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한나라당 최고위원’.
낯설다. 정치에 크게 관심 없는 이에겐 그 이름이 낯설다. 정치에 크게 관심 있는 이는, 그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자폐”라고 표현할 정도로 정치적 은둔 생활을 해온 것을 알 테니 그 직함이 낯설 것이다. 그는 지난 7월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일반인 대상 여론조사(30% 반영)에선 9.5%를 얻어 5위에 그쳤지만, 당원·대의원 투표(70% 반영) 결과에 힘입어 합계 득표 2위로 새 지도부에 선출됐다. 그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핵심 측근이었다. 이번 전당대회 출마자 가운데 유일한 박근혜계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당선은 ‘박근혜의 힘’ 덕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천 학살’ 같은 일 없을 것”그래서 당 지도부로서 유 최고위원의 활동은 일정 부분 ‘박근혜 대리인’ 또는 ‘박근혜계 대표’로서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지난 7월5일 홍 대표가 “계파 활동을 하는 사람은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유 최고위원이 “동의할 수 없다. 친이·친박 화해는 당사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반발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계파와 공천은 박근혜계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이명박계가 주도한 공천에서 박근혜계는 당시 좌장이던 김무성 의원까지 탈락할 만큼 홀대당했다. 박근혜계 쪽에선 ‘친박 대학살’이라는 섬뜩한 표현까지 나왔다. 대선보다 더 발톱을 세우고 싸운 경선이 빚은 결과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관계는 계속 냉랭했다. 이명박계 인사들은 “다음 대선 때 야당에 졌으면 졌지, 박근혜한테는 정권 못 준다”고 했다. 박근혜계 인사들은 “너희끼리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고 했다. 양쪽의 불신은 그렇게 깊었다.
그런데 유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연설에서 “4년 동안 당해보니 못할 짓”이라며 “내가 당대표가 되면 친박이 ‘공천 학살’당했던 것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7월7일 SBS 라디오 에선 소장파가 제기하는 ‘이상득 공천배제론’을 두고 “특정인 한 분만 공천을 하고 안 하고로 한나라당이 국민한테 얼굴이 서겠느냐. 그건 상당히 좁은 이야기”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복수혈전’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계에 고령의 다선 의원이 많기 때문에 ‘명분 쌓기’를 하려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유 최고위원은 과 한 통화에서 “다선 중진의원은 친이 쪽에도 많다. 공천은 교체지수, 도덕성, 의정활동지수 등을 종합해 투명하고 공정한 잣대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사람마다 다른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이명박계에 가졌던) 개인적 감정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사람은 관대하게 포용하되, 민생복지 정책은 왼쪽으로 확실히 차별화하겠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명박계에선 유 최고위원의 ‘화해’ 손짓을 믿기 어렵다는 눈치다. “몇 개월 지나고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봐야지, 지금 한마디 한마디를 갖고 뭐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정치가 레토릭으로 되는 게 아니잖느냐”(이명박계 한 의원)는 것이다.
“친이계 포용하되 차별화하겠다”유 최고위원의 말이 ‘포용과 화합’으로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다. 박근혜계가 이명박계에 측은지심을 베풀든지, 이명박계가 ‘박근혜 대세론’에 투항하든지. 물론 말에만 그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니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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