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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법, 두루미의 입 여우의 접시

등록 2013-03-16 04:33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디어법 논란이 거세던 2009년 초 방송 대담에서 “민주화된 시대에 정권이 어떻게 언론을 장악하나, 정권이 방송과 언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이후의 상황 전개는 잘 알려진 대로다. 지상파 방송사의 사장들은 기자·PD한테 재갈을 물렸다. 여럿이 해고되거나 보도와 무관한 부서로 밀려났다. 물리력을 동원한 날치기 끝에 미디어법은 국회를 통과했고, 보수 언론의 종합편성채널이 만들어졌다.

 

“어떻게 언론을 장악하나” 미디어법 데자뷔

박근혜 대통령도 똑같은 논리를 앞세운다. 박 대통령은 3월4일 대국민 담화에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할 의도도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국민 앞에서 약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떠한 사심도 없다”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도 했다. 하지만 전임자의 방송 장악, 언론 통제 활극 5년을 겪은 뒤다. 이렇게 물을 수 밖에 없다. 과연 믿을 수 있는가. 비극적 논란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정부조직법 개정과 관련한 여야의 강 대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핵심 쟁점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문제다. 박 대통령과 여당은 이 문제가 “미래 성장 동력과 먹거리를 위한 핵심 과제”라고 주장한다. 반대편에선 “낙하산 사장을 통한 지상파 장악이나 종편채널 특혜에 이어 유선 케이블 방송마저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반박한다. 여기에 새 정부 출범 과정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 양상이 더해졌다. 어느 한쪽이라도 물러서는 쪽이 치명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치킨게임이 돼버렸다.

SO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공급업자(PP)와 계약을 맺고 프로그램을 공급받아 각 가정에 중계하는 업체를 의미한다. 지역 케이블 사업자인 티브로드·씨제이헬로비전·씨엔엠 등이 바로 SO다. 현행 제도에선 여야의 추천을 받은 인사들이 합의제로 운영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들을 감독·관리한다. “합의제 방통위에서도 방송 장악 문제는 심각했는데, 이 업무가 미래부라는 한 부처로 옮겨가면 정권의 방송 길들이기는 노골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야당의 논리다.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만일 YTN이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면 미래부와 SO가 채널을 100번대 이후로 바꿔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라며 이렇게 지적한다. “박 대통령은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하지만, 칼을 휘두를 의도가 없다면서 칼을 차겠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이고, 휘두르기 시작하면 그건 재앙이죠. 현행 방통위에선 힘에서 밀릴지언정 정권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그것을 사회적 논란으로 촉발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단일 부처로 넘어가게 되면 제어는커녕 어떤 감시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지난 3월4일 논평에서 “방송 정책을 독임제 부처인 미래부에 넘기는 것은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 침해를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유승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여당의 안대로 시행하면 방송사는 장관 한 사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속된 말로 장관이 원하는 것이라면 알아서 기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조차 2월27일치 사설에서 “공공성이 강한 방송은 독임제 부처인 미래부보다는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에 맡기는게 합리적”이라며 “야당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비토, 여야 잠정 합의 결렬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박기춘 원내 대표가 지난 2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지도부 회의에서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박기춘 원내 대표가 지난 2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지도부 회의에서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구상의 핵심이라는 주장은 어떨까. 박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상태에서 이를 극복하고 미래로 도약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췄다”며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반드시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의 융합에 기반한 ICT(정보통신기술) 산업 육성을 통해 국가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SO의 미래부 이관이 경제성장이나 일자리 창출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단적으로 SO는 만들어진 콘텐츠를 송출하는 곳인데 무슨 일자리 창출이냐”며 “케이블이든 지상파든 송출 관련 일자리는 기술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인데 SO의 미래부 이관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의 논리와 근거를 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재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협상은 타결 직전까지 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SO는 기존대로 방통위에 남기되 IPTV 관련 업무는 미래부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한 타협안에 여야의 의견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일요일(3월3일) 밤 사실상 타결했고 합의서도 만들었지만 그날 밤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난 뒤 합의가 번복됐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쪽에선 “잠정 합의는 없었다”고 반박하지만, 여야의 잠정 합의를 박 대통령이 사실상 비토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리고 박대통령은 다음날 대국민 담화를 열고 “이는 저의 신념이자 국정 철학이고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라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경”이라고 강조했다. 노기를 띤 떨리는 목소리의 박 대통령은 자신의 의견만을 밝힌 뒤 질의응답도 갖지 않고 자리를 떴다.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민주당의 결정적 패착은 이런 가운데 나왔다. 박기춘 원내대표가 지난 3월6일 △공영방송 이사 추천시 방통위 재적위원 3분의2 의결 △언론청문회 즉시 개최 △MBC 김재철 사장의 사퇴와 검찰 조사 등 이른바 ‘3대 요건’을 전제로 새누리당의 원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거부당했다. SO의 미래부 이관을 ‘방송 장악 2탄’이라고 주장하던 야권의 논리에 균열이 갈 수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에선 “방송의 독립성을 주장하던 민주당이 방송사 사장의 거취 문제를 협상에 제기하며 오히려 독립성을 해치고 있다”고 반박했다. 양문석 위원은 “박기춘 원내대표의 엉뚱한 제안은 전략상의 실패인 동시에 민주당의 진정성을 날려버린 패착”이라고 비난했다. ‘새 정부의 출범에 야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식의 여론전에 힘이 실렸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정부조직법의 직권 상정을 야당에 제안했다가 역시 거부당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7일에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우리 정치 지도자들 모두가 본연의 소임이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며 거듭 야당을 겨냥했다.

