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 구박, 원박, 돌박…. 현재의 새누리당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신조어들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원조 친박’ 이혜훈 최고위원은 이를 “건강한 분화”라고 규정했다. 특정인 또는 소수의 측근을 위한 줄세우기가 아니라 정책적 다양성의 반영이라는 해석이다. 연말 대선 정국의 최전선에 설 이 최고위원을 5월29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만났다.
“정책과 노선이 분화되고 있다”
-총선과 원내대표 선거, 전당대회를 통해 새누리당은 온전히 ‘친박당’이 됐다.
=좀 다르게 본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사실은 친이·친박이 없었다. 친이가 뭐냐.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뭉친 조직 아닌가. 이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 것도 아니고, 친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대응 개념인 친박도 무의미해졌다. 당권파와 비당권파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러면 특정 정당을 떠올리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주류와 비주류가 더 맞을 것 같다.
-2008년 총선 직후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계 정당’이었다.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존재하지 않는 정당의 폐해는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당이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경우에는 그렇다. 하지만 지금의 새누리당, 아니 친박 내부를 보면 친이와 친박이 경쟁할 때보다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건 분화로 보는 것이 맞다. 어떤 언론은 ‘친박 개혁파’라는 용어도 사용하더라. 특정 주자를 위한 줄세우기가 아니라 정책 성향과 노선이 달라서 분화되고 있다면 내부의 견제와 균형도 이뤄지고 있다는 거다.
-당내에서 가장 두드러진 노선 차이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한구 원내대표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의 논쟁이다.
=분명 차이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재벌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해 국부를 창출하는 긍정적인 면을 인정한다. 동시에 재벌 내부에 문제가 있으므로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다. 다만 무엇을 고칠 것인가라는 각론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비대위를 거치며 친기업적 사고를 갖고 있던 당내 경제통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경제민주화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가장 친재벌적인 성향의 아무개 의원은 요즘 경제민주화 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김종인의 문제의식이 당 사람들의 생각을 변하게 했다고 본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근혜 전 위원장의 소신과 철학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글쎄, 이한구 원내대표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이 대표가 선출돼 박 전 위원장의 태도가 좀더 시장주의적인 쪽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대표는 정책위의장이 아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와 대적할 수 있는, 관리형이 아닌 야전형 원내대표로서 그의 기질이나 성품이 작용한 것이지 정책만으로 선택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당에도 초선 의원이 워낙 많아서 박근혜 전 위원장이 이한구 원내대표를 지목했다고 볼 수 없다. 박근혜 위원장이 제기할 경제민주화는 현실적으로 두 시각 사이 어디쯤으로 수렴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김종인 버전’에 가깝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7인 위원회’가 잘못인가”
최근 새누리당에선 최경환 의원이 핵심 실세로 부상했다. 특히 공천 과정을 주도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자 최 의원을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이재오 의원에 빗댄 ‘최재오’(최경환+이재오)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혜훈 최고위원의 생각이 궁금했다.
-정말 ‘최재오’가 맞나.
=공천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 오죽하면 내가 공천에 떨어졌겠나. (웃음) 최경환 의원 등 거론되는 몇몇 분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박근혜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지금의 박근혜 전 위원장이 있겠나. 종합적으로 보면 상당히 긍정적인 리더십이라는 방증 아니겠나.
-이혜훈 최고위원과 유승민 의원을 묶어 친이계 소장세력인 ‘정두언 그룹’과 비교하는 시선도 있다.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책이든 정치든, 그래야 조직이 건강해지는 것이다. 다수와 다른 소수의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당이든 계보든 위험한 것 아닐까.
-총선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적극적인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대선도 같은 전략인가.=박 전 위원장에게 직접 들은 것은 없지만 그 방향이 좋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에서 주류였던 분들과 지금 주류로 부상한 사람들은 원래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한 테두리 안의 식구들 아닌가. 패밀리라는 이야기다. 상대를 원수 대하듯 하는 것은 국민에게 공감을 얻기도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과거가 잘못이라면 새로운 행동을 하면 된다. 단순히 과거를 지탄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다.
-최근 ‘7인위원회’ 논란도 악재 아닌가.
=그건 이해가 안 된다. 대선 후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조언을 듣겠나. 그분들이 무슨 컨트롤타워도 아니고, 풍부한 국정 경험과 경륜을 가진 분들이 한 달에 한 번 식사하는 자리에 박 전 위원장이 1년에 한 번 정도 나간 거다. 박 전 위원장이 그 정도의 조언을 듣는 그룹은 수백 개도 더 될 거다. 그게 잘못일까? 연세가 있고 이념 좌표가 오른쪽에 있는 분들 이야기도, 왼쪽에 계신 분들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내가 제기하고 있는 ‘범보수연합’의 문제의식도 비슷한 맥락이다. 모두 다 녹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친이계 대선주자들이 대거 출마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출마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많은 후보의 경쟁을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당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다만 금도는 지켜야 한다. 누가 봐도 국민이 가장 원하는 후보에게 “킹메이커를 하라”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발언은 불필요한 불협화음만 만드는 일이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한다고 경선 결과가 바뀔까. 반대하는 이유는.
=흥행도 좋지만 원칙이고 뭐고 다 희생해서 재앙을 부를 수 있는 일을 해선 안 된다는 거다. 오픈프라이머리에 여러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건 다들 공감하지 않나. 그런데 시간이 부족하다.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이를 받아들인다면 역선택이든 불법·탈법 경선이든 재앙이 올 가능성이 ‘0’은 아니지 않나. 무엇보다 오픈프라이머리 정신은 이미 현행 룰에 구현돼 있다.
“‘박근혜 시대’는 열린 사회일 것”-‘박근혜 시대’는 ‘이명박 시대’와 어떤 점에서 다를까.
=열린 사회다. 이명박 정부는 기회와 정보와 권한이 소수 그룹에 의해 독점된 느낌이었다. 소통이 안 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니겠나. ‘박근혜 시대’는 사회 각계의 목소리가 더 존중되고 열려 있는 사회일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는 것이 희망이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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