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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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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 한국의 ‘근본 문제’

외교장관 “북-미 대화 없다” 확신하지만 북-미는 대화 조건 놓고 신경전 벌이는 것
중국을 매개로 시작된 간접 대화에 한국의 이익은 없어… 진정 한국의 역할은 없는가
등록 2013-05-05 19:55 수정 2020-05-03 04:27

일촉즉발의 위기로 내몰렸던 한반도 상황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불씨는 살아 있다. 지금 북한과 미국은 대화의 조건을 놓고 치열하게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위기를 고조시키는 주역이었던 북한은 대화를 위한 조건을 내걸었다. 물론 수가 틀어지면 다시 위기 상황을 부채질할 수 있다. 지난 4월18일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모든 도발 중지 및 전면 사죄 △핵전쟁 연습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확약 △한국과 주변 지역에서의 전쟁 수단 전면 철수 등이 대화의 조건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요구는 결국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지 △핵우산을 비롯해 재래식 전력까지 활용한 미국의 ‘확산 억지’(extended deterrence) 제공 중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은 이 두 가지를 자신들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북한이 내거는 ‘근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요구 거부한 미국, 의미심장한 해석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하는 판례를 내놓았지만 정부와 기업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이 결국 집단소송에 나섰다.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3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 한겨레 김태형 기자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하는 판례를 내놓았지만 정부와 기업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이 결국 집단소송에 나섰다.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3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 한겨레 김태형 기자

북한이 내건 것은 대화의 조건이라기보다는 북한이 원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수많은 남북 대화에서 항상 ‘근본 문제’라는 것을 전제로 내세웠다. 대개 그 ‘근본 문제’가 북한이 추구하는 목표였다. 협상의 전제조건이라기보다는 협상에서 샅바싸움을 하기 위한 용도였다. 따라서 근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대화는 진행됐다.

그렇다고 무시할 성격은 아니다. 북한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는 어느 한쪽의 주장이 100% 달성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상대의 요구 목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이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의 주장 이면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를 파악한다면 북한과의 협상이 쉬워질 것이다. 시나이반도를 둘러싼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갈등과 협상은 상대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유명한 사례다.

1967년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를 군사적으로 점령했다. 당시 이집트의 목표는 영토주권의 회복이었고, 이스라엘의 목표는 군사위협의 제거였다. 이러한 목표를 정확히 파악하자 시나이반도를 둘러싼 두 나라의 대립은 협상으로 타결되었다.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상 이후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고, 대신 시나이반도에 비무장지대를 확대해서 이스라엘의 안전을 확실하게 했던 것이다.

미국은 북한 국방위 정책국의 요구를 당연히 거부했다. 하지만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국방위 정책국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요구에 대해 의미심장한 해석을 했다. 북한이 협상에 대해 처음 언급했다는 것이고, 이는 (협상을 위한) 첫 번째 수(beginning gambit)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케리 장관은 북한이 요구한 두 가지가 ‘근본 문제’인 것을 간파한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지금 대화의 조건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소형화해서 이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해 미 본토를 위협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지난 4월 중순에 열흘 이상 미 정부와 의회, 언론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은 북한의 장거리 핵탄두 미사일 능력이었다.

절박하지만 운신의 폭 좁아

논란은 4월11일 열린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더그 램본 의원(공화·콜로라도)이 “북한이 현재 탄도미사일을 통해 운반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며 국방정보국(DIA) 보고서의 한 대목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일부 언론은 이 발언을 인용하면서 “북한이 ICBM에 장착할 수 있는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커지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16일 “북한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얹을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램본 의원이 이 보고서를 공개한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오바마 정부가 미사일방어(MD) 예산을 감축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논란은 엉뚱하게 확산돼 북한 미사일 능력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줬다.

언론 보도에 미국인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2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 기사도 있었다. “북한이 가짜 대량파괴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수 있으나, 북한이 정말 대량파괴무기를 가졌다면 위험하다”는 댓글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인정하면서 “이것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빌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을 부정한 결과”라는 댓글에 대한 지지가 그다음 순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 경제를 망치고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키워서 미국을 ‘아마겟돈’에 빠지게 했다며 부시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지난 4월15일 전후로 북한이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은 예상과 달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 케리 장관은 4월12일 서울을 방문해 “북한과 양자 대화 및 6자회담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13일에는 중국을 방문해 “한반도에서 위협이 사라지면 이 지역에 배치된 미사일방어망을 축소할 수 있다”고도 했다.

북한은 케리 장관의 발언 이후 미국의 태도를 관망하기 위해 미사일 발사를 중지한 것이다. 케리 장관 역시 이를 간파하고 북한 국방위 정책국이 ‘근본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거기서 대화의 가능성을 읽었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미 본토에 도달하는 것을 막으려면 대화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분석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북한과의 대화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미 국내 정치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미국 정부의 운신의 폭은 좁다.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인 케리 장관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공식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북한이 핵무기 포기(renouncing) 및 핵프로그램 중단(discontinuing) 의무를 실질적으로 준수하려는 진지한 의도와 자세를 보여줘야 하며, 국제 의무를 지킨다는 증거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국판 근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떠도는 중국의 대북특사 파견설

북한과 미국이 ‘근본 문제’를 내걸고 충돌하는 상황에서, 두 나라가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은 쉽지 않다. 케리 장관은 의회를 설득하고 북한과 대화를 시도할 수단으로 중국의 중재를 택했다. 그는 중국 방문 이후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 핵에 대해 “중국도 미국과 협조할 의지를 내비쳤다”고 밝혔다. 중국 쪽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4월21일 미국을 방문한 것도 심상치 않다. 중국을 매개로 한 북한과 미국의 간접 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외교가에는 중국의 대북특사 파견설도 나돌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북-미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한반도 위기 국면을 대화로 전환시키는 데 미국과 중국이 물밑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설계할 도면에는 당연히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로 가득 찰 것이다. 한국의 이익은 없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에, 한국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인가?

김창수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실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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