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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안고 ‘사면’ 기다리시는가

과거 재벌 총수 형사사건에서 집행유예 비율 25%인데 예외 없이 사면,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사면권 남용 안 돼” 천명해
등록 2013-04-27 02:56 수정 2020-05-02 19:27

헌법 제79조 1항은 “대통령은 법률에 따라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른바 대통령의 사면권이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는 사면을 “오류를 제거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입법의 오류나 사실인정, 법 해석 및 양형으로 나타난 법원의 오류를 교정하는 기능을 사면이 한다.” 법과 판결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 그 괴리를 메우기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바꿔 말해 법과 판결에 문제가 없으면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할 필요가 없다.

2009년 12월29일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단독으로 특별사면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배임·조세포탈 혐의가 드러나 2009년 8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09년 12월29일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단독으로 특별사면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배임·조세포탈 혐의가 드러나 2009년 8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법과 판결에 문제 없으면 안 해도 되는데

하지만 현실에서 사면은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 재벌 등 기득권 세력에 면죄부를 주는 수단으로 악용돼왔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전두환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59차례에 걸쳐 17만4천여 명이 특별사면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는 8차례, 김대중 정부는 6차례, 노무현 정부는 9차례 사면을 했고 이명박 정부도 7차례 사면을 단행했다. 특히 퇴임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지난 1월29일 이명박 대통령은 55명을 사면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대통령의 사돈인 조현준 ㈜효성 사장이 포함돼 ‘최악의 사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은 그래도 정권이 바뀌면 사면 명단에서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재벌 총수는 변함없이 이름을 올렸다. 2012년 2월 재벌닷컴의 보고서를 보면, 1990년 이후 자산 기준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7명이 총 22년6개월의 징역형 판결을 받았지만 100%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일반 형사사건의 집행유예 비율은 25%에 그친다. 게다가 재벌 총수는 그 집행유예마저 예외 없이 사면받았다. 사면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285일로, 9개월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차례 형사재판을 받았는데 유죄 확정 뒤 각각 402일, 139일 만에 사면됐다. 특히 2009년의 두 번째 사면은 이건희 회장만을 위한 ‘원포인트’ 특별사면이었다. 2008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확정판결도 각각 73일, 78일 만에 없던 일이 됐다. 10대 재벌 총수로서 처음 실형을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과거 2차례나 사면을 받았고 이번에도 희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이 뱉은 말이 있다. “사면권을 남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돈 있고 힘있으면 책임을 안 져도 되는 일이 만연한 풍토에서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해도 와닿지 않는다.”(2012년 7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회의 초청 토론회)

“3분의 2 이상 못 채우면 특별사면 금지”

둘째, 여야 합의로 국회가 사면권을 제한하는 사면법 개정안을 추진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4월22일 입법청문회를 열고 여야 의원들이 낸 사면법 개정안도 10건이나 된다. 오제세 의원(민주통합당)이 발의한 사면법 개정안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위반해 수감 중인 사람은 형기를 3분의 2 이상 채우지 못하면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단행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 있다. 박영선 법사위원장은 “사면법 개정과 신속한 통과를 여야가 합의한 만큼 청문회와 법안 심사를 거쳐 4월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법원이 재벌 총수에게 실형 판결을 내렸듯이, 정치권도 사면권 남용이라는 오욕을 끊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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