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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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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당에 마음 쏠린 민노당

진보정당 통합 합의안 도출 못한 채 끝난 ‘연석회의’… 유시민의 ‘제안’에 매력 느낀 민노당 당권파에게 남은 선택은
등록 2011-06-02 18:43 수정 2020-05-03 04:26

“헤어진 부인은 굶어죽기 직전인데도 끝까지 사과하라고 소리 지르지, 아이는 계속 빽빽 울어대지. 새로 선본 사람은 가문도 인물도 좋지. 그러니 안 흔들릴 수가 있나?”

유시민이라는 새로 선 본 매력남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을 논의하는 ‘진보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연석회의)가 지난 5월27일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끝난 뒤 민주노동당 관계자가 한 얘기다. 연석회의는 5월26일을 최종 합의 시한으로 정하고 회의를 열었지만, 자정을 넘겨 이튿날 새벽 3시40분까지 이어진 마라톤 협상에도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연석회의는 다음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미합의 쟁점은 3차 합의에 근거해 합의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결과만 발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유시민 국민참여당·조승수 진보신당·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왼쪽부터). 진보 정당의 통합 논의는 국민참여당 변수의 등장으로 더욱 복잡해졌다. 한겨레 이종근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유시민 국민참여당·조승수 진보신당·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왼쪽부터). 진보 정당의 통합 논의는 국민참여당 변수의 등장으로 더욱 복잡해졌다. 한겨레 이종근

이 관계자의 말은 연석회의가 왜 협상에 실패했는지를 설명하는 비유다. ‘헤어진 부인’은 진보신당, ‘사과’는 북한의 3대 세습 관련 조항 조정, ‘아이’는 진보신당 독자파다. ‘새로 선본 사람’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다. 유 대표는 최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를 만나 통합 논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진보신당과 진보 대통합을 하려 해도 북한 문제에서 서로 양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진보신당 독자파의 목소리가 강경한 데 비해 통합 논의를 해보자는 유 대표의 제안은 몹시 매혹적이라는 얘기다. 민주노동당은 유 대표처럼 대중적 지지를 얻는 ‘대표 상품’이 필요하고, 유 대표는 민주노동당 같은 ‘탄탄한 조직’이 필요하다. 양쪽이 합치면, 민주당과의 총선·대선 연합 협상에서 적절한 의석과 대선 후보로서의 지위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두 당의 통합 문제에 가장 큰 호응을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유사한 얘기는 진보신당에서도 나온다. 진보신당의 핵심 인사는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진보신당은 배제하고, 국민참여당과 같이 가려고 한다는 건 6개월 전부터 나온 얘기다. 이들은 처음부터 연석회의를 결렬시킬 시나리오를 세웠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민주노동당 인사의 말처럼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진보신당과 통합하는 것보다는 국민참여당과 손잡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는 인식은 같다.

5월27일 오전엔 민주노동당에서 좀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날 당권파 핵심 인사들은 연석회의가 사실상 결렬됐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은 ‘선 진보대통합’에 무게를 두는 권영길 원내대표, 당 진보정치대통합추진위원장인 강기갑 전 대표 등에게 알려지면서 제동이 걸렸다. 강 전 대표는 “(연석회의에서) 예정된 시간에 최종 합의문이 나오진 않았지만, 진보 대통합을 향한 우리의 노력은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 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약속한 시한까지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통합과 연대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진정성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브리핑했다.

약간의 ‘색칠’만 하면 가능?

앞서 연석회의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5월31일 회의를 재개하자는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의 제안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에 돌아가 논의해보겠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강기갑 전 대표는 “진보신당 전국위원회가 5월29일 열리는데, 그 전까지 연석회의에서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진보신당도 그 안을 갖고 논의할 것 아니냐. 그래야 민주노동당도 진보신당의 논의 결과를 보고 6월4일 중앙위원회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진보신당 전국위원회 이후인) 5월31일을 제안하니, 이 대표로선 진보신당이 연석회의에 의지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보신당 쪽은 “추후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채 연석회의를 끝낸 것은 다음날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움직임 등과 관련지어 볼 때 진보 대통합 협상 결렬 수순을 밟은 것”이라는 좀 다른 분석을 내놨다.

이는 만약 진보 대통합 협상이 결렬된다면, 그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는 인식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독자파의 태도가 강경한 진보신당이 상대적으로 통합에 소극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유시민 변수’가 돌출하자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마음도 ‘콩밭’에 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비당권파의 핵심 인사는 “이정희 대표가 추후 일정조차 합의하지 않아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을 배제한 채) 국민참여당과 합치려 한다는 당 안팎의 의구심과 긴장이 높아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복지국가 단일정당 운동’에 동참하는 민주당·진보신당 일부 인사들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민주당 일부에선 9월 진보개혁 진영 단일정당을 위한 창당 준비위원회를 꾸려, 당 전당대회에서 선택받아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그런데 국민참여당이 민주노동당과 통합 논의를 한다는 것은, 민주당과는 어떤 형태로도 ‘같은 당’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단일정당 운동의 추동력을 떨어뜨린다.

연석회의에서 통합 합의를 결국 이끌어내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 논의를 먼저 하게 된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어떻게 될까? 양쪽의 전망은 결과적으로 ‘분당’이다. 하지만 깨지는 쪽은 상대방이다. 진보신당 쪽은 “민주노총 국민파 출신 등 노동운동 진영, 농민운동 진영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정규직 문제 때문에 결코 국민참여당과 함께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두 당 통합이 가시화된다면 당권파와 비당권파로 민주노동당이 깨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뒤 한-미 FTA와 비정규직 문제에 후회 비슷한 얘기를 한 적 있다. 국민참여당이 그에 근거해 약간의 ‘색칠’만 하면, 신자유주의 문제는 돌파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두 당이 합치면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일정 부분 요구할 수 있고, 정치적 지분도 커진다. 그러면 ‘당선’을 목표로 하는 진보신당의 적잖은 이들이 이쪽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말한다.

필수 통합과 선택 통합 사이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진보 대통합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강기갑 전 대표는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은 필수고, 국민참여당 통합은 선택이다. 진보 대통합이 전제되지 않으면 노동계는 물론 전체 진보 진영과 함께 가기 어렵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통합 합의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위원장은 “우리가 진보신당과 통합하려는 것은 분열한 대중운동과 진보 진영을 다시 봉합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는 것이지, 단순히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은 “지금까지 연석회의 대표자들 간 논의 진전은 상당한 성과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이후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을 위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 진보신당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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