 실세로 부상하면서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에 빗대 ‘최재오’로 불리기도 했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가 그해 10월 ‘인의 장막’ 논란 속에 친박 측근 퇴진론이 거세지자 물러났다.
이로부터 7개월 뒤 집권여당 원내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선거 결과 발표 때 그의 표정은 굳어졌다. 낙승하리란 예상과 달리, 이주영 의원에게 불과 8표 차이로 진땀승을 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투표 직전 합동토론회에서 “우리 의원들이 거수기 노릇하려고 의원이 된 게 아니지 않나. 출처도 불분명한 지침에 동원되려 온 게 아니지 않나”라며 “대통령의 친박 실세 최측근이 정부출범 뒤 첫 원내 지도부에 무리하게 나설 게 아니”라고 퍼부었다. 청와대와 ‘원조 친박’을 강력하게 견제하면서, 수평적인 당·청 관계를 바라는 목소리가 박빙 승부라는 결과로 나타난 셈이다. 최 원내대표도 당선 뒤 기자회견에서 투표 결과에 대해 “새 정부 출범 초기이기 때문에 국정 운영을 제대로 뒷받침해서 성과를 내라는 것과 함께, (청와대를) 견제하라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원내대표는 “오히려 신뢰가 있어야 쓴소리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야당에는 막무가내로 강하고, 청와대에는 약한 모습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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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1기 여당 원내대표는 ‘청와대 대리인’ 역할을 요구받기 십상이다. 특히 인사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난 박 대통령의 불통리더십을 감안하면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대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의 ‘국회비서실장’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 원내대표는 그의 말처럼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뒷받침도 하고 쓴소리도 할 수 있을까? 이주영 의원은 합동토론회에서 “저는 대선기획단장으로 있으면서 박근혜 후보를 끈질기게 설득해 역사관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당시 역사 문제에서 (후보 비서실장이었던) 최경환 후보가 침묵을 지켰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견제를 못하면 원내 지도부가 당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와대 지침에 문제가 있는데 ‘그대로 가자’고 하면 의원들이 말을 듣겠나. 사전에 거르고 보완한 뒤 의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1980년대 후반 평화민주당 당보인 을 만드는 당료로 정치를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을 지냈고, 국회 입성뒤에는 열린우리당 대변인, 민주당 정책위의장 등 당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18대 국회에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아 미디어법 투쟁을 이끌고, 2010년 6·2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으로 ‘3+1’ 복지정책을 당론으로 만들었다.
전 원내대표는 이번 경선에서 역전승을 했다. 127명 가운데 이해찬·김기식 의원을 뺀 125명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그는 1차 투표에서 우윤근 의원에게 3표 뒤진 2위에 머물렀다가, 결선투표에서 12표 차이로 뒤집었다. 1차 투표 때 비주류 김동철 의원이 받은 표를 대부분 흡수했다. 전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범주류’로 불려온 정세균계인데, 지난 5월4일 전당대회 때 김한길 후보를 지원하면서 비주류와 손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김한길-전병헌 체제’를 ‘친노·486’과 ‘호남 세력’의 퇴조로 인한 전면적인 세력 교체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내 계파의 세력 재편보다 눈에 띄는 건 ‘강한 야당’ ‘선명한 야당’에 대한 당내 공감대가 강했다는 분석이다. 우윤근 의원이 온건파, 김동철 의원이 보수파로 평가되는 상황에서, 전 원내대표가 내세운 ‘강한 원내대표론’이 먹힌 것으로 보인다. 전 원내대표는 당선 뒤 기자회견에서 “선명한 민주당을 만들겠다. 래디컬(급진적)이 아니라 브라이트한(명석한)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견제할 때는 단호하게, 협상할 때는 치열하게, 타협할 때는 전략적으로 하겠다”고도 했다. 특히 전 원내대표는 최근 이슈로 떠오른 통상임금 문제 등 ‘노동과 임금’ 문제를 국민적 의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이 노동과 임금을 노조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노동과 임금을 국민 모두의 의제로 만들어 주도적으로 선점해나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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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원내대표가 민주당의 존재감을 회복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는 동료들과 유대감이 약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친노·486’ 세력의 한 재선 의원은 “당 대표, 원내대표 선거에 대해 침묵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아닌 건 아니라고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세력화를 공식화한 안철수 의원과 원내에서의 관계 설정도 전 원내대표의 몫이다.
‘강한 집권여당’과 ‘강한 제1야당’을 외치는 최경환·전병헌 원내대표의 스타일과 능력의 첫 시험대는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6월 국회다. 최 원내대표는 “구체적인 법안 내용과 관련해 여야 간에 정부와 의견을 조율할 부분이 있다”며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을 펴고 있다. 전 원내대표는 “쇠는 달궈졌을 때 치는 것”이라며 6월 국회에서 공정거래법·프랜차이즈법 등 경제민주화 4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존재의 의미를 건 ‘강 대 강’의 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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