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주식 그리고 정권 실세’.
이 단어들의 조합은 어쩐지 영화 같다. 영화 같은 추측일 뿐일까, 아니면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주식 불공정 거래 의혹을 사고 있는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회사와 깊이 관련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와대는 이런 주장이 나오기 전 박 전 차관에게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카메룬에서 박 전 차관 수행한 CNK 오 회장</font></font>
지난 6월17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김재균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박영준 차관이 밀어준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업체가 주식 불공정 거래 혐의로 검찰과 금감원 조사를 받고 있다. 조사에서 해당 기업과 박 전 차관의 유착 관계, 주식 불공정 거래 과정에서 박 전 차관의 영향력과 역할을 규명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 의원의 이 발언은 주요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실제로 검찰과 금융감독원은 김 의원이 거론한 업체 CNK인터내셔널(옛 코코엔터프라이즈·이하 CNK)의 미공개 정보 이용, 부정거래 등 주식 불공정 거래 혐의를 내사·조사 중이다. 검찰은 CNK의 주가 흐름이 비정상적이라고 보고 지난 2월 금감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금감원도 이상한 낌새를 채고 조사에 착수한 터였다.
CNK는 2006년부터 카메룬에서 다이아몬드 탐사·개발 관련 사업을 해왔다. 2007년 3월 요카두마 지역에 연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1억7천 캐럿)의 2배가 넘는 4억2천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카메룬 정부에 전달했다. 2010년 3월엔 이 지역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 획득을 위한 신청서를 냈다.
박 전 차관이 이 업체를 공식적으로 지원한 것은 그 이후다. 당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자원외교’에 공을 들이던 박 전 차관은 2010년 5월 민관합동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박 전 차관을 포함해 총리실, 외교통상부, 지경부, 국토해양부 관계자와 한국광물자원공사, 해외자원개발협회 인사 등 19명이 탄자니아, 카메룬, 적도기니를 방문해 이들 나라와 자원 분야 협력 강화 등을 논의했다. 카메룬을 방문한 건 2010년 5월8~11일이다. 카메룬은 대표단 방문 기간에 맞춰 다이아몬드 개발권 최종 협의를 위한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박 전 차관의 참석을 요청했다. 박 전 차관은 CNK에 개발권을 달라고 카메룬 정부에 요청했다. 이런 내용은 외교부가 2010년 12월17일 낸 보도자료와 총리실이 최영희 민주당 의원에게 지난 5월 제출한 자료 등에 적시돼 있다. 오아무개 CNK 회장은 카메룬에서 박 전 차관을 수행했다.
박 전 차관의 지원 덕분인지, CNK는 2010년 7월 카메룬 정부와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 협정서를 체결했다. 석 달 뒤엔 카메룬 관련 부처 대표단이 방한해 박 전 차관을 만났다. 이때는 그가 지경부로 자리를 옮겼을 때다. 이들이 방한했을 때 지경부는 외교부와 함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카메룬 에너지·광물 투자포럼’을 열었다. 포럼을 주관한 지경부 산하단체 해외자원개발협회는 통역비 등 700만원을 지출했다. 카메룬 대표단의 항공비, 체재비, 롯데호텔 대관료 등 수천만원은 모두 CNK가 냈다. CNK는 포럼을 후원했다.
<font size="3">CNK 임원, 주가 폭등 뒤 보유 주식 매각 </font>[%%IMAGE3%%]이와 관련해 김재균 의원은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에 이해 당사자인 기업이 비용을 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엄연히 공직자 행동강령을 위반한 것으로 처벌 대상이다”라며 “이 사례는 해당 기업과 지경부가 얼마나 유착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경부는 행사 일주일을 앞두고 해외자원개발협회에 포럼 주관을 사실상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대국 대표단까지 참여하는 포럼을 일주일 앞두고 준비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코코엔터(CNK)의 다급한 요청과 박영준 차관의 막후 영향력이 발휘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CNK 쪽도 행사비를 내고, 포럼 준비를 주도한 사실은 인정했다. CNK 쪽의 설명은 이렇다. “카메룬엔 우리나라 대사관이 설치된 지 얼마 안 돼, 6년 전부터 활동해온 우리가 그쪽과 네트워킹이 훨씬 잘돼 있다. 카메룬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정부 기관이나 기업이 가도 장관, 총리를 못 만난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좋은 자리를 통해 직접 어레인지(주선)하고, 행사비도 지원했다. 외교부나 코트라(KOTRA)가 해야 할 일을 민간기업이 한 것이니 상을 받아야 될 일이다.”
