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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방황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록 2013-03-03 16:02 수정 2020-05-03 04:27

이정희·유시민·심상정. 이들이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로 나란히 앉은 건 2011년 12월. 노회찬은 당 대변인을 자청했다. 겨우 1년여 전이다. 이들의 지금 처지는 제각각이다. 이정희. 지난해 4월 총선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 이후 ‘침묵의 형벌’을 거쳐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로 복귀했고, 지난 2월22일 당 대표로 합의 추대됐다. 유시민. 지난 2월19일 트위터를 통해 ‘직업으로서 정치’를 떠난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심상정. 지난해 12월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으나 후보 등록을 포기했다. 노회찬. 지난 2월14일 삼성 X파일 사건의 유죄판결로 의원직을 잃었다. 한때 ‘진보정당의 아이콘’이자 ‘동지’였던 이들이 다시 한자리에 앉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외면과 위기에 처한 건 진보정치인이 아니라 진보정치 그 자체다. 진보정당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다짐은 힘없이 들린다. 다짐만으로 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진보정당의 리더들은 대표성을 나눠가졌다. 그러나 당 분열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았다. 불과 1여 년 전 통합진보당 창당을 의결하며 손을 잡고 환히 웃던 이들은 지금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진보정당의 리더들은 대표성을 나눠가졌다. 그러나 당 분열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았다. 불과 1여 년 전 통합진보당 창당을 의결하며 손을 잡고 환히 웃던 이들은 지금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그는 왜 세 개의 당적을 가지게 되었나

회사원 이아무개(47·남)씨는 지난 1년을 “진보정당 지지자의 방황기”라고 표현했다. 대학 85학번으로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 뒤 ‘현장’에 들어갔다. 건강이 나빠져 서울에서 직장을 잡은 뒤 “빚을 갚는 심정”으로 진보정당을 후원했다.

이씨는 2008년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한 민주노동당 분당 때 진보신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오랜 인연을 맺어온 진보신당 당원의 권유 때문이었다. 2011년 노회찬·심상정의원이 진보신당을 탈당해 통합진보당 창당에 합류하자, 그도 통합진보당 당원이 됐다. 하지만 기존 진보신당의 당적을 버리지 못했다. 남아 있는 진보신당 당원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선 때 통합진보당에 한 표를 던졌지만, 총선 직후 터진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는 “진보정치의 꿈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줬다. 결국 통합진보당 당적을 버리고 네 번째 당적, 진보정의당 당적을 얻었다. 녹색당을 후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때도 그즈음이다. “정치적 논쟁만 일삼는 진보정당에 싫증 나” 녹색당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시집을 가도 친정은 친정이기 때문에” 기존 진보정의당 당적은 유지했다. 그러니까 이씨는 진보신당, 진보정의당, 녹색당 당원이다. 그런데 대선 때 찍을 후보가 없었다. ‘진보정당 지지자의 방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수도권의 기초의원인 ㄱ씨는 자신을 “철새 정치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 때 진보신당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2년 총선은 통합진보당으로, 대선은 진보정의당으로 치렀다. 2000년 민주노동당 발기인으로 진보정당에 발을 디딘 뒤 12년 동안 세 번의 탈당과 입당을 반복한 것이다.

“지역의 노동조합원들도 각 정당으로 흩어졌어요. 더 많은 조합원들이 ‘그냥 무당파’가 됐고요. 지역에서 만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어느 당과 같이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요. 지역사회에서 당은 몇몇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인 섬처럼 되고 있고, 오히려 정당을 배제한 무당파 지역운동의 흐름이 강화되고 있어요.” ㄱ씨는 “중앙당은 대선후보 사퇴 방침을 결정하기까지 지역 당원들과 한 차례도 토론하지 않았다. 대선 이후 당의 주요 지도자들이 이번 선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책임 있게 이야기하는 것도 듣지 못했다”며 “내년 지방선거 때도 과연 진보정의당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먹을 게 생기니 이전투구 빠져”

진보정당의 위기는 분열이라기보다는 자멸에 가깝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1월15일 통합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토론회에서 “원내에 진출하고 서푼어치라도 먹을 게 생기고 기득권이라고 불릴 만한 건덕지가 생기자 그것을 놓고 정파 간에 이전투구를 벌이는 와중에 생긴 불신이 증폭돼 분열이 나타났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진보신당, 2011년 통합진보당-진보신당, 2012년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진보신당이라는 계속된 분열은 진보정치를 파산 상태로 몰고 왔다. 12년째 진보정당 당원이고, 진보정의당 상근자인 ㄱ씨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통합진보당은 총선용 프로젝트 정당이었고, 진보정의당은 통합진보당 탈출용 프로젝트이자 대선용 프로젝트였다”고 말한다.

