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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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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는 되고 브라질 소는 안 돼~

등록 2013-01-22 18:14 수정 2020-05-03 04:27

민생을 살피겠다는 대통령 후보자를 선택한 국민의 기대를 담고 새 정부가 들어선다. 집권 초기에 국민의 신뢰를 잃은 현 정권과 달리 새 정부가 지지해준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국민을 우선한 국정 운영을 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 점에서 현 정권의 2008년 출범 당시 미국 쇠고기 수입 조건을 정치적 입장만으로 무리하게 개방해 발생한 촛불집회 사태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정부의 첫 거짓말은 결국 꼬리를 물고 집권 전 기간에 끊임없이 작동하게 되었고, 이는 정권만이 아니라 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이었다.
위험평가 했으니 안전?

지난해 4월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고령우가 발견됐을 때 한국 정부는 수입을 중단하지 않고 검역만 강화했다. 당시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검역관이 경기도 광주의 한 보세창고에서 미국 냉동 쇠고기를 개봉해 검사하는 모습. 한겨레 김봉규 기자

지난해 4월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고령우가 발견됐을 때 한국 정부는 수입을 중단하지 않고 검역만 강화했다. 당시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검역관이 경기도 광주의 한 보세창고에서 미국 냉동 쇠고기를 개봉해 검사하는 모습. 한겨레 김봉규 기자

지난해 12월 초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국인 브라질의 13살 암소에서 비정형 광우병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다음날 즉시 쇠고기 수입 중단을 발표했고, 브라질에서 연 6만t 이상 수입하던 칠레를 포함해 중국과 러시아 등 여러 나라가 수입 중지 조처를 취했다. 브라질에서 겨우 15t 정도 수입하던 우리 정부도 브라질산 쇠고기 및 가공품의 수입 중단 조처를 내렸다. 쇠고기 수출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발생국의 역학조사가 끝나 사태가 파악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수입을 중지하는 것은 방역의 기본이기에 국제적으로도 문제될 게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의 신속한 이번 대처와 브라질과 유사한 비정형 광우병의 고령우가 지난해 4월 미국에서 발견됐을 때의 상황이다. 당시 국내 담당 부처인 농수산식품부 장관은 미국의 발병 통지를 받은 날부터 내부 담당 부서의 수입 중지 의견을 무시한 채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은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30개월 미만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고, 문제는 고령우에서의 비정형 광우병이라는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광우병에서 사료 문제는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이 해당 농장을 차단한 뒤 역학조사를 통해 사료 오염 여부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비정형 광우병 발생 뒤 한 달 가까이 지나서였다. 더욱이 30개월 미만 쇠고기를 수입하기에 안심해도 된다는 장관의 발언은 2008년 정부 주장의 허구성을 스스로 말해주는 것이다. 30개월 미만 수입 조건은 노무현 정부 때의 수입 조건이자 정부가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했던 촛불시민들의 요구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현 정권이 미국과 맺은 공식 쇠고기 수입 조건은 30개월 이상 허용이다. 비정형 광우병도 그 위험도에서 일반 광우병과 유사하게 취급하는 것이 국제적 견해임에도 불구하고 안전하다는 허위 사실마저 유포한 셈이다.

정부는 브라질과 미국에 대한 너무 다른 정부의 조처를 합리화하려고 미국은 위험평가를 한 나라이고, 광우병이 처음 발생한 브라질은 위험평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미국의 광우병 위험은 없고 광우병은 곧 사라질 질병이라고 했던 정부의 태도를 상기할 때, 미국에서의 광우병 발생이야말로 정부 위험평가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새로운 위험 발생을 보면서도 과거 위험평가를 했으니 괜찮다고 하는 것은 위험평가의 의미도 모르는 발언이다.

2년 전 초지로 사육하던 소

광우병 청정국인 브라질에서 발생한 이번 광우병은 2년 전에 사료가 아닌 초지로만 사육하는 지역에서 발생했다. 전형적인 광우병 증상도 없이 쓰러진 소라서 광견병을 의심해 규정에 따라 절차를 거치다가 검출된 사례다. 다시 말하면 발표된 시점에서 이번 광우병에 대한 많은 역학 자료가 이미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여러 나라가 수입 중지 조처를 취했다. 브라질에서 연 2만여t의 쇠고기를 수입하는 유럽연합(EU)의 의회에서는 EU 본부에 왜 질병 확인이 2년이나 걸렸으며, EU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한시적 수입 중지 고려 여부와 수입 중지 실행 시기에 대한 공식 질의를 하고 있다. 브라질 소 약 2억 마리 중에 1마리에서 처음 광우병이 발생했지만 각국 정부는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2008년 당시 전문가 검토도 없이 국제 기준을 무시한 채 갑자기 미국 쇠고기 수입을 개방한 정부.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은 없을 것이기에 발생하면 수입 중지하겠다고 광고한 정부. 한국처럼 미국 쇠고기를 개방하지 않는 나라는 모두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할 것이라던 정부. 주변국도 한국처럼 미국 쇠고기를 개방할 것이고 안 하면 미국과 재협상하겠다던 정부. 국내외에서 법정 전염병으로 등재된 광우병을 전염병이 아니라며 조만간 사라질 거라고 말하던 정부. 미국 쇠고기 수입 조건을 30개월 미만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부 무식한 선동세력에 의한 정부 비방에 불과하다던 정부. 하지만 그처럼 과학적이고 국제적이라던 정부의 주장과 달리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 주장처럼 진행된 것은 없고, 오히려 촛불시민의 주장이 옳았음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스스로 보여주었다.

이처럼 식품·의약품·화장품 등의 원료로 사용돼 광우병 감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소의 부산물마저 엄격히 통제하는 국제적 관례에 따라 정부는 미국이 아닌 나라에 대해서는 신속히 쇠고기와 가공품마저 수입 중지했다. 반면 미국을 위해서는 자국민을 대변해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에게 과학을 왜곡하고 국제 기준을 호도했다. 정당한 시민의 요구를 무시한 것도 모자라 정부 주장의 합리화를 위해 심지어 광우병 연구논문 하나 없는 이들을 정부 전문가라고 치켜세우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지금도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려고 국회에서마저 거짓 증언을 일삼는 행태로 이어지는 데 문제가 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

지난해 4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촛불시민의 발언을 뒤늦게 빌려서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말하던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국회에서 수입 중지 조처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막무가내식 주장을 했다. “광우병에 걸린 소에서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먹어도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OIE 규정에도 광우병 소도 유해물질인 SRM을 제거하면 안전하다고 나온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건강한 소에나 해당하는 말이다. 결코 광우병에 걸린 소는 그렇지 않다. 개인 의견이라면 모를까 OIE 규정 어디에도 그런 규정은 없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모습이다.

결국 정부와 공무원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 한다면 정부의 조처나 행동에 타당성과 일관성이 필요하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과학에 근거한 진정성이 결여된 채 임기응변의 말장난으로 당장 국민을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드러난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새 정부는 현 정부의 잘못을 진정으로 사과하고 국민의 처지에서 국민을 위한 참된 국정 운영을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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