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4·27 재·보궐 선거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마지막 기회다.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은 경남 김해을과 경기 성남 분당을, 전남 순천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강원지사 보궐선거에 야권 단일후보를 내세웠다. 한나라당은 순천에 후보를 내지 못했지만, 다른 지역에선 ‘져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이번 싸움의 승패에 따라 정치판은 어떻게 출렁댈까? 각 지역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 뜯어봤다.
<font color="#006699">■ 1. 경남 김해을: 유시민의 미래</font>
“‘알박기 정치’로는 작은 전투에서는 이길지 몰라도 총선과 대선이라는 큰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없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에게 민주당과 통합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겠다고 선언할 것을 요구한다.” 야 4당 단일후보로 이봉수 국민참여당 후보가 확정된 4월12일,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경기지사 후보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김 의원이 0.96%포인트 차이로 유 대표에게 진데다, 이번엔 곽진업 민주당 예비후보가 이봉수 후보에게 3%포인트가량 차이로 졌으니 속이 쓰릴 법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민주당이 유 대표에게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그를 친노 진영, 나아가 개혁 진영의 ‘분열 세력’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노 신당’을 반대했는데도 민주당 바깥의 친노 인사들이 국민참여당을 만든 게 원인이다. 유 대표는 국민참여당 발기인대회 두 달 뒤인 2009년 11월 입당했지만, 창당설이 나돌 때부터 민주당 안팎에선 ‘유시민당’이라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의 적자’를 자임하며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 대표에게 그러잖아도 지지부진한 민주당의 지지세를 뺏길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저울질하던 유 대표가 경기지사 출마로 방향을 틀었고, 김진표 의원과 경선에서 이겨 단일후보가 된 것이다.
이번 보궐선거 과정에서도 유 대표는 민주당 쪽에서 볼 땐 ‘분열론자’였다. 민주당 등의 설득으로 출마를 검토하던 친노 진영의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국민참여당 등의 압박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선 유 대표가 “공정성을 현저히 잃었다”고 반발하며 ‘국민참여경선 50%, 여론조사 50%’라는 시민단체 중재안을 걷어찼다. 친노 진영의 좌장 격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민주당을 설득해 결국 경선에선 국민참여당의 ‘여론조사 100%’ 주장이 관철됐다. 민주당의 한 친노 인사는 “유 대표는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얘기하지만 그에 맞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 정신과 가치를 지키는 건 형식일 뿐이고, 내용적으로는 갈등과 분열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했다.
물론 유 대표 쪽에서 볼 때 이런 비판은 억울하다. 입당할 때 밝힌 것처럼 민주당에선 “‘미래’가 잘 보이지 않았”고,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 틀 안에선 변화와 개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택한 길인데, 이를 ‘분열’로 낙인찍는 건 부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단일화 협상이 난항을 겪자 유 대표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쪽에도 ‘협량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줘 신뢰를 잃은 것도 타격이다.
이봉수 후보가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에게 지면 유 대표의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하지만 이기면 유 대표는 야권 최고의 ‘승부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여론은 부정적일 수 있지만, 의석 하나 없는 유 대표가 한나라당을 이겼다는 의미가 확산되며 대선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이봉수 후보가 이기면 단일화 과정은 결과적으로 거대 정당인 민주당을 상대로 약자인 국민참여당이 할 수 있는 요구를 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원내에서 국민참여당이 계속 언급되면 인지도·관심도가 높아지고, 대선주자로서 유 대표의 지지율도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font color="#006699">■2. 경기 성남분당을: 2012년 수도권 총선 예고편</font>각종 여론조사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를 조금 앞서거나 박빙 승부를 벌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서울 강남 지역과 유사한 투표 패턴을 보인 분당을에서 변화의 단초가 보이는 셈이다. 한나라당은 이런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분당을 선거가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민심을 가늠할 리트머스시험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80여 명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발판 삼아 당선된 수도권 의원들이다. 그런데 ‘믿는 도끼’인 분당을에 발등을 찍히면, 어차피 ‘정권 심판론’으로 흐를 내년 총선에서 다른 의원들도 안심할 처지가 못 된다. 만약 손 대표가 당선되면 한나라당은 조기 전당대회와 당·정·청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격랑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손 대표도 느긋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 이기고 투표에서 지는’ 상황을 걱정한다. 관건은 결국 투표율이다. 2000~2010년 치러진 18차례 재보선에서 투표율이 40%를 넘은 건 3차례에 불과하다. 30%대는 6차례였고, 9차례는 20%대에 머물렀다. 정치권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투표율이 40% 이상이면 손 대표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다.
