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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넘어야 할 세 개의 장벽

등록 2012-09-04 17:33 수정 2020-05-03 04:26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오른쪽)가 8월30일 오후 열린 충북 합동연설회에서 1위를 차지한 뒤 2위를 한 손학규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3위를 한 김두관 후보.  청주/강재훈 선임기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오른쪽)가 8월30일 오후 열린 충북 합동연설회에서 1위를 차지한 뒤 2위를 한 손학규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3위를 한 김두관 후보. 청주/강재훈 선임기자

“이번 경선 과정에서 저희들이 보여준 것은 민주통합당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슬픈 사실입니다. 지난 총선의 아픔을 겪고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는 8월30일 충북 경선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은 우리 정치의 혁명적 변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에 들어온 지 몇 달 안 된 제가 쟁쟁한 정치 선배들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현상, 정당 근처에도 가지 않은 안철수 교수가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현상이 그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역 현안을 나열하며 표심 잡기에 애썼던 제주 경선(8월25일) 연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국민의 명령은 정치를 바꾸라는 것”이라며 ‘정당의 쇄신’을 강조했다. 이날 발언은 울산 경선(8월26일) 파행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정치 개혁과 민주당 쇄신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읽힌다.

경선 조속히 끝내고 안철수와 단일화 노려

그리고 문 후보는 이날 또다시 1위를 했다. 제주·울산·강원(8월28일)에 이은 초반 4연전 싹쓸이다. 상대적으로 약세 지역으로 분류된 지역들이었다. 누적 투표율은 52.8%다. 문재인 대세론은 한층 강화됐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대세임을 확인하는 것일 뿐, 달라지는 건 없다. 민주당은 혁신 없는 통합, 쇄신 없는 선거를 되풀이하며 외면받고 있다. 그 한가운데 문 후보가 서 있다. 문 후보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고, 4연승에 감동이 없는 이유다.

문 후보의 목표는 결선투표 없는 1위다. 김경수 공보특보는 “경선을 조속히 끝내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경쟁력 강화론’과 ‘경선 흥행론’에 일장일단이 있는데, 우리는 전자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단일화라는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 예비경선도 치렀고, 본경선에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결선투표까지 하게 되면 오히려 힘이 빠지게 될 거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결과로는 결선투표 없는 1위라는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물론 변수는 남아 있다. 초반 4연전의 선거인단 규모는 9월1일 전북 경선(9만5707명) 한 곳에도 못 미친다. 문 후보의 누적 득표율은 제주(59.8%), 울산(57.3%), 강원(55.3%), 충북(52.3%) 등을 거치며 점점 낮아졌다. 손학규 후보가 충북에서 선전해 27.5%까지 치고 올라왔다. 김두관 후보는 16.1%, 정세균 후보는 4.1%를 기록 중이다. 9월6일 광주·전남 경선은 중반기의 중대 변수다. 선거인단이 13만9275명에 달하는데다, ‘호남의 선택’으로 상징하는 바가 크다. ‘비문’ 후보들의 연대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제는 전북이나 광주·전남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거듭 확인돼 경선이 사실상 마무리되더라도, 애초 목표했던 ‘경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이뤄질 것이냐는 점이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은 한국 정당 사상 최초의 국민참여경선에서 움텄다. 160만 명의 선거인단 신청자 가운데 추첨된 3만여 명이 참여한 경선에서 ‘변방의 노무현’은 쟁쟁한 선배 정치인들을 제치는 돌풍을 일으켰다. 참여와 역동성이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의 열쇳말이었다. 2007년에는 거꾸로 갔다. 100% 완전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으로 선거인단이 193만 명에 달했지만, ‘박스떼기’ ‘버스떼기’ 등 동원 경선 논란으로 얼룩졌다. 그해 대선에서 민주당은 530만여 표 차이로 대패했다. 현재 진행 중인 201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보면, 2002년보다는 2007년이 떠오른다. 서울 지역 선거인단으로 등록하고 투표일을 기다리던 홍아무개(34·여·회사원)씨는 “경선 첫날부터 경선룰을 놓고 싸우는 걸 보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싶더라. 너무 화가 나서 투표를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제주 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 불거진 경선룰 논란은 울산에서 ‘비문’ 후보들의 경선 불참 사태로 이어졌다. 자신들의 득표율이 기대에 못 미치자 이미 정해진 룰에 시비를 거는 모양새였다. 비문 후보들의 선택은 극단적이었고, 당 지도부의 대응은 허술하고 늦었다. 결국 경선은 하루 만에 재개됐지만, 경선룰을 둘러싼 파열음은 여전하다. 손쉽게 할 수 있는 모바일투표가 대부분임에도, 투표율은 50% 후반대에 그치고 있다. ‘모바일 혁명’이니 ‘엄지 혁명’이니 했던 이전 당 대표 경선 때 단어들은 들리지 않는다. 후보들이 모바일 선거인단을 동원하는 데만 열을 올린 결과로 보인다.

