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헌법재판관 구성이 구절판처럼 다양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보수 정권에서 대거 재판관이 바뀌기 때문에 헌재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재판관 가운데는 이른바 ‘야당 몫’도 있기 때문에 전면적 보수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애써 괜찮은 사람을 앉혀놓았는데, 추천한 쪽을 낙담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 출신인 송두환 재판관이다. 헌법학계 인사는 “헌재 안에서나 밖에서나 잔뜩 기대를 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듯하다”고 했다. 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도 “헌재에 들어가서 (다른 재판관들과) 똑같아졌다”고 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보수적인 재판관과 별 차이 없어</font></font>송 재판관은 야간 옥외집회 금지 사건,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 사건 등에서 적극적으로 위헌 의견을 내기는 했지만 사형제 합헌, 종합부동산세법 위헌, 혼인빙자간음제 합헌 의견을 냈다. 간통죄에 대해서도 위헌이라고 하면서도 법 취지는 합헌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보수적인 다른 헌법재판관들과 별 차이가 없다. 헌법학계 인사는 “헌재는 대법원과 달리 재판관이 9명에 불과하다. 주장이 반반으로 팽팽하게 갈리더라도 한 명이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체 의견이 한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싸움닭이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송 재판관을 두고서는 “싸움닭처럼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보여줘야 하는데 법원에서 하듯이 법리 판단을 하고 있다. 임명권자가 헌재에 보낼 때 법리 판단이나 하라고 보냈겠느냐”고 아쉬워했다. 송 재판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명으로 헌법재판관이 됐다. 헌재의 다른 관계자는 “송 재판관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며 표현의 자유 등의 문제에는 확고한 기준을 세운 듯하다. 하지만 다른 분야로까지 확산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민변 창립 멤버인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기대치를 낮춰잡는 이들도 있다.
중도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던 목영준 헌법재판관(여야 합의 추천)도 몇몇 사건에서 입길에 올랐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등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다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해당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당시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은 헌재에서 가장 보수적인 이동흡 재판관(한나라당 추천)과 목 재판관 2명뿐이었다. 검찰 안에서조차 “목 재판관의 합헌 결정이 눈에 딱 들어오더라”는 평이 나왔다.
대법관의 경우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으로 사실상 대법관이 되다 보니 대법원장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법조인은 “대법관들은 대법원장에게 평생 못 갚을 은혜를 입은 셈이다. 본인들이야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하지만 대법원장의 의견을 무시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법관의 세계는 사법연수원 기수에 따른 서열이 명확한데, 배석으로 두고 있던 법관이 같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도 ‘후배’ 대법관이나 재판관은 자기 의견을 내세우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소수의견 지지 거의 없는 대법원장</font></font>대법원이나 헌재 모두 최종 결정을 내릴 때 나중에 임명된 사람부터 자신의 의견을 내는 관행이 있다. 윗사람부터 의견을 내면 아랫사람에게 부담이 되니 마음껏 얘기하라는 ‘배려’ 차원이라는 설명이 따른다. 하지만 대법관 전원의 의견을 들은 뒤 맨 마지막에 의견을 내는 대법원장이 다수가 아닌 소수 의견 쪽에 선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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