작은 타협의 여지마저 남겨놓지 않는 박대통령의 독선적 리더십과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여당, 그리고 야당의 정치적 무능 속에서 정부조직법 논란은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다. 결국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거취’까지 거론하며 배수진을 쳤다. 그는 지난 3월8일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여우와 두루미식으로 상대가 받을 수 없는 안을 그만 내달라”며 여야의 이한구·박기춘 원내대표를 동시에 겨냥했다. 그는 “만일 이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명색이 정치한다는 주제에 무슨 낯으로 국민을 대하겠느냐”며 “모든 책임을 지고 거취에 관한 중대 결심을 할 것을 분명히 말한다”고 말했다. 정부조직법 협상의 돌파구를 여야가 마련하지 못한다면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셈이다.

 

국회선진화법, 소수의 발목잡기법?

문 위원장의 사퇴는 협상 주체인 민주당 원내대표단의 공동 사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권의 처지에서도 이는 파국이다. 갈길이 바쁜 청와대와 새누리당으로선 협상할 대상이 사라지면 정부조직법 개정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날치기로 통과시켜야 한다. 19대 국회에서 도입된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전시에 준하는 국가비상 사태, 또는 여야 교섭단체간의 합의로 명시하고 있다. 여야의 합의가 없다면 직권 상정이 불가능한 구조다.

앞서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주도한 국회선진화법의 개정 문제까지 언급해 눈총을 샀다. 이른바 ‘몸싸움 방지법’이라고 하는 국회선진화법은 18대 국회에서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19대 국회 개원 직후 가까스로 통과됐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당을 이끌던 시점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내부 논란 속에서도 당론을 정하지 않은 자유투표로 이 법을 수용했다. 당시 국회 의사록에 따르면, 본회의에 참석한 박대통령도 찬성표를 던졌다. 공교롭게도 국회선진화법의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이 황우여 당시 원내대표였다. 그는 현재 새누리당의대표다.

유기준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 3월7일 “국회선진화법이 과도한 처방이었음이 드러났다”며 “좋은 취지와는 달리 (정부가) 일하고 싶어도 아무런 기능도 할 수 없는 코마(뇌사) 상태에 빠뜨렸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 코마법”이라고 주장했다. 심재철 최고위원도 “우려했던 대로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식물국회’ ‘식물정부’가 현실화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소수파의 발목잡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소수파 발목잡기법”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선진화법은 새누리당이 앞장서 개정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합의하고 찬성했는데, 지금 이 법을 욕하는 것은 새누리당 스스로 누워서 침 뱉는 격”이라며 “직권 상정의 추억과 날치기의 향수를 잊지 못해 금단현상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고 일축했다.

지난 3월8일 오후에도 김기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우원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공식 회담을 재개했지만 견해 차이만 확인하고 40분 만에 돌아섰다. 같은 시점 황우여 대표와 문희상 위원장도 국회에서 열린 한 행사에 나란히 참석해 별도의 티타임을 가졌다. 대치가 장기화되는 데 따르는 부담에서 여야 모두 자유롭지 않아 주말을 경과하며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물론 남아 있다.

 

사태 해결의 키는 박 대통령에게

하지만 역시 사태 해결의 키는 박 대통령 본인이 쥐고 있다는 게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의 공통된 관측이다. ‘대통령 박근혜’는 자신의 말대로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신념’에 대한 정치적 타협을 수용할 수 있을까? 이미 늦을 대로 늦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연착륙 여부도 여기에 달렸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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