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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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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포퓰리즘인가 프레임 전쟁 노림수인가

등록 2012-10-31 13:55 수정 2020-05-03 04:27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정치 혁신안이 대선판에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혐오에 편승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안 후보가 10월23일 인하대 강연에서 국회의원 수 축소, 국고보조금 삭감, 중앙당 폐지를 뼈대로 한 정치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인천/김태형 기자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정치 혁신안이 대선판에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혐오에 편승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안 후보가 10월23일 인하대 강연에서 국회의원 수 축소, 국고보조금 삭감, 중앙당 폐지를 뼈대로 한 정치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인천/김태형 기자

“제가 국민을 대신해서 정치권에 묻고 싶습니다. 국회의원 수가 적어서 일을 못하는 겁니까? 민생에 필요한 법을 못 만드는 게 의원 수가 모자라서입니까?” 550석을 꽉 채우고도 빈틈이란 빈틈은 모두 메우고 있던 청중들은 “아닙니다”라고 외쳤다. “선거 때가 되니 모두 재벌 개혁, 반값 등록금, 전세값 대책 등을 걱정하시는데 지난 몇 년 동안 뭘 하신 거죠?”라고 말하자 박수가 터졌다. 지난 10월23일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인하대 강연에서 국회의원 정수 줄이기, 국고보조금과 중앙당 폐지를 뼈대로 한 정치 혁신안을 내놓았다. “의원 수를 줄인 만큼 예산이 절약되는데, (중략) 그 돈을 청년실업 또는 의원 정책 개발비로 줄 수 있다”는 말에도 박수가 쏟아졌다.

야당·시민단체·진보개혁 성향 학자들의 거센 비판

안철수는 포퓰리스트인가, 아니면 정치 혁신의 담지자인가. 대선판에 뜨거운 논쟁 하나가 불거졌다. 청중들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시민단체, 진보개혁 성향의 학자들 상당수가 비판에 나섰다. 안 후보 쪽은 “기득권의 반발은 예상했던 일”(유민영 대변인)이라며 비판 의견을 ‘기득권자들의 논리’로 간주했다. 그리고 이번 대선을 “국민과 기득권의 대결”(김성식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이라고 규정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 후보가 직접 논쟁도 벌였다.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라는 문 후보의 비판에 안 후보는 “국민 인식과 엄청난 괴리가 있다”고 맞받았다. 여기에 재야 원로들이 후보 단일화를 위해 두 세력이 ‘정치 혁신’을 첫 주제로 의견 교환할 것을 촉구해, 후보 단일화와 맞물린 정치 혁신 논쟁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평가는 냉혹했다. 안 후보의 정치 혁신 방안에 대한 비판의 요체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라는 측면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정치의 기능은 사회적 갈등을 민주적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조정·해결하는 것”이라며 “안 후보는 그 정치의 과정을 불편해한다는 점에서 ‘탈여의도’를 선언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는 기존 정치권 자체를 기득권 집단으로 바라본다. 박상훈 대표는 “이는 신자유주의 정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나 재벌 연구소, 보수 언론이 주장하는 정치의 축소와 일맥상통한다”며 “물론 안 후보의 선의는 이해가 되지만 국민의 뜻을 잘 이해하는 뛰어난 대통령 한 사람이 정치라는 과정을 우회해 시민과 직접 소통하고 통치하겠다는 건 온정주의적 군주정의 논리”라고 짚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조성대 한신대 교수도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숙고가 부족한 안”이라며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당이나 국회를 바로 세워서 없애야지, 정치를 없앤다고 불신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백번 양보해도 포퓰리즘적 행보, 나쁘게 표현하면 대의정치의 과정을 회피하려는 파시즘의 전조로까지 해석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창오 새시대전략연구소장은 “정치가 죽거나 줄어들면 시장이 커지고, 시장의 지배자인 재벌이 이득을 보며, 한국에서 재벌의 대변자인 관료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며 “반정치주의는 복지국가와 뉴딜을 해체하기 위한 미국 신자유주의자의 정치 철학”이라고 꼬집었다.