손 대표 지지율이 높은 20~40대가 분당을 유권자의 70%에 가까운데 이들은 대체로 학생·직장인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분당을 유권자 가운데 서울 등 성남 시내 바깥으로 통근·통학하는 이가 55%다. 단순히 보자면 손 대표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들이 먼 곳으로 출퇴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투표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입으로 중단되긴 했지만, 민주당이 투표 독려 인터넷 광고를 낸 건 지지자들을 결집하려는 시도다.
<font color="#006699">■ 3. 전남 순천: 야권 연대에 대한 민주당의 진심</font>지난 지방선거 때의 합의를 이행하라는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의 요구로 민주당은 순천 공천을 포기했다. 야권 단일후보로는 김선동 민주노동당 후보가 추대됐다. 그런데 민주당 출신의 무소속 후보가 6명이나 된다.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 구희승 변호사, 허신행·허상만 전 농림부 장관, 박상철 경기대 교수가 민주당의 무공천 결정에 반발해 탈당했고, 김경재 전 의원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탈당했다.
여론조사에서 김선동 후보는 조순용·구희승 후보와 엇비슷한 지지율을 보인다. 민주당 조직표가 탈당한 무소속 후보들을 좇아 흩어졌고, 조직적인 선거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탓이다. 그러나 무소속 후보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단일화한다면 김 후보가 낙선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내년 총선에서 야권 연대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다른 야당이 호남 지역에서 지분을 요구할 경우, 호남이 지역 기반인 민주당이 이를 쉽사리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무공천 방침이 결정되기 전 민주당에서 나돈 얘기처럼 ‘야권 연대를 하더라도 민주당 출신이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복당하면 된다’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협상의 기본인 신뢰가 무너진다. 김봉신 미디어리서치 사회여론조사본부 1팀 차장은 “지방선거와 달리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는 당끼리 주고받을 만한 정치적 자원이 부족하다. 더구나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당에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할 만한 사람이 없고, 출마자들의 당 충성도도 떨어지기 때문에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구를 양보하는 후보에겐 비례대표 앞 순번을 주는 등 제도적인 방식으로 야권 연대의 가능성을 높이려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광재 전 지사의 부인 이정숙씨가 지난 4월14일 최문순 민주당 후보 옆에 섰다. 최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이씨는 ‘이광재’를 강조했다. “최 후보가 당선되면 핍박받는 이 전 지사가 살아나 다시 강원도민의 곁에 설 수 있다. 최 후보를 찍으면 강원의 아들 이광재는 점점 더 커진다. 이번 선거는 이광재란 강원도의 젊은 기둥에게 새로운 첫발이다.”
여론조사 수치상으로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에게 10%포인트가량 뒤지는 것으로 나타난 최 후보에게 이 전 지사는 동아줄이다. 상대적으로 지역적 소외감을 느끼는 강원도에서 오랜만에 젊은 인물이 나왔는데, ‘박연차 사건’으로 억울하게 지사직을 잃었다는 여론이 강하기 때문이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이 전 지사의 조직표가 확실히 움직여 긴가민가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흡수할지가 ‘이광재 동정론’을 ‘최문순 표’로 끌어오는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정숙씨의 지지 선언 이후 ‘이광재 동정론’에 기름을 부을 만한 사건이 얼마나 이어지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반대로 엄기영 후보는 최대한 막아야 한다. 엄 후보의 방패는 ‘지역개발 이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진선 전 강원지사를 명예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며 ‘힘있는 여당 후보론’을 내세운다. 엄 후보 자신이 지난해 말 유치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아 노력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강원지사 선거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강릉·속초·양양·동해·삼척 등 영동의 소지역주의다. 두 후보는 모두 춘천고를 나온 영서 출신이다. 춘천·원주 등 교통·경제가 발달한 영서 쪽에 비해 태백산맥에 가로막힌 영동 지역은 박탈감이 상당하다. 생활권도 달라, 영서 지역은 수도권·충청권과 가깝고 영동 지역은 영남권과 교류가 많다. 이 때문에 영동 지역은 영남 못지않게 한나라당 성향이 강하다.
영동 지역의 변수는 삼척이 추진하는 원자력발전소 유치 문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고로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최 후보는 애초부터 원전 유치 중단을 주장했다. 원전 유치에 찬성했던 엄 후보는 지난 4월11일 태도를 바꿔 ‘원점 재검토’로 선회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9일 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동해·삼척 지역에서 엄 후보 지지율은 지난 3주 동안 27.3%포인트 떨어져 40.4%였다. 반면에 최 후보는 같은 기간 20.1%포인트 올라 43%였다. 이 조사에서 동해·삼척 지역의 원전 유치 찬성은 16.6%, 반대는 77.2%로 나타났는데 원전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두 후보 지지율 변화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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