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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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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는 있고 경제민주화는 없다

등록 2013-01-26 11:10 수정 2020-05-03 04:27

“국민 안전과 경제 부흥을 국정 운영의 중심축으로 삼고자 한다. 국민 행복 시대를 열기 위한 전제조건인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달라. 글로벌 경제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 것인지 해법을 찾아내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만들 수 있기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부 조직개편안에 ‘경제 부흥’만 담기고 ‘경제민주화’는 사라졌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1월15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부 조직개편안에 ‘경제 부흥’만 담기고 ‘경제민주화’는 사라졌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1월15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복지는 겨우 총리실 산하 위원회

박근혜 당선인은 1월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의를 처음 주재한 자리에서 ‘경제 부흥’과 ‘국민 안전’이라는 화두를 내놓은 이후 인수위에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 두 가지 축을 기준으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1월15일 인수위가 발표한 정부 조직개편안(17부3처17청)이 기본 얼개다. 행정부를 총괄할 국무총리와 각 부처의 장관이 정해지면, 박 당선인이 지향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기본 얼개에서 박 당선인이 ‘꿈꾸는 나라’를 짐작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박 당선인의 ‘경제 저울’이 성장으로 기울고 있는 게 아니냐는 점이다. ‘경제민주화’란 단어는 사라진 채, ‘경제 부흥’ ‘한강의 기적’ 같은 표현만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조직개편안의 핵심은 경제부총리를 부활하고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해 경제 부흥의 ‘양 날개’로 삼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폐지했던 경제부총리를 기획재정부 장관이 겸임하도록 했다. 경제부총리는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하는 11개 부처를 총괄하는 경제 사령탑 역할을 맡는다. 미래창조과 학부는 옛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합친 것이다. 여기에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 진흥 업무도 맡겼고, 대통령 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흡수했다. 애초 독립 부처 신설이 예상됐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대한 전담 차관까지 두게 됐다. 두 개의 ‘공룡 부처’가 탄생한 셈이다. 경제부총리는 “우리 경제가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가는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할 경제 책임의 주체가 필요하다는 의미”(강석훈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이고, 미래창조과학부는 “미래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조하는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것”(김용준 인수위원장)이라고 한다.

두 부서가 두드러지는 반면, 복지와 노동 등과 관련한 제도 강화나 강조점은 찾기 어렵다. 박 당선인은 국무총리실 산하에 신설되는 ‘사회복지위원회’를 복지의 컨트롤타워로 삼을 것으로 보이지만, 보건복지부·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 장관들로 구성되는 위원회 조직으로는 경제부총리만큼의 상징성이나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노동 분야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런 언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 조직 개편이 성장주의 담론에 치우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IAEA 권고로 만든 원전 규제 기구 무력화
946호 중앙부처 조직 변화

946호 중앙부처 조직 변화

박 당선인이 총리의 헌법적 권한을 보장하는 등 책임총리제를 약속한데다, 사회보장위원회가 박 당선인이 주도해 개정한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만큼 위원회의 실제 위상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렇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총리와 경제부총리의 역할 분담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경제부총리가 부활하자 총리는 ‘관리형’ ‘통합형’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터다. 결국 어떤 인물이 총리와 경제부총리로 지명되느냐에 따라 박 당선인의 ‘경제 저울’의 기울기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국민 안전’이라는 박 당선인의 국정 철학은 정부 조직개편안에서 오히려 역주행했다. 행정안전부의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꾸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은 각각 생활 안전과 식품 안전을 강조하겠다는 의지와 상징성으로 풀이된다. 박당선인은 대선 때 성폭력·학교폭력·가정파괴범·불량식품을 4대 악으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국민 안전과 관련해 첨예한 쟁점인 원자력 안전 정책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대통령 소속 원자력안전위원회(장관급)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의 원자력위원회로 격하·흡수했기 때문이다. 원자력안전위는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국제원자력위원회(IAEA)의 권고를 수용해 같은 해 10월 출범시킨 조직이다. 개발과 진흥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안전을 위한 규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지적에 따른 조처였다. 더구나 현재 원자력안전위는 규제보다 진흥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 개발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고 만든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원자력위원회를 두기로 한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인수위 교육과학분과 위원을 맡고 있는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가 한국원자력학회장을 지낸 원전 증설론자라는 점에서 이런 우려는 더 증폭된다. 변재일 민주통합당 정책위원장은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라고 이름을 바꿀 정도로 안전문제를 우선시하겠다면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폐지하고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두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1월16일 “독립적인 원자력 안전 규제 기관을 없애자는 것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인 원전안전 규제 체계를 갖게 될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과 현 정부에 무례했던 과정

‘불통 인수위’는 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도 여전했다. 각 부처의 업무보고(1월11~17일)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개편안이 전격 발표됐다. 이명박 정부 때 부활했다가 이번에 폐지된 특임장관실은 정부 조직 개편 발표 이틀 뒤에 ‘씁쓸한’ 업무보고를 하기도 했다. 정부 조직개편안 작성을 주도한 국정기획조정분과의 유민봉 간사(성균관대교수), 옥동석 위원(인천대 교수), 강석훈 위원(새누리당 의원) 말고는 다른 인수위원들은 자신이 관장하는 부처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야당에 사전 설명도 하지 않았다. 발표하기 전 여야 정치권과 의견 조율을 거쳤던 관행에 견줘보면 ‘일방 통보’였던 셈이다.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월17일 당을 찾아온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과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을 만나 “야당과 반대자와 언론이 다 알게 하는 과정을 약식이라도 거치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혼날 수 있다. 그 과정을 생략해버리면 빨리 갈 것 같지만 더 늦어진다”고 ‘충고’했다. 통일부와 여성부 폐지 여부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섰던 이명박 인수위 때보다는 야당의 반대 수위가 낮은편이지만, 정부 조직 개편 입법안에 대한국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바뀔 여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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