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 은으로 된 길이 35mm 무궁화 잎 12개, 자수정으로 만든 3mm짜리 무궁화 싹 12개, 금·은 재질의 25mm 크기의 월계수 잎 30개, 역시 금·은으로 된 24.5mm 크기의 봉황 날개 한 쌍, 금관 문양(15mm)과 루비가 들어간 금관판(18mm), 칠보로 꾸민 태극(11mm)과 사괘(17mm).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 경식장(목에 거는 훈장)의 규격이다. 경식장에는 금 335.5g, 은 195g이 들어간다. 무궁화대훈장은 경식장, 정장(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가슴 아래에 두른 붉은색 ‘대수’에 다는 훈장), 부장(오른쪽 가슴에 다른 훈장), 금장(왼편 옷깃에 다는 훈장)이 1세트를 이룬다. 무궁화대훈장이지만 주요 상징 문양은 금관이다. 원래 무궁화 문양이 중심에 있다가 1967년 금관으로 바뀌었다. 훈장 제작에는 순도92%인 22K 금이 사용된다. 무궁화대훈장 1세트에 들어가는 금은 모두 717g(191.2돈)이다. 은은 417.5g이 들어간다. 대통령 부인이나 우방국 원수의 부인에게 수여하는 여성용 무궁화대훈장은 크기가 다소 작다. 여성용 무궁화대훈장 1세트에는 금 455.5g, 은 266g이 사용된다. 굳이 값을 따지자면, 한국금거래소 시세(2월21일 현재)로 금 1돈(3.75g)은 살 때 기준으로 22만원, 은 1돈은 4160원이다. 대통령 부부가 무궁화대훈장을 받게 되면 금값만 6800만원 정도가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2월19일 열린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무궁화대훈장 영예 수여안을 긴급 안건으로 올려 심의·의결했다. 앞서 2월13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대통령 부부에 대한 무궁화대훈장 수여안도 의결됐다. 훈장을 수여할 때는 훈장증도 함께 준다. 보존성이 높은 전통 한지로 제작된 훈장증에는 이렇게 적힌다. ‘무궁화대훈장증. 대통령 이명박.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다음 훈장을 수여합니다. 무궁화대훈장. 2013년 2월×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같은 이른바 ‘셀프 훈장’이다. 상훈법에 따라 대통령이면 자동적으로 받도록 돼 있는 훈장인 탓에 ‘이바지한 공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 없이 ‘헌법에 따라 수여한다’고만 돼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부부도 임기 말 무궁화대훈장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셀프 훈장이었다. 상훈법 제10조는 무궁화대훈장을 ‘대통령에게 수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에게도 수여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야 모양새 나쁜 ‘취임 훈장’이나 ‘셀프 훈장’ 논란을 피할 수 있다.
서독에서 훈장 뿌린 박정희 대통령
훈장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다. 독립과 정부 수립에 기여한 이들의 공로를 기리려고 1949년 4월 건국공로훈장이 처음으로 신설됐다. 한국전쟁이 터진 뒤인 1950년 10월에는 무공훈장이 만들어졌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이 대내외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1960년대 들어 보국훈장·수교훈장(1961), 산업훈장(1962)이, 유신 이후인 1973년에는 새마을훈장과 체육훈장이 만들어졌다. 2001년에는 과학기술훈장이 제정됐다. 현재 무궁화대훈장을 제외하고 등급별로 55종류의 훈장이 있다.