야당 “기득권 핵심은 지역주의인데, 오조준”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은 거꾸로 가는 방향이라는 지적이 많다. 안 후보가 인하대 강연에서 미국·일본 사례를 들며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서로 다른 정치제도를 무시한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오히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국회의원 1인당 유권자 수는 평균 9만8천 명이고 유럽은 평균 5만 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한 명의 의원이 16만2천 명의 국민을 대표한다”며 “의원 수를 늘린다고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안 후보의 방안은 이론적으로도 옳지 않고 현실성도 없다”고 말했다. 조성대 교수는 “국회의원이 더 적은 수의 유권자를 대표하는 구조가 당연히 더 민주적”이라며 “국력이 허용하는 한 국회의원 수는 늘리는 방향이 맞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제왕적 대통령과 행정부 권력을 견제하려면 오히려 국민의 대변자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평을 냈다.

중앙당과 정당 보조금을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현실을 무시한 아마추어적인 생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제도의 개선이나 안정적 통치에 대한 고민보다 정치를 불신하는 분위기에 편승한 인기 영합적 반정치의 정치”라며 “유권자들이 듣기엔 속 시원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실적인 힘의 역학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중앙당을 폐지하고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 일이 가능할까.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집권했을 때 어떤 형태로 정치를 끌고 나가겠다거나 발전시키겠다는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야당들은 정치 기득권의 핵심은 지역주의인데, 안 후보가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10월22일 “우리 정치가 움켜쥔 기득권의 핵심은 고질적 지역주의”라며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해 현재 지역구 246석, 비례대표 54석인 의석 분포를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조정하고, 지역구 선거구 획정을 독립 기구에 맡기자고 제안했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정치 기득권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지역 패권에 있는데, 선거제도는 그대로 둔 채 국회의원 수만 줄이면 똑같은 양상이 되풀이된다”며 “박수받기 좋은 것만 대책 없이 내놓은 게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거대 양당 구조에서 소외돼온 진보정당의 비판도 상당한 수준이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는 “국회는 기업이 아니다”라며 “법안이 하루 몇 개 이상 생산 안 된다고 감원·해고하는 식으로 정치를 바라보면 결국 권위주의나 소수 엘리트 통치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안철수의 정치 혁신안

문재인·안철수의 정치 혁신안

안철수 “강력한 반대는 예상했던 일”

안 후보는 이런 반발을 예상했다고 밝혔다. 인하대 강연을 “새로운 의견은 아직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언제나 의심받고 새로운 반대에 부딪힌다”는 존 로크의 말로 끝냈고, 10월26일 경상대 강연에서는 “예상한 그대로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반발을 예상하고도 이런 방안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

안 후보는 경상대 강연에서 “지엽적인 하나하나를 붙잡고 논쟁하지 말고 본질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본질은 “왜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게 됐는가에서 출발하고, 정치권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후보는 “(비판 가운데)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국민들의 맹목적인 정치 혐오에 편승한 포퓰리즘’이라는 말”이라며 “이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 요구를 대중의 어리석음으로 폄훼한 교만한 생각”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분이 계시다는 게 참 착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혁신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지난 10월25일 여태 내놓았던 정치 혁신 관련 제안을 정리해 보도자료로 내놓은 데 이어, 이날은 안 후보가 직접 ‘강연 정치’를 통해 반격한 것이다. 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는 “가장 먼저 얘기했던 게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국회 인사청문회 결과 존중 등 국회 권한 강화였다. 그런 맥락은 떼놓은 채 국회의원 정수 축소만 놓고 반정치니 포퓰리즘이니 비판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지역구를 줄이겠다는 문재인 후보 안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안 후보 쪽은 2000년 외환위기의 여파와 시민단체의 낙선·낙천 운동의 영향으로 국회의원 수를 273명으로 줄였던 ‘전례’를 강조한다.

