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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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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다 원전이 중요한 정부?

방사능 불안에 극소량 운운하며 안전 되뇌는 정부…
국내 원전에 대한 정치적 고려보다 시민 안전 우선해야
등록 2011-04-14 14:51 수정 2020-05-03 04:26

불안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방사능 오염이 한반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리적 방사능보다 심리적 방사능이 시민의 정서를 압도한다. 정부는 “검출된 방사성 물질이 극소량이라 안전하다”고 하지만, 이를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아 보인다.

채소만 규제하는 허술한 정부 대책

정부는 지난 3월15일 “편서풍으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로 유입될 가능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바로 옆 나라의 사고지만 한반도는 안전지대라는 뜻이다. 하지만 보름도 안 돼 거짓말이 됐다. 3월23일 강원도에서 대기 중에서 방사능 물질인 제논이 검출된 것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고 있다. 4월6일에는 제주의 빗물에서도 검출됐다. 극미량이라지만 요오드는 전날보다 6배나 높아졌다.

21일 오후 서울 용산 이마트의 일본산 생태를 파는 매장에 '국립수산물품진관리원의 방사능 검사를 통해 안전성이 검증된 상품만 판매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1일 오후 서울 용산 이마트의 일본산 생태를 파는 매장에 '국립수산물품진관리원의 방사능 검사를 통해 안전성이 검증된 상품만 판매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런 방사능 물질 검출은 먹을거리 걱정으로 이어진다. 4월3일 후쿠시마현 내 사고 원전 40km 지점의 토양에서 자란 시금치에서 2만2천 베크렐(Bq)의 세슘이 검출됐다. 이는 기준치(kg당 500Bq)의 40배가 넘는 수치다.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이 농산물 오염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 세계 각국은 일본 식품을 규제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일본 정부에 “일본산 식품에 방사성 물질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증명서를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이런 검사는 실제로 수행할 방법이 거의 없어 사실상 수입 거부나 다름없다. 오만도 “일본은 물론 주변국에서 생산되는 식품이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고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했다. 인도 역시 4월4일, 앞으로 최소 3개월 동안 일본산 식품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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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가들이 일본 식품의 수입을 막는 건 방사능 오염의 특성 때문이다. 세슘을 비롯한 방사성 물질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달리 끓이거나 가공을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아울러 인체의 특정 장기를 넘어서서 세포와 유전자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런 기준에 비춰볼 때 한국 정부의 대처는 허술하다.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부근 4개 현에서 생산된 채소에 대해서만 규제한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나 물을 이용한 제품으로까지 규제 대상을 확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제품들도 오염 가능성은 제기된다. 예를 들어 일본 사케는 거의 대부분 현지 쌀을 쓰는데,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쌀을 이용했다면 오염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사정 탓에 이 지역의 농산물과 먹는 물을 이용한 사케나 맥주 등 가공식품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해산물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직 어패류 등의 해산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고 수습에 사용된 방사능 오염 냉각수가 바다에 지속적으로 방출되고 있어 해산물의 오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걱정은 상당하다. 녹색연합을 비롯해 여러 환경단체들에 방사능 피해 관련 문의가 쏟아진다. 초기에는 ‘한반도로 유입되느냐’는 식의 관심에서 이제는 ‘정부 발표는 믿을 수 없다’거나 ‘아이를 키우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 공포로 바뀌고 있다.

정부와 원전업계, 원전공학계는 “자연방사선이나 엑스레이처럼 기준치 이하인 소량의 방사선은 안전하다”고만 한다. 하지만 지금 날아오는 방사선은 계속 누적되는 인공적인 방사능으로 원전에서 유출된 오염 물질이다. 방사능이 무서운 것은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세포와 DNA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그 영향은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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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생명·안전 관점에서 접근해야

방사능 오염은 기준치가 있다. 정부가 언급하는 방사능 기준치는 원전 작업장의 성인 노동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나이와 성별, 신체 구조에 따라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은 제각각이다. 원전 작업장의 노동자처럼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할 때와 성장기 아이들은 상당히 다르다. 하루에도 엄청난 수의 세포가 생성되는 아이들과 세포 생성이 상대적으로 완만한 성인을 기준으로 한 방사선량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아울러 연간 허용 한도 기준치 역시 아이들과 함께 임산부나 가임여성에게 위험도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 연간 허용 한도 방사선량인 1.0밀리시버트(mSv)가 사람에 따라 다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더욱이 지금처럼 자연 방사선이 아닌 일본에서 유입돼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방사능 오염의 경우엔, 상황이 다르므로 대처 또한 달라져야 한다.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가 대재앙 또는 환경재난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할 때 한국 정부는 ‘편서풍’과 ‘인체 무해’를 되뇌고 있다. 이런 접근은 본의든 아니든 국내 원전에 끼칠 영향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정부는 방사능의 실체와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 대신 ‘원전은 안전하다’고만 강조해왔다.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과 산업계는 방사능 오염 대책을 환경문제로 대처하기보다는 원자력의 안전에 기반을 둔 관점 위주로 접근했다. 하지만 후쿠시마의 원전사고가 웅변하는 바, 그 안전한 원전이 인류의 재난으로 찾아왔다.

정부는 방사능 오염의 실체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기핵오염 전문가인 한광용 박사는 “극소량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신념인지, 아니면 정치적 견해인지 궁금하다”며 “과학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단언하기 힘들고, 방사능의 위험은 사람과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어 기준치라는 말장난으로 방사능 위험을 희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유럽은 체르노빌을 겪으면서 방사능 오염의 심각성을 경험해 지구 반대편 일본의 원전 사고도 심각하게 보는 것”이라며 “국제사회가 심각하게 이해하는 방사능 오염 대책을 한국 정부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검출된 방사능은 대기와 빗물 등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더 큰 재앙의 우려는 남아 있다. 방사성 물질이 쌓여 토양오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가동하는 방사능 측정망은 대기 중심이다. 토양이나 하천, 지하수의 방사능 오염을 잡아내는 고정 관측망이 없다. 그래서 일본에서 날아와 곳곳에 떨어지는 방사성 물질이 누적되는 것은 파악하기 어렵다.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토양은 국내 농산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시민들도 이제 익숙해진 방사성 물질인 세슘은 반감기가 30년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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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방사능 오염 문제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과 기상청에만 맡겨두기에는 오염의 전개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 방사능 오염을 원자력 관점에서 해석하는 수준에서 국가적 환경재난으로 접근하는 환경오염 대책의 관점 전환이 절실하다. 그래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에도 환경부는 물론 농림수산식품부 등이 주도적·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아울러 원전공학자 이외에 예방의학 분야 등 의료계와 환경정화 전문가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구체적인 정보 공개로 대책 모색할 때

공포는 실체가 분명하지 않을 때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정부는 방사능 오염에 대한 시민의 불안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불안을 키울 뿐이다. 오히려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고 다각도로 대책을 모색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제 시민들은 전세계의 사건과 정보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면 ‘방사능 공포’라는 유령이 한반도를 떠돌아다니게 될 터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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