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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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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문은 빼꼼히 열렸지만

6자회담 재개 두고 진전된 의견 교환한 북-미 제네바 회담… 북핵문제 해법 찾으려면 한-미의 ‘개입을 통한 관리’로의 정책 전환 절실
등록 2011-11-01 16:41 수정 2020-05-03 04:26

다시 협상의 문이 열렸다. 성과는 있었다. 10월24일부터 이틀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미 접촉이 끝나고,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특별대표가 말했다. “긍정적이고 건설적이었다.”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도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남았다. 보즈워스 대표는 “협상 재개에 충분한 합의를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계관 대표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문제도 있다”고 언급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후속 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쟁점에 대한 북-미 양국의 합의가 중요하다. 조금 더 후속 대화를 하는 것이 나쁠 게 없다. 장외에서 충분히 조정하면, 장내 협상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과연 무엇을 합의했고, 차이의 실체는 무엇인가?

사전조처 VS 동시행동
대체로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북-미 양국의 차이는 분명하다. 미국은 회담 재개에 앞서 북한에 사전조처를 요구해왔다. 그것은 크게 보면 세 가지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비롯한 모든 핵활동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단을 복귀시키며, 대량파괴무기(WMD) 실험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라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한다. 그리고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강조한다. 그것은 9·19 공동성명의 합의 사항이기도 하다. 10월24일 리커창 중국 국무원 상무 부총리가 방북했을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원칙을 재확인했다. “관련국은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전면적으로 9·19 공동성명을 실현해야 한다”고.
사전조처와 동시행동이 충돌하고 있다. 한-미 양국이 계속 ‘사전조처’를 요구한다면 차이를 좁힐 수 없다. 북한이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양보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발행하는 불투명한 어음을 받고 물건을 내주겠는가? 특히 쟁점이 되고 있는 우라늄 농축을 북한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북한의 핵능력이란 두 가지다. 이미 확보한 핵물질로 무기를 만들고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화를 하는 것, 그리고 추가로 핵물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영변의 5MW 원자로는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렵다. 플루토늄을 추가 생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북한은 핵물질 생산의 대안적 방법으로 우라늄 농축을 선택한 것이다.
우라늄 농축 중단은 그런 점에서 협상을 통해 얻을 결과이지, 협상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중국도 북한의 입장을 거들고 나섰다. 10월25일 중국 외교부 장위 대변인은 “농축 우라늄 문제는 6자회담 내에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기본 방침을 지지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9·19 공동성명의 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필요하다. 10월27일 한국을 찾은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사전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한국의 입장을 고려한 발언이지만, 여전히 그런 원칙을 고수한다면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6자회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긍정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 한국의 언론 보도들은 북한이 사전조처의 일부를 받아들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것은 아니다. 북한은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음을 내비쳤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맹 기관지 가 10월27일치 보도에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북-미 양국이 “6자회담이 재개되었을 때 확인될 새로운 비핵화 노정도의 초안을 작성하고 있는 셈”이라는 언급이다.

