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2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 참석한 택시 노동자·사업자 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택시의 대중교통 수단 인정과 액화석유가스(LPG) 값 안정화, 연료 다변화, 택시요금 인상, 택시감차보상 지원 등 5가지를 정부에 요구했다. 김정효 기자
‘시내 한 바퀴에 3원, 1시간 대절은 6원.’
일제강점기 경성(서울) 시내를 달리던 택시 요금표다. 1919년 12월 일본인 무역업자 노무라 겐조는 미국산 닷지 승용차 2대를 들여와 서울 남창동에 ‘경성 다꾸시’를 차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택시회사다. ‘다꾸시’(택시)라는 말도 이때 처음 알려졌다. 1912년에 전화로 부르면 찾아가 운행을 해주던 ‘가시끼리’(대절 택시)가 경성에 있었지만, 미국의 택시 영업 방식을 본떠 종로통과 명치정통(명동), 황금정(을지로) 등을 빙빙 돌며 손님을 기다린 건 경성 다꾸시가 처음이었다.
7년 뒤에는 택시 미터기도 등장했다. 경성역 건너편에 있던 ‘아사히 다꾸시’가 미국에서 쓰던 미터기를 들여왔다. 미국식 단위로 2마일(3.2km)에 기본요금 2원, 그리고 0.5마일(800m)마다 50전을 받았다. 그 뒤 계림택시·한성택시·대양택시 등 다양한 업체가 등장했지만,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모두 쇠퇴했다. 그 뒤 본격적으로 택시 영업이 재개된 건 한국전쟁 뒤 미군 차량을 개조한 ‘시발자동차’가 나오면서부터다.
대선 앞둔 택시업계 집단행동 큰 압박택시라는 말이 이 땅에 뿌리내린 지 100년째. 새해 첫머리부터 우리나라 택시 역사에 남을 일이 벌어졌다. 택시가 노선버스와 철도·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수단’이라는 법적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추가하는 내용을 담은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대중교통법 개정안)이 1월1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55명 가운데 찬성 222명, 반대 5명, 기권 28명이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고 통과됐다.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받는 건 택시업계의 숙원 사업이었다. 택시가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받으면, 정부 예산으로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업계의 오랜 적자난을 풀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17대 국회부터 꾸준히 발의됐던 대중교통법 개정안은 매번 폐기되는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전국택시노조·전국민주택시노조·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업계 4대 단체는 지난해 6월2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만여 명의 택시 노동자·사업자가 참여한 가운데 이날 하루 택시 운행을 멈추고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구체적인 요구도 내놨다. 이들은 택시의 대중교통 수단 인정과 액화석유가스(LPG) 값 안정화, 연료 다변화, 택시요금 인상, 택시 감차보상 지원 등 5가지를 정부에 요구했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택시업계의 집단행동은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택시업계 종사자 수만 모두 30만 명. 이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유권자 수가 적어도 50만 명은 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난해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서는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 민주통합당 노웅래 의원 등 무려 55명이 택시의 대중교통 수단 인정을 담은 5개 발의안을 쏟아냈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문재인 민주통합당·안철수 무소속 후보 모두 택시업계의 요구에 지지를 보냈고, 개정안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와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전국 택시의 25%가량이 공급 과잉한겨레21 택시정책 그래프
그러나 대중교통법 개정안 통과는 곧장 갈등으로 이어졌다. 가장 먼저 반발한 건 버스업계였다. 지난해 11월22일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버스업계는 택시의 대중교통 수단 인정이 버스에 대한 정부 지원금 삭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운행 중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결국 새누리당이 버스 유류세·통행료도 인하하도록 정부에 건의할 것을 약속해 버스 운행 중단은 없던 일이 됐다. 곧이어 언론에서는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퍼주기 정책’에 나선다고 비판했다. 이 가운데 가장 격한 반응을 내비친 건 주무 부처인 국토해양부였다. 지난해 11월14일 열린 국회 국토해양소위원회에 출석한 김한영 국토부 교통정책실장은 “(택시 대중교통 수단 인정은) 보편적으로 외국에서도 사례가 없고 또 학문적으로도 전혀 있을 수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법이 있다는 것 자체는 외국에서 보면 나중에 좀 우스개, 조롱거리가 될 그런 정도”라며 격하게 반발했다. 대중교통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뒤에도 국토부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 “택시의 대중교통 수단 인정은 대중교통 정책의 혼란을 야기하고 국가와 지자체에 과도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는 적극적인 반대 의견을 전달하고, 택시 종합대책(안)을 만들고 특별법까지 제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이 통과된 데 대해 허탈함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반대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처럼 격한 사회적 반대를 무릅쓰고 택시업계가 대중교통 수단 인정을 주장한 배경에는 오랫동안 지속돼온 택시업계의 불황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토부가 발표한 ‘택시산업 발전 종합대책 추진계획(안)’을 보면, 지난 15년 동안 택시 수송 실적은 23% 감소했지만 오히려 면허 대수는 24% 늘어나 2011년 기준 29만4천여 명이 택시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전체 택시 면허의 64%인 개인택시 면허에 대해 1970~80년대부터 2009년까지 꾸준히 양도·상속을 허용해 택시의 공급 과잉 상태를 낳아왔다. 현재 국토부는 전국 택시의 25%가량이 공급 과잉으로, 전국적으로 5만 대를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택시 노동자에게 실질적 도움 안 돼찬바람 부는 택시업계의 상황은 택시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악화로 이어졌다. 그동안 LPG 값이 뛰었지만, 물가 상승을 이유로 정부가 택시요금을 묶어놓는 바람에 택시 노동자의 주머니는 팍팍해졌다. 정부가 집계한 택시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개인택시가 약 180만원, 법인택시는 약 158만원이다. 2011년 기준 일반택시 노동자의 1년 이내 이직률이 51.1%일 정도로 열악한 상태다.