“비노 세력들 안철수에게 눈 돌릴 가능성”

이런 경선의 위기는 고스란히 최종 후보의 본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특히 경선룰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에는 당내 뿌리 깊은 ‘친노-비노’의 갈등이 내재돼 있다. 당 지도부의 경선 관리 능력 부족에 대한 비문 후보들의 불만이 고조되며 6월9일 당 대표 경선 때 불거졌던 ‘이해찬 당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담합’ 논란이 ‘문재인-이해찬 담합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손·김 후보 쪽은 당 지도부가 ‘태생부터 선거 관리’까지 ‘문재인 편들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충북 경선에서 이 대표가 인사말을 하려고 단상에 올라서자 두 후보의 지지자들은 “똑바로 하라”고 야유했다. 비문 후보들은 “네 편은 절대 안 되고 내 편만 된다는 패거리 정치”(정 후보), “패권주의라는 유령이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다”(김 후보) 등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손 후보는 지역 경선에서 모바일투표를 먼저 한 뒤 연설을 하는 방식에 대해 “웃기는 경선”이라고 말했다. 손 후보 쪽은 문 후보 캠프가 일부 당 지도부와 선거관리위원들한테 내부 선거운동 대책을 담은 전자우편을 보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 와중에 불거진 총선 공천헌금 의혹도 민주당 경선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 ‘라디오21’ 편성본부장 양경숙씨가 민주당 공천 희망자 3명한테서 30여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이와 관련해 박지원 원내대표의 이름이 연일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경선 후보들의 경쟁이 ‘친노-반노’ 대결 양상으로 이어지고 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 문 후보에게는 ‘친노 그룹 대표 선수’ ‘당내 기득권’이라는 이미지가 계속 덧씌워진다. 당의 한 관계자는 “비노 세력들이 당 밖의 안철수에게 눈을 돌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통합과 쇄신 없이는 문 후보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문 후보 쪽은 전략의 추를 안철수 원장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로 옮겨간다는 전략이다. 안 원장에 대한 ‘비교우위’를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비교우위의 근거로 ‘안정성’과 ‘정체성’을 꼽는다. 문 후보의 한 핵심 참모는 “문 후보는 정당이라는 기반과 국정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안 원장보다 안정성이 있고, 삶의 궤적을 볼 때 민주화운동과 역사의식에서 안 원장과 차이가 있다”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싸워 이기려면 이런 점에서 우위인 문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컨벤션 효과 등으로 인해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추가 상승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단순 지지율이 아니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일대일 대결에서 안철수 원장한테 밀리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오는 게 중요한데,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플러스 알파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비교우위론’이 문 후보 경쟁력 강화할까

문 후보 쪽은 최종 후보로 확정되면 안 원장 지지율을 거의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른 민주당 후보들의 표를 흡수하고 경선 컨벤션 효과를 더하면 지지율을 20%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8월27~28일 실시된 KBS-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40.7%, 안 원장은 24.1%, 문 후보는 13.7%를 기록했다. 문 후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인 이목희 의원은 “안 원장 지지율에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라는 반사이익적 요소가 일정 부분 포함돼 있다고 본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정책 이슈를 제기하는 등 내용을 채워나간다면 그 반사이익적 지지가 문 후보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안 원장은 4월 총선에서 야권이 예상 밖으로 패한 뒤 대선 출마를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민주당 후보가 상당한 지지율을 갖게 되면 안 원장의 고민 지점도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문 후보 쪽이 구체적인 단일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문 후보가 경선 전날인 8월24일 서울 서초구 평화재단을 비공개로 방문해 안 원장의 ‘멘토’인 법륜 스님과 조찬을 함께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문 후보 쪽의 ‘비교우위론’이 실제로 문 후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할지는 불투명하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이 높은데다, 참여정부 국정 경험이 ‘친노 프레임’에 갇혀 부정적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8월27일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우리 정치권이 보여준 행태에 대한 불만이 너무나 광범위하다. 정당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정당이나 정당이 낸 후보보다는 정당 밖의 사람들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문 후보들은 “반성과 성찰 없이 돌아온 참여정부로는 다시 정권을 달라고 할 수 없다. ‘박정희 대 노무현’ 구도로는 안 된다”(손 후보), “(당내) 기득권과 얽혀 있는 사람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김 후보)며 문 후보를 공격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 확정되면 당 쇄신할 것”

문 후보 캠프의 한 핵심 인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최종 확정되면 강도 높은 정치 개혁과 당 쇄신을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찬-박지원 체제’를 넘어 ‘문재인표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된 뒤 봉하마을 방문 등 파격적이고 거침없는 행보를 하고 있는 것과 견주면, 문 후보는 아예 출발도 못한 셈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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