그러나 안 후보 캠프 내부에서도 이번 혁신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혁신포럼 소속의 한 교수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 안 후보가 왜 그런 식으로 얘기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3개의 정치 관련 포럼 가운데 이번 안을 만든 정치혁신포럼을 제외한 협치포럼·민주포럼 소속 학자들 상당수는 비판적 견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포럼 소속의 한 정치학자는 “논란이 조용히 묻혔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안 후보 캠프의 정책포럼 ‘내일’은 분야별 포럼으로 나뉘어 있는데, 포럼은 정책 제안 그룹이지 ‘캠프 소속’이 아니라고 안 후보 쪽은 설명한다. 포럼이 주어진 과제에 대해 여러 방안을 올리면 선택은 안 후보가 한다는 것이다. 정치혁신포럼에서도 이번 방안에 대해 11명 가운데 2~3명이 반대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정리된 의견’으로 7가지 방안이 올라왔고, 이 가운데 안 후보가 3가지 방안을 발표했다고 한다. 안 후보 쪽은 이런 정책 결정 방식을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해 소통하는 ‘협치’라고 강조하지만, 이번 정치 혁신안에 대한 내부 반발은 캠프의 역량 약화와 안 후보의 리더십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안 후보가 소통, 공감, 수평적 리더십을 내걸었다면 캠프 내부에서부터 보여야 한다”며 “본인 생각에 맞는 소수 의견을 채택해 과감하게 질러버리는 스타일이라면 민주적 리더십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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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민주당을 향한 ‘낙인 효과’?

캠프 안팎의 반발에도 안 후보가 ‘국민 눈높이’를 내세워 이번 방안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이번 대선을 ‘기득권 대 미래 가치의 대결’ 구도로 가져가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기존 정치권과 차별화하는 ‘프레임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송호창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은 “정치 불신에 편승한 게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 캠프는 협력의 정치, 직접 민주주의 강화 방안을 차례로 내놓으며 정치 혁신 공세를 계속할 태세다. 안 후보의 정치 혁신안이 일반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문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을 깐 것으로 보인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새누리당뿐 아니라 민주당까지 낡은 세력으로 몰기 위한 프레임을 던진 것”이라며 “정치 혁신의 목적보다는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성대 교수는 “반정치·반정당적 국민의 여론을 선동해서 정치적 우위를 누리겠다는 선거 전술로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안 후보가 노린 ‘프레임 효과’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 같다. 특히 야권의 두 후보가 정치 혁신이라는 화두를 놓고 경쟁하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소외되고 있다. 안 후보 캠프의 한 핵심 인사는 “단일화 문제에서도 제대로 된 정치 혁신 방안이 무엇이냐를 놓고 양쪽이 논쟁하며 전체 대선 판을 주도해나가는 게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문 후보와 민주당에 끼치는 ‘낙인 효과’도 상당하다.

안 후보 쪽은 정치 혁신이라는 의제를 주도해나가면서도, 이것이 단일화 논의의 매개로 거론되는 것은 꺼리고 있다. 문 후보 캠프 새로운정치위원회의 정해구 간사가 지난 10월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 쇄신 대안은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공개 토론을 제안했으나, 안 후보 쪽은 “토론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게 좋다”(유민영 대변인)며 거부했다. 문 후보와 나란히 앉는 테이블이 아니라, 안 후보가 직접 대중을 만나는 방식으로 정치 혁신 논쟁의 주도권을 계속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문 후보 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는 “황당하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단일화 구도에 영향 끼칠 수도”

그러나 논쟁이 가열돼 안 후보의 약점으로 꼽히는 ‘안정성’ 문제가 부각되면 안 후보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모든 정책에 무조건 지지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며 “더구나 정치적 경험이 없는 안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가 정치적 참신함인데, 그것이 정치적 무정견이나 불안정함으로 나타난다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제3의 후보, 무소속 후보로서 이런 방안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일반인들은 공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며 “부동층이 워낙 적긴 하지만, 야권과 진보 진영 쪽에서 비판이 많기 때문에 단일화 구도에서는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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