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유승민·원희룡·나경원·남경필 최고위원은 사사건건 부딪쳤다.
전당대회 다음날인 7월5일에는 “계파 활동을 하면 (내년 4월 총선 때) 공천을 주지 않겠다”는 홍준표 대표와 “계파 활동과 공천을 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유승민 최고위원이 설전을 벌였다. 이틀 뒤인 7일엔 공천 과정의 실무를 담당할 사무총장과 1·2 사무부총장, 여의도연구소장 인선 문제를 놓고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다. 11일 최고위원회에서는 “공천 논의는 내년 1월로 미루자”는 홍 대표와 “공천과 관련된 원칙은 7·8월 중에 정해야 한다”는 나경원·남경필 최고위원이 충돌했다.
한나라당, 완전국민경선제 도입하나별개의 사안처럼 보이나 이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공천 문제다. 나·남 최고위원과 설전이 있었음에도 홍 대표는 7월14일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공천 문제는 내년 1월부터 논의했으면 좋겠다”며 “시스템에 의해 공천할 예정이어서 대표의 역할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유권자들 앞에 정당의 ‘대표선수’를 내놓는, 공직후보자 선출 과정은 어느 정당이나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래서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어떤 방식으로 대표선수를 내놓을지는 재선을 노리는 현역 의원들뿐 아니라 국회에 새로 진입하려는 신인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한나라당의 새 선장을 맡은 홍준표 대표가 어떤 방식의 공천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지 몰라도, 2012년 4월 총선에서의 한나라당 공천 방식에 관한 당론은 이미 결정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0년 나 최고위원이 위원장을 맡은 공천개혁특위가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지난 5월9일 나 의원을 포함한 한나라당 의원 142명(전체 169명)의 공동 발의 형태로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천 관련 논의를 내년으로 미루자는 홍 대표의 바람은, 지금까지의 논의 결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즉,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다.
한나라당이 제출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제안 이유는 이렇게 시작한다.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국가 선진화의 걸림돌로 인식되는 것은 국민이 원하는 참여와 개방을 통한 정치 개혁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정치권이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상향식 공천제도의 도입이 필수적인바, 이에 상향식 공천제도의 가장 이상적 형태인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고자 한다.”
당원이 아닌 사람들이 정당의 공직후보자 선출 과정에 참여한 것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때가 처음이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대의원·일반당원·국민을 대상으로 선거인단을 공모했고, 전국을 순회하며 경선을 실시해 국민참여경선의 붐을 일으켰다. 이후 정당 개혁을 표방하며 창당한 열린우리당이 완전국민경선제를 채택하려 했으나, 당시엔 한나라당의 반대로 법 개정에 실패했다. 그런데 이번엔 한나라당이 먼저 개정안을 제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동의하고 개정안이 통과돼 대부분의 정당이 완전국민경선제를 채택하게 될까. 사정은 간단치 않다.
일단 민주당의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옛 지구당위원장)은 대체로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민주당의 ‘수권정당을 위한 당 개혁특별위’(위원장 천정배 의원)의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애초 개혁특위는 지난 5월 당원과 국민경선 결과를 각각 3분의 1씩, 그리고 ‘슈퍼스타 K’ 방식으로 구성된 전문 배심원단의 평과 결과를 3분의 1 반영해 최종 후보를 선출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최근 완전국민경선제를 기본으로 하되 민주당 우세 지역인 호남, 혹은 전 지역구의 30%에 배심원제를 도입하는 절충형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야권 통합 결과가 변수민주당은 한나라당보다 사정이 더 복잡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이 단일 정당으로 합치자는 야권 통합, 각자의 틀은 유지하되 2010년 6월 지방선거나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때 부분적으로 시도했던 선거 연합 형태의 야권 연대를 추진하고 있어, 큰 틀의 논의 결과에 따라 민주당의 경선 규칙도 영향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합이나 연대가 성사되려면 지분 조정 또는 전략공천 논의가 뒤따른다. 야권의 통합과 연대를 주장해온 시민사회단체 쪽에서도 여러 방안이 제출되고 있다.
완전국민경선제는 지난 수십 년간 ‘밀실 공천’ 또는 ‘사천’(私薦) 논란을 불러왔던 공천심사위원회 제도, 또는 공천심사위원회 제도의 폐단을 극복하려고 도입한 배심원 제도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회의원들은 당선되는 순간 재선이 목표다. 그 전제는 공천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공천이 나오는 곳, 청와대나 당의 실세에게 줄을 대려 한다. 국민에게 줄을 서라는 것이 완전국민경선제다.” 국민경선제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정동영 민주당 의원의 설명이다. ‘정치 개혁’ ‘정당 민주화’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지난 3월 중앙선관위도 한나라당이 제출한 선거법 개정안과 거의 유사한 국민경선제도를 정치권에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생각해볼 대목이 없는 건 아니다. 한나라당 의원 142명,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선호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완전국민경선제는 인지도가 높은 현역들한테 전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뒤집으면 정치 신인들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이 되는 셈이다. 각 정당의 공직후보자 선출에 관심이 많고 참여하려는 이상적인 유권자가 많아야 한나라당이 선거법 개정안을 제안하며 밝힌 대로 ‘상향식 공천제도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기능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공직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국민의 손을 빌리려는 정당들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개념 있는’ 시민으로 살기는 참 쉽지 않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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