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통점은? 존재감이 없다는 거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 집권여당이 있기는 하나 싶을 정도다. 제1야당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냉소와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5월15일 치러진 두 당의 원내대표 경선은 그래서 오히려 관심을 끌었다. 쪼그라들 만큼 쪼그라든 의회정치를 회복할 책임이 있는 원내 사령탑을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눈치작전인지 알 수 없으나, 두 당은 이례적으로 같은 날 경선을 치렀다. 그리고 ‘강한 여당’ ‘강한 야당’을 표방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3선, 경북 경산·청도)과 전병헌 민주당 의원(3선, 서울 동작갑)이 각각 뽑혔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원조 친박’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발탁됐는데, 이 대통령이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등 ‘친박’ 노선을 충실히 걸었다. 당에 복귀한 2011년부터 친박 실세로 부상하면서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에 빗대 ‘최재오’로 불리기도 했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가 그해 10월 ‘인의 장막’ 논란 속에 친박 측근 퇴진론이 거세지자 물러났다.
이로부터 7개월 뒤 집권여당 원내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선거 결과 발표 때 그의 표정은 굳어졌다. 낙승하리란 예상과 달리, 이주영 의원에게 불과 8표 차이로 진땀승을 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투표 직전 합동토론회에서 “우리 의원들이 거수기 노릇하려고 의원이 된 게 아니지 않나. 출처도 불분명한 지침에 동원되려 온 게 아니지 않나”라며 “대통령의 친박 실세 최측근이 정부출범 뒤 첫 원내 지도부에 무리하게 나설 게 아니”라고 퍼부었다. 청와대와 ‘원조 친박’을 강력하게 견제하면서, 수평적인 당·청 관계를 바라는 목소리가 박빙 승부라는 결과로 나타난 셈이다. 최 원내대표도 당선 뒤 기자회견에서 투표 결과에 대해 “새 정부 출범 초기이기 때문에 국정 운영을 제대로 뒷받침해서 성과를 내라는 것과 함께, (청와대를) 견제하라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원내대표는 “오히려 신뢰가 있어야 쓴소리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야당에는 막무가내로 강하고, 청와대에는 약한 모습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병헌 “견제는 단호히, 협상은 뜨겁게”집권 1기 여당 원내대표는 ‘청와대 대리인’ 역할을 요구받기 십상이다. 특히 인사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난 박 대통령의 불통리더십을 감안하면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대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의 ‘국회비서실장’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 원내대표는 그의 말처럼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뒷받침도 하고 쓴소리도 할 수 있을까? 이주영 의원은 합동토론회에서 “저는 대선기획단장으로 있으면서 박근혜 후보를 끈질기게 설득해 역사관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당시 역사 문제에서 (후보 비서실장이었던) 최경환 후보가 침묵을 지켰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견제를 못하면 원내 지도부가 당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와대 지침에 문제가 있는데 ‘그대로 가자’고 하면 의원들이 말을 듣겠나. 사전에 거르고 보완한 뒤 의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1980년대 후반 평화민주당 당보인 을 만드는 당료로 정치를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을 지냈고, 국회 입성뒤에는 열린우리당 대변인, 민주당 정책위의장 등 당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18대 국회에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아 미디어법 투쟁을 이끌고, 2010년 6·2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으로 ‘3+1’ 복지정책을 당론으로 만들었다.
전 원내대표는 이번 경선에서 역전승을 했다. 127명 가운데 이해찬·김기식 의원을 뺀 125명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그는 1차 투표에서 우윤근 의원에게 3표 뒤진 2위에 머물렀다가, 결선투표에서 12표 차이로 뒤집었다. 1차 투표 때 비주류 김동철 의원이 받은 표를 대부분 흡수했다. 전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범주류’로 불려온 정세균계인데, 지난 5월4일 전당대회 때 김한길 후보를 지원하면서 비주류와 손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김한길-전병헌 체제’를 ‘친노·486’과 ‘호남 세력’의 퇴조로 인한 전면적인 세력 교체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내 계파의 세력 재편보다 눈에 띄는 건 ‘강한 야당’ ‘선명한 야당’에 대한 당내 공감대가 강했다는 분석이다. 우윤근 의원이 온건파, 김동철 의원이 보수파로 평가되는 상황에서, 전 원내대표가 내세운 ‘강한 원내대표론’이 먹힌 것으로 보인다. 전 원내대표는 당선 뒤 기자회견에서 “선명한 민주당을 만들겠다. 래디컬(급진적)이 아니라 브라이트한(명석한)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견제할 때는 단호하게, 협상할 때는 치열하게, 타협할 때는 전략적으로 하겠다”고도 했다. 특히 전 원내대표는 최근 이슈로 떠오른 통상임금 문제 등 ‘노동과 임금’ 문제를 국민적 의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이 노동과 임금을 노조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노동과 임금을 국민 모두의 의제로 만들어 주도적으로 선점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강한 여당 vs 선명 야당’ 결과는?전 원내대표가 민주당의 존재감을 회복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는 동료들과 유대감이 약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친노·486’ 세력의 한 재선 의원은 “당 대표, 원내대표 선거에 대해 침묵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아닌 건 아니라고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세력화를 공식화한 안철수 의원과 원내에서의 관계 설정도 전 원내대표의 몫이다.
‘강한 집권여당’과 ‘강한 제1야당’을 외치는 최경환·전병헌 원내대표의 스타일과 능력의 첫 시험대는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6월 국회다. 최 원내대표는 “구체적인 법안 내용과 관련해 여야 간에 정부와 의견을 조율할 부분이 있다”며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을 펴고 있다. 전 원내대표는 “쇠는 달궈졌을 때 치는 것”이라며 6월 국회에서 공정거래법·프랜차이즈법 등 경제민주화 4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존재의 의미를 건 ‘강 대 강’의 싸움이 시작됐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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