외교부 관계자의 말은 조금 달랐다. 이 관계자는 “우리 (정부) 대표단이 카메룬에 갔을 때 제안한 광물조사 공동조사가 받아들여졌다. 관련 논의를 하자고 우리 쪽이 카메룬 정부 관계자를 초청해 그쪽 대표단이 오게 됐다”고 했다. 일주일 만에 행사를 준비하게 된 것과 관련해선 “카메룬 쪽에서 갑자기 투자 포럼을 열어달라고 했다. 우리가 초청을 한데다, 카메룬은 광물 개발 잠재력이 큰 나라이기 때문에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10년 12월16일 카메룬 정부는 CNK의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최종 승인했다. 유효기간 25년에, 기한이 만료되면 10년 단위로 갱신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후 CNK 주가는 폭등한다. 2010년 12월16일 3465원이던 CNK 주식은 지난 1월11일 최고 1만8350원까지 오르며 5배 넘게 치솟았다. 하지만 주가가 오르는 사이 이 회사와 임원들이 보유 주식을 팔아 모두 40억원 가까운 시세차익을 얻은 사실이 알려졌다. 그리고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다이아몬드 매장량과 관련한 논란도 일었다. 검찰과 금감원이 CNK에 주목하게 된 건 이 때문이다. 더구나 이 회사가 금감원에 낸 2010년도 감사보고서를 보면, 2010년 자본금은 264억원에 자본잠식률이 43.3%에 이른다. 2009년에도 자본금 246억원에 자본잠식률은 40.2%였다. 이 때문에 감사보고서엔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자체도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적혀 있다. 이 감사보고서는 CNK 쪽의 의뢰를 받아 ㅎ회계법인이 작성한 것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여권 핵심, “문제 심각해 청와대가 관두라고 한 것” </font></font>CNK는 누리집을 통해 “내부 통제 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임직원들이 주식 거래를 통해 사전에 내부 정보를 이용한 매매가 없다고 파악했다. 당사의 자사주 매각 및 임원의 주식 매도 역시 2년 이상 주식을 보유했고, 개발권을 받은 이후 적법한 공시를 통해 절차를 준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회사 관계자는 <한겨레21>과 한 전화 통화에서 “세계적인 기관이 작성한 테크니컬 리포트(기술보고서)가 7월 말 나온다. 다이아몬드 상업 생산도 조만간 시작된다”며 “그때가 되면 이 사업이 실체가 있다는 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보고서는 이 회사의 다이아몬드 매장량 탐사 결과에 대한 지질학적 평가를 위한 것이라고 CNK는 밝혔다. 오 회장은 카메룬 체류 중이어서 직접 접촉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박 전 차관은 다이아몬드 개발 사업을 따내려고 오랫동안 노력한 한국 업체를 지원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행사비를 업체가 댄 ‘사소한’ 문제를 논외로 하면, 그는 ‘자원외교’를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더구나 CNK 쪽은 “오 회장은 박 전 차관과 특별한 관계가 없다. 5개월째 금감원 조사를 받고 있지만 우리 회사 임원이 조사를 받지도 않았다”며 “자금이나 주식 거래가 있어야 (문제될 게)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를 예사롭게 보지 않은 것 같다. 복수의 여권 핵심 관계자는 “박 전 차관이 CNK의 주식 불공정 거래 의혹 등에 연루됐다는 보고서가 지난 3월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올라갔다. 청와대는 박 전 차관에게 ‘옷을 벗어라’고 요구했는데, 박 전 차관이 ‘개각 때까지 시간을 달라’며 거부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당시는 한나라당이 4·27 재·보궐 선거에서 질 것이며, 이 경우 수습책으로 개각이 단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돌던 때였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에 올라가는 자질구레한 보고가 얼마나 많으냐. 하지만 차관직까지 관두라고 했을 땐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차관은 5·6 개각이 이뤄진 뒤인 5월16일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이튿날 이임식 직전 지경부 출입기자들을 만나 “안(현호 전 지경부 제1) 차관이 그만두신다기에 나도 같이 나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고 그만둔다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갑작스러운 사퇴였다.
