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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청장 진보 후보, 두 개의 목소리

4·27 재보선 야 4당 단일후보 확정 속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 무소속 출마
등록 2011-03-31 11:29 수정 2020-05-03 04:26

오는 4월27일 치르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은 공천과 선거 연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울산 동구청장 선거 준비는 제법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재선거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천석 전 구청장의 공천을 한나라당이 무리하게 강행해 낳은 결과다. 민주당을 거친 정 전 구청장은 2006년 무소속으로 당선됐다가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한 울산 지역 일간지가 실시한 지방선거 여론조사 비용 명목으로 언론사에 500만원을 건넨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한나라당은 지역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무릅쓰고 그의 공천을 강행했고, 정 전 구청장은 1999표 차이로 김종훈 민주노동당 후보를 힘겹게 따돌렸다. 하지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확정돼 결국 당선무효가 됐다.
재선거에 책임 있는 한나라당은 지난 3월14일 임명숙 전 울산시 복지여성국장을 후보로 확정했다.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은 줄다리기 끝에 3월23일 ‘야 4당 선거연대 합의’를 통해 김종훈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를 단일후보로 확정했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공천 결과에 반발한 천기옥 전 울산 동구의회 의장과 ‘야 4당 선거연대’에 반대하는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각각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선거 구도가 ‘한나라당 계열 후보 2명’과 ‘야권 후보 2명’으로 짜이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과의 연대 반대”

공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해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건 익히 봐온 장면이라 치더라도, 야권 연대·연합이 ‘대세’인 지금 이갑용 전 위원장의 무소속 출마 강행은 어찌된 일일까? 이 전 위원장의 출마 선언을 지켜보는 야 4당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판이 잘 정리되고 있는데 왜 갑자기 툭 튀어나와 ‘고춧가루’를 뿌리느냐는 식이다.
이 전 위원장은 “야 4당이 단일화를 추진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에 반대하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고민을 했다. 누군가 나서서 막아야 하는데, 논의 끝에 결국 내가 나서게 된 것”이라며 “후보 등록일은 4월12일이고, 나는 그 전에 이미 출마할 뜻을 밝혔는데 왜 갑자기 이러느냐는 건 민주노동당 등의 폭력”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선거 연합이 논의되는데, 비정규직법을 만들고 정리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신자유주의를 이끈 민주당에 면죄부를 주는 정치적 야합엔 동의할 수 없다. 이번 재보선에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대선에선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운동은 없어지고, 권력을 잡기 위한 야합만 남는다”고 출마 이유를 밝혔다.

지난 3월23일 울산시의회 프레스룸에서 김창현 민주노동당·임동호 민주당·이선호 국민참여당·고영호 진보신당(왼쪽부터) 울산시당 위원장이 4·27 재선거에서 야 4당 선거 연대에 합의하고, 김종훈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를 단일후보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제공

지난 3월23일 울산시의회 프레스룸에서 김창현 민주노동당·임동호 민주당·이선호 국민참여당·고영호 진보신당(왼쪽부터) 울산시당 위원장이 4·27 재선거에서 야 4당 선거 연대에 합의하고, 김종훈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를 단일후보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제공

복잡하고 곡절 많은 울산 동구청장 선거의 역사를 보면, 이 전 위원장의 출마에 다른 배경이 짐작된다. 지방선거를 처음 민선으로 치른 1998년,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위원장이 구청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취임 한 달 만에 김대중 정부의 첫 공안사건인 ‘반제청년동맹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김 전 구청장이 구속됐다. 이듬해 보궐선거에선 그의 부인 이영순 전 의원이 ‘설욕전’에 성공해 당시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 지방자치단체장이 됐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선 이영순 구청장이 재도전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당내 역학 구도 등으로 인해 민주노동당 후보는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출신 이갑용 전 위원장으로 결정됐다. 동구청장에 당선된 그는 2004년 11월 전국공무원노조 총파업 참여 공무원을 징계하라는 행정자치부의 지침을 어겨, ‘직무유기’로 이듬해 울산지법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직무정지를 당했다. 구청장 때 주민참여예산조례를 만드는 등 의욕적으로 일했던 그로선, 정치적 이유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한’이 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은 김종훈 후보 지지

정파가 다른 김창현 위원장과 껄끄러운 관계가 무소속 출마의 한 이유라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노동당 관계자의 얘기는 이랬다. “울산 동구는 원래 자주파(NL)인 김 위원장과 이영순 전 의원의 정치적 기반인데, 이 전 의원의 구청장 연임을 당내 평등파(PD)가 반대하면서 당선된 사람이 이갑용 전 위원장이었다. 당선 뒤 당 조직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서 김 위원장과 불편해졌는데, 이 전 위원장을 뒷받침해준 현대중공업 노조가 ‘자판기 비리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으면서 이 전 위원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번에 야 4당 단일후보로 확정된 김종훈 예비후보도 김 위원장과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이 전 위원장으로선 단일화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 위원장의 ‘파괴력’은 얼마나 될까? 지난 3월10일 민주노동당이 ‘임의번호걸기’(Random Digit Dialing) 방식으로 동구 주민 495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김종훈 후보는 30.3%의 지지율로 2위인 임명숙 한나라당 후보(26.9%)를 근소하게 앞섰다. 이 전 위원장의 지지율은 10.5%에 그쳤다. 임의번호걸기는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되지 않은 가구의 전화번호까지 무작위로 추출해 여론조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성이 좀더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조사는 천기옥 전 동구의회 의장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나온 결과다. 이 때문에 야 4당은 김종훈 후보가 비교적 유리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를 수 있으리라 내다본다. 천 전 의장이 직전까지 한나라당 동구 지역의 조직책이었던데다, 이 지역에 영향력이 큰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와 가까워 임명숙 한나라당 후보 표를 잠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전 위원장은 정당 등의 조직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의 지지율을 반등시키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은 3월24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김종훈 후보를 울산 동구청장 재선거의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확정했다. 이에 앞서 이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에 자신을 ‘민주노총 후보’로 결정해달라고 요구했다가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민주노총 후보와 지지후보는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선거를 지원하는 후보라는 의미로, 지난 지방선거 때도 야권 연대를 뒷받침하는 주요한 힘 가운데 하나였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위원장은 “내가 민주노총 조합원이니까 당연히 할 수 있는 요구 아니냐”며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를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잡으면서 횡포를 부린 건데, 조합원 80만 명 중에 당원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하부 조직이냐”고 비판했다.

이갑용 후보 “끝까지 완주”

김종훈 후보는 “이 전 위원장 출마로 (지지자들 사이에) 약간의 혼란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며 “울산 동구는 노동운동의 시발점이자 진보정치의 출발점인데, (이 전 위원장의 무소속 출마가)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이 들게 할지 고민이 된다. 대의와 노조(민주노총)의 요구에 이 전 위원장이 따라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등으로선 4·27 선거의 ‘반이명박 연대’가 내년 총선·대선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이길 밑돌을 놓는 중요한 일인데, 이를 이 전 위원장이 명분 없는 ‘묻지마 연합’으로 몰아가면서 자신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한 불만이 깔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전 위원장은 “후보 사퇴도, (김종훈 후보와의) 단일화도 없다.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강조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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