이에 대해 정부는 택시업계의 어려움을 이해 못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다만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받아 정부 지원을 받으려는 방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택시업계가 주장한 5가지 요구안 가운데 대중교통 수단 인정을 제외한 나머지는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택시가 대중교통 수단이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중교통 수단에 적용할 수 있는 환승할인, 통행료 인하, 소득공제, 버스전용차로 운행, 준공영제(영업손실에 대한 국고 보전) 등 약 1조원 규모의 추가적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미 2011년 기준으로 매해 버스(1조4천억원)와 택시(8247억원)에 유가보조금·면세 등 지원금을 주고 있는데, 개정안 통과로 택시업계에만 기존의 지원금을 합쳐 매해 약 1조9천억원의 지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21일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출석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차라리 여객자동차법에서 택시를 지원하는 규정을 만들면 몰라도 대중교통법에서 (지원을) 한다면 대량 수송이라는 그 본원적인 특성에 비춰 무리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4대 택시단체는 “올해 택시 관련 정부의 신규 예산으로는 택시 감차보상 50억원만 잡혀 있을 뿐 1조9천억원 수준이라는 예산 소요는 현재까지 관계 부처와 어떠한 협의도 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말은 뒤집어보면 택시업계에 ‘장밋빛’ 지원을 약속한 개정안이 예산이 없어 유명무실해지는 ‘깡통 법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 지원금을 보조해주는 방식이 택시 노동자에게 실질적 도움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택시 감차보상 지원이나 택시요금 인상 등은 실질적으로 택시업체의 이익을 보전해주는 효과를 낳지만, 택시 노동자에게는 별다른 혜택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택시 사업자에게 지원하고 있는 부가가치세 경감분(약 1800억원 규모)이 택시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현실을 봐도 그렇다. 이 때문에 지난해 6월 박병석 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이 감면액을 법인이 아닌 택시기사에게 직접 지급하도록 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서울역 부근에 택시가 늘어선 모습. 현재 서울에서 운행하는 택시 수는 7만2천 대로 인구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김봉규기자
이러 복잡한 사정 탓에 전문가들은 금전적 지원이 아닌 택시업계의 체질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의 택시 구조조정 사례를 본뜬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0년 전 우리나라와 비슷한 택시 공급 과잉을 겪은 일본은 일반택시의 경우, 전국을 공급 과잉 수준에 따라 4곳으로 나눠 면허 발급 등을 억제하도록 했다. 개인택시는 70살 이상 운전자의 면허를 회수하는 ‘면허정년제’를 도입하고, 나머지 기사의 경우 연령·운전경력 등에 맞춰 1~5년 단위로 면허를 갱신하도록 했다. 또 개인 면허를 사고팔기 힘들도록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여기에 우리나라처럼 택시 감차보상을 하지 않고, 요금 인상과 연료 다변화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유도했다. 서울보다 인구가 3배 많은 도쿄의 2011년 기준 전체 택시 수는 서울(7만2306대)의 76%인 5만5039대 수준이다.
더 이상 ‘호텔’이기를 거부한 ‘택시’지난해 11월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춘석 민주통합당 간사(맨 오른쪽)가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을 상정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현재 국회를 통과한 대중교통법 개정안은 청와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그가 1월28일 전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을 다시 표결에 부친 뒤, 재적의원의 과반이 출석해 이 가운데 3분의2가 찬성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2007년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택시업계와의 간담회에서 택시 대중교통 수단 인정에 공감을 표현했고 박근혜 당선인도 이미 찬성 의사를 밝혔다는 점, 국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한 법안이라는 점도 거부권 행사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의 지은이인 이병문 기자는 국민이 택시의 대중교통 수단인정에 괴리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로 “고급 교통수단인 택시가 우리나라에서 준 저급 교통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택시요금 인상을 두고) 호텔 이용을 거의 안 하는 일반인이 특급호텔 커피값이 왜 그렇게 비싸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도 말했다. 그만큼 택시의 위상이 애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은 7만2천 대의 택시가 오고 가는, 세계에서 택시가 가장 많은 도시다. 이처럼 호텔이 넘치는 도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대중교통 수단을 선언한 택시는 더 이상 호텔이기를 거부했다. 택시업계의 선택은 올바른 것일까.
참고 문헌 (전영선·인물과사상사), (이병문·교통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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