<한겨레21>은 박 전 차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취재 내용을 밝히고,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도 남겼지만 응답이 없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CNK가 개발권 따도록 힘껏 지원한 정부</font></font>어쨌거나 CNK가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따낼 수 있도록 정부가 온 힘을 쏟은 것은 분명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12월17일 외교부가 내놓은 이 회사의 개발권 획득 관련 보도자료다.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에서 외교부는 CNK가 “민간이 선도하고 정부에서 뒷받침하는 민관 자원개발 협력의 바람직한 성공 모델을 창출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다이아몬드는 300배 이상의 초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라며, △다이아몬드 가공 고용 창출 △생산·가공·제조·유통·판매의 수직 계열화로 가격경쟁력 확보 △럭셔리 사업 창출 및 해외 관광객 증가 △유통·판매 시장 양성화로 특별소비세·부과세 등 세수 증대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적시했다. 정부 보도자료가 아니라 CNK의 홍보자료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외교부 국제경제국장도 1월12일 브리핑을 통해 CNK를 거들었다. “(CNK의 다이아몬드 개발권은) 미국 회사에 이어 카메룬 역사상 두 번째로 부여된 자원개발권이다. (카메룬이) 자원은 많은데 개발권을 주면 다 뺏어간다 싶으니, 진짜 믿는 경우 아니면 안 주는 모양이다. 매장량이 4억2천 캐럿인데, 이것이 2배 혹은 3배가 될지는 모른다고 한다.”
외교부가 의도했든 아니든, 이런 지원 사격은 CNK 주가가 폭등하는 데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금감원은 외교부 고위 공무원이 이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불공정 거래를 한 혐의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건, 주가에 영향을 줄 만한 중요한 정보를 미리 알고 CNK가 이를 공개하기 전에 주식을 샀다는 뜻이다.
금감원에선 기가 막히는 ‘우연’이 있었다. 금감원은 부산저축은행 사건 등으로 비리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4월 말~5월 초 국실장 포함 부서장 85%, 팀장급 71%, 팀원 50%를 교체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인사를 단행했다. 그런데 CNK 조사를 맡은 자본시장조사1국장은, 박 전 차관과 가까운 여권 인사와 같은 고교 출신으로 바뀌었다. 그때까지 석 달가량 CNK를 조사했던 담당자는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정부가 ‘자원 외교’의 역량을 쏟아부을 대상으로 다이아몬드가 적절하냐는 비판도 나온다. 김재균 의원은 지난 6월17일 국회 지경위에서 “해외 자원개발의 주된 목적은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전략광물의 자주개발률(국내에서 소비되는 자원 물량과 우리나라 기업이 국외에서 직접 개발해 생산하는 자원 물량의 비율)을 높이는 데 있다. 하지만 광물자원공사도 다이아몬드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원료 광물이 아닌 장식용 액세서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어, 지원이나 투자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외교부 관계자는 “전략 광물이 아니라고 문제를 삼는 건 시비를 걸기 위한 시비”라며 “전량 수입하는 다이아몬드는 공업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굴착기 등에 쓰이기 때문에) 다이아몬드가 없으면 건설 현장이 안 돌아간다”고 반박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다이아몬드, 주식 그리고 정권 실세’</font></font>‘다이아몬드, 주식 그리고 정권 실세’. 이 단어들의 사이를 잇는 고리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래도 이들이 정말 무슨 관계인지와 관련한 물음표는 던질 수 있다. 검찰은 이미 두 개의 단어, 다이아몬드와 주식을 연결하는 고리에 대한 해독 작업을 시작했다. 검찰은 극구 부인하지만 마지막 단어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풀 수 없는 암호문이 아니라면 물음표에 답해야 하는 건 검찰이 아닐까. 그 답이 영화 같은 추측이든, 영화 같은 사실이든.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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