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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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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동맹은 성공할까

이해찬-박지원 체제에 당내 비판 거세…
미래지향적 정책과 인물 고민하기보다 ‘친노-비노’ 따지는 민주통합당의 현주소
등록 2012-05-05 19:16 수정 2020-05-03 04:26
이해찬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오른쪽)과 박지원 최고위원(왼쪽)이 각각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나눠 맡기로 합의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합의 배경에 '문재인(가운데) 대망론'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월26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민생공략실천특위 회의에서 세 사람이 나란히 참석하고 있다. 강창광 <한겨레>기자

이해찬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오른쪽)과 박지원 최고위원(왼쪽)이 각각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나눠 맡기로 합의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합의 배경에 '문재인(가운데) 대망론'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월26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민생공략실천특위 회의에서 세 사람이 나란히 참석하고 있다. 강창광 <한겨레>기자

돌아온 두 남자가 민주통합당을 살릴 수 있을까. 그들이 말한 대로 대선 역전극을 이룰 수 있을까. ‘이해찬-박지원 콤비’ 얘기다. 정권 교체를 위한 단합이라고 주장하는데, ‘올드보이들의 담합’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문제의 본질은 두 남자의 거취가 아니다. 민주당은 총선 승리를 새누리당에 헌납한 뒤 ‘친노냐 비노냐’ ‘중도냐 진보냐’는 소모적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총선 평가는 왜 안 하나? 총선 패배에 대한 반성도 성찰도 없이 자기들끼리 자리 정하고 오더 때리면 그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나? 1980년대도 아니고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 한 수도권 당선인은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자기들끼리 정하면 의원, 당원, 국민이 그대로 따라가나? 그들이 적임자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우리가 버리려는 정치 행태다. 친노-비노가 아니라 정책과 가치를 중심으로 누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것이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

두 전직 대통령에 기댄 ‘과거 패러다임’

두 남자의 합의는 전격적이었다. 원내대표 후보 등록 마감을 하루 앞둔 4월25일, ‘이해찬 당 대표-박지원 원내대표’라는 합의 내용이 당내에 ‘통보’됐다.

킹메이커로 주목받아온 이들의 구상은 ‘친노-비노 역할분담론’이다. 리더십과 투쟁력이 있는 두 사람이 역할을 나눠 맡아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년 묵은 구렁이와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콤비. 공격력은 장난 아니겠다”(트위터 @byguilty)라는 기대감에서 보이듯, 이는 지난 총선 때 ‘한명숙 체제’에 대한 실망이 반영된 구도라 할 수 있다. 5월4일 뽑히는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 대표 선거를 관리하고, 6월9일 뽑히는 당 대표는 대선 후보 경선을 책임지게 된다.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비판의 핵심은 ‘과거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4월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권 교체를 위한 강력한 연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가치의 연대여야 하지, 권력의 연대여서는 곤란하다. 왜 총선에서 패배했는지 깊이 성찰하고, 새롭게 변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역동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당의 핵심 관계자는 “국민은 새누리당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민주당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 민주당은 언제까지 혁신을 거부하고 반사이익에만 기대려 하느냐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담합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세력의 결합’이라는 양쪽의 의미 부여에 대해서도 싸늘한 반응이 적지 않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야당심판론’에 맥을 추지 못한 이유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후광효과에 기대려 했을 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등 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사안에 대해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미래’와 관련해서는 인물도, 정책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총선 이후에도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 등 정책 과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민주당은 친노와 친DJ를 넘어서는 플러스알파가 필요한데, 이해찬-박지원 체제로는 그게 어려워질 수 있다.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 친노 책임론을 희석시키려는 이해찬 상임고문과 호남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박지원 최고위원의 구태의연한 공학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맥을 같이한다. 원내대표 후보로 나선 전병헌 의원은 “오직 두 사람만이 친노고 친DJ라는 특권의식을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망론’ 밀어붙이기 의혹

당내 민주주의를 무시한 두 사람의 동맹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야권의 대선 과정에 상당한 상처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내 대선 유력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이 두 사람의 합의 과정에 ‘개입’한 것과 관련해, “특정 대선 후보가 관여한 담합 체제가 대선 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이낙연 의원)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지원 최고위원은 “문(재인 상임고문)을 만났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않았다”며 이번 합의가 문 상임고문에 대한 지지를 뜻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당내에는 친노 그룹이 박 최고위원을 끌어들여 ‘문재인 대망론’을 밀어붙이려 한다고 의심한다. 문 상임고문은 “담합이 아니고 단합으로 오히려 바람직한 모습이다. 당내 선거에 임하면서 세력들끼리 또는 유력 인사들이 제휴하기도 하고 역할을 분담하기도 하고 단일화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다.

한편으로 ‘이해찬-박지원 콤비’가 ‘원탁회의’(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의 제안으로 성사됐다고 주장하며 원탁회의의 권위를 이용했다는 비판도 사고 있다. 백낙청 교수,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등 진보개혁 진영의 사회원로들로 구성된 원탁회의는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야권의 선거 연대를 중재하고 정책을 기초하는 역할을 해왔다. 원탁회의는 4월27일 보도자료를 내어 “민주당 내부 경선 등과 관련한 논의를 한 바 없다”고 밝혔다.

당내 권력 문제에 앞서 불거진 중도강화론 논란도 민주당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잘못된 번지수’의 대표적 사례다. 4월16일 김진표 원내대표가 “진보적 가치를 내세웠는데 왜 중도층을 끌어안는 데 실패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 당의 외연을 넓히는 과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점화됐다. 민주당의 ‘좌클릭’이 총선 패배의 원인이라는 주장인데, 당내 보수파들이 엉뚱한 노선 논쟁을 일으켜 주도권 싸움을 벌이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총선에서 패한 건 진보적 정책과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우왕좌왕했기 때문이지, 노선 자체가 아니라는 얘기다. 개혁 성향 의원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는 4월27일 성명에서 “민주당은 선거 국면을 주도할 역량, 이슈를 관리하는 능력, 지역·이념·세대의 변화에 대한 대응에서 미흡했다. 당의 중심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진보개혁 세력의 강화, 서민·중산층에게 확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정책과 이슈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내대표 선거 ‘이변’ 가능성?

당장 관심은 5월4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날지에 모아진다. 박지원 최고위원의 당선 가능성이 높지만, 의원들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투표하는 선거의 특성 때문에 예상을 벗어난 사례가 많았다. 민평련 등이 지지를 선언한 유인태 당선인, 호남 출신의 이낙연 의원, 정세균계인 전병헌 의원 등 3명의 후보가 ‘반박지원 연대’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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