북핵 필요없는 상황 조성해야
행동 대 행동의 최종 종착지는 9·19 공동성명에 나와 있다. 북한은 모든 핵을 폐기하고, 관련국은 관계 개선, 에너지 경제지원,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상응 조처로 제공하는 것이다. 핵심은 각 조처 사이의 일정표, 즉 로드맵이다. 모든 과정의 일정표를 짜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단계를 너무 잘게 나누면 동력이 떨어진다. 또한 북핵 문제는 결코 기술적 접근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논의는 불신을 증폭시킬 뿐이다. 숲을 봐야 한다. 그것이 관계 개선이고, 한반도 평화체제다. 북한이 더 이상 핵으로 억지력을 갖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북-미 양국이 과거와 다르게 하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 과거 9·19 공동성명 이행은 쉬운 것부터 먼저, 어려운 것은 나중에, 즉 출구전략이었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북한의 확실한 핵 폐기 의사를 확인하고 싶고, 그래서 초기에 진전된 조처를 요구한다. 북한도 미국의 입장에 ‘콜’ 하고 나섰다. 핵 폐기와 관련된 핵심 조처들을 초기 국면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미국도 강도 높은 상응 조처를 제공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최근 북한이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는 새로운 일괄타결안이다.
동시에 세 가지 사전조처에 대해서도 협상의 지혜가 필요하다. 행동 대 행동 원칙이라는 모자를 쓴다면 충분히 조정의 여지는 있다. 일단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은 핵실험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기술적으로 당분간 추가적인 핵실험이 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IAEA 사찰단도 받아들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영변의 원자로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기 때문에, 최소한 이 부분에 대한 폐기와 해체에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인도적 지원을 거론한다. 그것은 양국의 신뢰 구축 과정에서 미미한 것이다. 북한의 처지에서 주면 좋은 것이지, 그것이 핵심적 요구사항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다. 북한은 이미 6자회담이 재개되면 “교전 상태로 인해 발생한 복잡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일괄타결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해야 할 상응 조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농축 우라늄 문제는 다소 복잡하다. 원자로로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방식은 원심분리기로 우라늄을 농축하는 방식에 비해 사찰과 검증이 상대적으로 쉽다. 원자로는 거대한 시설이지만, 원심분리기는 분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한 사찰과 검증은 불신이 작용한다. 어딘가 다른 곳에 숨겨놓았을 것이라고 불신하면, 의심은 끝이 없고, 결국 출구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이 문제는 북-미 양국의 신뢰 구축과 함께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동시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주장하는 북한과 그것을 부정하는 미국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다. 9·19 공동성명은 ‘적절한 시점’에 이 문제를 논의하자는 모호한 표현으로 얼버무려놓았다. 6자회담에서 풀어나가야 할 어려운 협상 중 하나다.

대선 앞둔 오바마의 저울질
좀더 대화를 해야 한다. 서로 해결의 의지는 확인했다. 그러나 해법을 둘러싼 차이는 여전하다. 북한은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미국이 이제 선택을 할 때다. ‘관리를 위한 개입’의 필요성이 워싱턴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긍정적이다. 북핵 문제의 상황 관리를 위해서는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개입, 즉 적극적인 포용정책을 시도하지 않으면 북한은 핵능력을 강화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적절하고 올바른 판단이다.
그러나 워싱턴 내부에서는 여전히 관리와 개입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북핵 문제가 쉽지 않고, 괜히 북한에 보상했는데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북핵 문제보다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흐름도 있다. 북핵 문제는 장기적인 과제이고, 오바마 행정부 통상정책의 성과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실익은 현찰이다. 미국이 사전조처를 강조하는 것도 한국의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선 핵폐기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북핵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럭저럭 악화되지 않고 상황이 관리되는 것을 바란다. 그러나 아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현상 유지가 어렵다. 상황 관리라도 하려면 협상이 계속돼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연히 하나 마나 한 협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제 워싱턴이 협상의 진정성을 보여줄 때다. 북핵 상황이 악화되면, 내년 대선 국면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낭패를 볼 것이다. 이미 오바마 대통령은 ‘핵 없는 세계’라는 비전으로 노벨평화상까지 선불로 받았다. 그런데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 그토록 비판했던 부시 행정부의 ‘실패한 외교’와 뭐가 다른가? 북핵 상황 악화는 비확산 정책의 실패를 상징한다.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유연성이 필요하다. 남북관계의 재개를 위해서는 6자회담이 재개돼야 한다. 북핵 문제가 진전돼야 한다. 그래야 내년 3월 한국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를 의미 있게 치를 수 있다. 북핵 문제가 해결의 가닥이 잡히면, 한국은 오바마 행정부와 함께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이니셔티브를 행사할 수 있다. 당연히 외교적 위상도 올라갈 수 있다.
이제 임기 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핵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비핵 개방 3000’ 구상과 같은 선 핵폐기론은 이미 실패했다. 그런데도 사전조처라는 명목으로 실패한 전략을 고집할 것인가? 그러면 ‘마지막 협상’의 기회마저 날리게 될 것이다. 동시에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도 불가능하다. 가스관 연결 사업을 명분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모색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한 기획이 성공하려면 북핵 문제 진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법을 모색할 때다. 이제 낡은 이념을 벗어버리고 협상의 지혜를 발휘할 때다.

협상의 지혜를 발휘할 때
이제 협상의 문을 열고 출구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제네바 회담이 교착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한-미 양국이다.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개입해야 한다. 해결의 의지를 보여줄 때다. 그래야 최소한 상황 관리라도 가능함을 깨달아야 할 때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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