진보정당의 리더들은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대표성을 나눠갖고 눈앞의 선거에 올인했을 뿐, 대표성에 따르는 책임은 지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분열과 무책임으로 인해 진보정당이 수년간 일궈온 정책과 조직의 기반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정당 만들기 없는 선거 정당의 한계였다. 통합진보당에서 진보정의당까지의 사태는 부문 운동과 지역에서 진보정당의 활동 근거를 궤멸적으로 파괴시켰다”고 말했다. 정책 기반의 파괴는 진보정당의 앞날이 어두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다. 2000년 창당 때 민주노동당이 외친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도입 주장은 그 자체로 진보정당의 상징이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 등 진보정당이 꾸준히 제기해온 의제들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부르짖을 만큼 정치 의제화했지만, 정작 진보정당들은 10여 년 전보다 더 나아가지 못했다. 진보정당의 정책 일꾼들이 당 분열 과정에서 흩어져버린 탓이 크다. 대중 기반의 파괴도 마찬가지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지난 2월13일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집담회에서 “현장의 다수 조합원들은 진보정치에 대한 환멸과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다. 진보정당이 난립하고 각자 자신의 중심성을 내세우는 조건하에서 노동조합이 각각의 진보정당과 협약을 맺을지, 아니면 모두 함께 만들지 난망하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 건 지난해 총선 뒤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였다(왼쪽). 진보신당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독자 노선을 걸어왔다. 지난 2월1일 5기 당 대표로 선출된 이용길 대표.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진보신당 제공

진보정당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 건 지난해 총선 뒤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였다(왼쪽). 진보신당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독자 노선을 걸어왔다. 지난 2월1일 5기 당 대표로 선출된 이용길 대표.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진보신당 제공

“당과 이정희 후보가 부활했다”

갈 길이 난망한 상황에서 각 정당들이 내부 추스르기에 힘을 쏟는 건 당연한 일이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2월22일 선출된 이정희체제로 당 조직을 재정비했다. 통합진보당은 2월18일 현재 당원이 10만4553명, 당비를 내는 당권자가 2만9992명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에도 기초단체장 2명과 광역·기초의원 118명이 포진해 있다.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여전한데 ‘내부 결속’만 다짐한다. “이번 대선을 통해 당과 이정희 후보가 부활했다”는 공식 대선 평가가 대표적이다. 지난 2월14일 국회의 ‘북한 핵실험 규탄 결의안’ 처리 때 의원 6명 전원이 표결에 불참하는 등 ‘내 갈 길을 간다’는 태도가 명확하다. 그러면서 당의 과제로 ‘반박근혜 연대연합’을 강조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당 안팎의 인식 차이를 어떻게 좁혀나갈지는 불투명하다. 진보정의당은 지난 2월5일 서울 여의도 동아빌딩에서 당사 입주식을 열고 ‘2단계 창당’을 논의하고 있다. 국회의원 수는 6명으로 통합진보당과 같지만, 당원(2만여 명)과 당권자(6천여 명)는 5분의 1 수준이다. 시·도당이 없는 지역도 대여섯 군데나 된다. 지자체에서는 기초단체장 2명, 광역·기초의원 41명이 활동하고 있다. 6월까지 조직을 정비해 새 지도부를 뽑을 계획인데, 노회찬의 의원직 상실과 유시민의 정계 은퇴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노동을 강조하는 진보신당탈당파와 시민 참여를 중시하는 국민참여당계로 이뤄진 당 내부의 결속력도 통합진보당만큼 강하지 않다. 당의 정체성으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노회찬 전 의원은 대선 뒤 “지금까지 진보정당은 일종의 사민주의 정당으로 분류되는 게 정확하다. 낡은 금기로부터 진보정당을 해방시킬 때가 됐다”며 ‘한국형 사민주의 정립’을 제안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사민주의를 깃발로 내걸었을 때 이념 논쟁으로 갈 가능성 때문에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2단계 창당이라고 하지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보신당은 지난 2월1일 이용길 전 민주노총 대전충남본부장을 새 대표로 뽑았다. 6월까지 재창당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당명 개정도 계획하고 있다. 총선 때 당이 해산되는 바람에 정식 당명은 진보신당연석회의인데, 노동자당·평등당 등 여러 아이디어가 거론되고 있다. 토건주의에 반대하는 개념으로 ‘녹색사회주의’ 표방을 논의하고 있다. 당원은 1만5천여 명, 당권자는 6889명, 광역·기초의원은 13명이다.

줄줄이 의원직 상실 위기

3개의 진보정당 지지율을 합쳐도 한 자릿수를 넘지 못하는 현실에서 당장은 ‘존재감 확인’이 필요한 걸까? 4월 재·보궐 선거는 이들 정당의 공통 관심사다. 진보정의당은 노회찬 전 의원의 서울 노원병 지역구 지키기가 발등의 불이다. 통합진보당은 부산 영도에 민병렬 최고위원이 출마하기로 했고, 이정희 대표의 서울 노원병 출마설도 나돌고 있다. 박은지 진보신당 부대표는 “한진중공업이 있는 부산 영도에 후보를 내려 한다”고 했다.

외부적으로는 재판이라는 엄혹한 현실에 맞닥뜨려 있다. 통합진보당에서는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막겠다며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터뜨린 김선동 의원(전남 순천 곡성)이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다. 김미희 의원(경기 성남 중원)도 지난해 12월 1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 무효형인 벌금 250만원을 선고받았다. 오병윤 의원(광주 서구을)과 이석기 의원(비례대표)도 각각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진보정의당에서는 박원석 의원이 지난해 검찰의 비례대표 경선 수사 때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이와 별도로 서기호·정진후·김제남·박원석 등 진보정의당 비례대표 4명은 통합진보당에서 당적을 옮긴 ‘셀프 제명’과 관련해 통합진보당이 제기한 탈당 무효 소송에 걸려 있다.

무너진 리더십, 붕괴된 조직 기반, 정체된 정책, 대중의 싸늘한 시선…. 진보정당은 의미 있는 독자적 세력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노동중심성을 회복하자, 현장으로 돌아가자, 지역에 주목하자…. 여러 다짐이 들린다. 그러나 ‘어떻게’를 말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진보정당이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는 상당히 오래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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