5·16 군사 쿠데타 뒤 민정 이양을 거부하고 눌러앉은 박정희는 1963년 12월17일 대통령에 취임하며 무궁화대훈장을 받았다. 수여 대상이 대통령 배우자까지 확대된 1967년에는 부인 육영수씨도 무궁화대훈장을 받는다. 그해 7월1일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을 앞두고 국무회의에서 황당한 결정이 나왔다. 취임식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외국 정상들에게 수여할 무궁화대훈장 5세트 제작을 일본 업체에 맡기겠다는 내용이었다. 국내에서 만든 훈장은 질이 떨어지고, 제작 일정도 맞출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1960~70년대 유엔에 북한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득표외교’가 한창일 때는 우방 확보와 수교가 중요했다. 외국 정상으로는 1964년 뤼브케 서독 대통령 부부가 처음으로 무궁화대훈장을 받았다. 당시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무궁화대훈장과 건국훈장공로장, 1등수교훈장 등 모두 42개의 훈장을 서독 쪽에 전달해 ‘훈장외교’라는 말을 낳기도 했다. 이후 말레이시아, 에티오피아, 월남, 니제르, 엘살바도르, 봉고, 세네갈정상 등에게 무궁화대훈장이 수여됐다.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은 훈장을 많이 뿌린다. 1961년 169건이던 서훈 건수는 이듬해 8224건으로 급증했다. 5·16 군사 쿠데타의 영향이었다. 5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1963년에는 2만5272명으로 서훈자가 늘어났다. 1966년 2145건이던 서훈 건수는 6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1967년 다시 8041건으로 급증했다. 서훈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석탄 증산, 콜레라 퇴치, 가정의례준칙 준수, 경제개발계획 수립, 성실 납세 등을 이유로 훈장이 수여됐다. 1973년 훈장 모양을 바꿀 때는 ‘유신이념과 민족중흥의 대업을 상징’할 수 있도록 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선 1980년에도 서훈의 급격한 증가 현상이 나타난다. 1979년 1882건이던 서훈 건수는 이듬해 3150건으로 늘어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훈장이 늘었다. 1997년 7626건이던 서훈 건수가 취임 첫해인 이듬해 1만2338건, 1999년에는 2만2526건에 달했다. ‘훈장 남발’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당시 정부는 공무원 명예퇴직, 교원 퇴직자의 갑작스런 증가를 이유로 들었다. 33년 이상 근속한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에게는 근정훈장을 준다. 정부 수립부터 2010년까지 이런저런 훈장을 받은 이는 모두 49만6736명에 달한다. 최근 해마다 평균적으로 1만3천여 명이 훈장을 받는 것을 고려하면 2013년 현재 총 서훈자 수는 50만 명이 넘는다는 얘기다. 2006~2010년 통계를 보면, 연간 서훈의 80% 정도를 근정훈장이 차지한다.
퇴직자 늘어나자 훈장도 늘어나
훈장은 그 자체가 명예다. 훈장을 받았다고 해서 별다른 혜택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2011년 국정감사에서는 무궁화대훈장을 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손이 연세대 국위선양자 전형에 합격했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 상훈담당관실 관계자는 “무공훈장이나 보국훈장서훈자는 국가보훈처에서 별도로 관리하며 일정한 혜택을 주지만 다른 훈장들은 혜택이 없다”고 했다. 과거 훈장을 받은 공무원에게는 승진 고과점수에 가점을 주기도 했지만 현재는 사라졌다고 한다.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무력진압으로 2006년 서훈이 취소(무궁화대훈장 제외)된 전두환·노태우씨는 각각 9개, 11개의 훈장을 아직까지 반납하지 않고 있다.
“조폐공사 사장이 바보 아니냐”
1986년부터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주화처 특수압인부 훈장과에서 훈장을 전량 제작한다. 이전에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민간업체 ‘정일사’에서 제작해 납품했다. 현재 정일사는 실비를 받고 훈장 수리와 분실한 훈장을 다시 제작하는 일을 한다. 행정안전부 쪽은 “연세가 많은 수훈자들이 이사를 하다가 분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는 “조폐공사 사장이 바보가 아니냐”는 말이 화제가 됐다. 조폐공사가 원가보다 적은 액수로 훈장을 납품해 적자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당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뱉은 말이다. 당시 조폐공사가 밝힌 훈장사업 누적적자는 100억원에 이른다.
무공훈장에는 투구 문양이, 산업훈장에는 닻과 톱니바퀴 문양이 들어 있다. 공적과 연관되는 상징이다. 문화훈장에는 세종대왕 얼굴, 체육훈장에는 월계수 잎, 과학기술훈장에는 해시계와 DNA 이중나선 문양이 사용된다. 새마을훈장에는 종과 벼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새벽종이 울렸네’의 그 종일 것이다. 앞으로 새마을훈장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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