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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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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률 게이트’ 특검으로 가나

한상률 전 국세청장 검찰 수사 마무리 단계…

개인 비리에만 집중, 권력 관련 의혹 ‘면죄부’ 기류에 야권 “특검 불가피”
등록 2011-03-30 17:04 수정 2020-05-03 04:26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직위를 이용해 뇌물을 주고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1966년 국세청이 처음 출범한 이래 ‘검은돈’의 유혹으로부터 깨끗한 국세청장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취임한 청장만 보더라도 2009년 1월 그림 로비 의혹 등으로 사퇴한 17대 한상률 전 청장을 비롯해, 13대 손영래 전 청장과 15·16대 청장인 이주성·전군표 전 청장이 각종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거나 옷을 벗었다.

개인 비리만 캐는 수상한 수사

검찰을 드나든 전직 국세청장 가운데 한상률 전 청장이 유독 유명세를 타는 이유는 그의 혐의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의혹의 스케일 면에서 전임자들과 다르다는 뜻이다. 현 정권 실세를 상대로 한 연임 로비 의혹은 물론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배경과 서울 도곡동 땅의 실소유자 정체를 밝힐 열쇠로 지목된 사람이 한 전 청장이었다. 혐의의 파괴력을 따질 때 인사 청탁을 위한 그림 로비 혐의는 잔가지에 속했다.
지난 2월24일 한 전 청장이 갑자기 귀국했을 때 언론은 검찰에 주목했다. ‘한상률 게이트’의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렇지만 검찰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3월 말 현재, 검찰을 향한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수사는 하되, ‘한상률 게이트’의 본질과는 다른 방향의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8년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는 관할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니라 서울 효제동 효제별관에 위치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맡았다.한겨레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08년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는 관할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니라 서울 효제동 효제별관에 위치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맡았다.한겨레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검찰이 집중하고 캐는 쪽은 한 전 청장의 개인 비리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최윤수 부장검사)는 한 전 청장이 2009년 3월 미국으로 출국한 뒤 SK텔레콤과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들로부터 7억여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청장은 “기업에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고 받은 자문료”라고 해명했지만, 사실상 해외 도피 중이던 그에게 기업이 거액의 자문료를 건넨 배경은 수상할 수밖에 없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이 전군표 전 청장에게 고 최욱경 화백의 그림 을 상납하며 인사 청탁을 했는지 여부와, 주류업체 인허가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한 의혹도 함께 살피고 있다.

반면 현 정권 실세와 관련 있는 연임 로비 의혹과 태광실업 세무조사 과정에서의 직권 남용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이 어떤 수사를 하는지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고작 관련 의혹을 제기한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과 대질심문한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 있을 도곡동 땅 실소유자 의혹에 대해서는 거의 묻어두고 가는 분위기다.

검찰의 논리는 의혹만 무성할 뿐 혐의 사실이 구체적이지 않거나 범죄 구성 요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임 로비 의혹, 즉 한 전 청장이 2008년 12월25일 경주 신라CC에서 강석호 한나라당 의원 등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사람들과 골프를 치거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국세청장 연임을 청탁했다는 사실과 관련해, 검찰은 당시 한 전 청장 등과 함께 골프했던 포항 및 경주 지역 기업인 2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물론 이들은 한 전 청장과 마찬가지로 인사 청탁이 오간 사실을 부인했다. 검찰 수사는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한 전 청장이야 (연임 로비를) 부인하는 것이 당연하고, 다른 사람들도 아니라는데 더 이상 어떻게 확인하겠느냐”는 것이 검찰 내부 기류다.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수사는 시늉만 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태광실업의 세무조사 배경에 대한 수사는 더 부실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2008년 7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민주당 등이 한 전 청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이유는 당시 세무조사에 태광실업(부산 소재) 관할인 부산지방국세청을 제쳐두고 국세청 최고의 정예부서로 꼽히는 서울청 조사4국이 동원된 탓이다. 한 전 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를 “통상적인 지방청 간 교차조사”라며 표적 세무조사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검사 출신 박주선 민주당 의원의 주장은 다르다. 박 의원은 “(한상률) 국세청장의 명령이 없었다면 재계 순위 600위권 밖에 있는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투입되는 일은 벌어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주로 서울 지역 대기업을 담당하는 서울청 조사4국이 부산의 중견기업을 조사하려면 국세청장 이상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 청장이 서울청 조사4국에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지시했다면, 그 행위 자체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 박 의원의 논리다. 검찰의 소극적 수사 행태도 그가 문제 삼는 부분이다.

“검찰이 수사하는 건지, 수사하는 시늉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의혹을 수사하려면 한 전 청장의 자백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다. 사건과 관련한 모든 참고인을 불러 진술을 듣고, 말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이 주요 참고인을 소환조사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일이 없다. 정상적인 수사라고 보기 어렵다.”

많은 언론이 관심을 가진 도곡동 땅 실소유자 의혹은 아예 검찰의 관심 밖이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3월 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도곡동 땅 문제는 이미 특검까지 해서 결론 내린 상황인데 (수사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 사건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 검찰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3월까지는 끝날 것으로 보이는 검찰 수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에서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미 ‘한상률 게이트’와 관련한 국정조사 및 특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조사·특검 카드밖에 없다”

장정욱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간사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 애초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예상한 것처럼, 개인 비리는 처벌하되 권력과 관련 있는 부분은 눈감아주거나 면죄부를 주는 수순을 밟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등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면 정치권의 특검 요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양승조 의원이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수사력을 투입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며 검찰의 부실 수사를 강하게 질타했다. 양 의원은 “국정조사 및 특검 카드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됐다”고 전했다. “검찰 수사 결과가 최종적으로 나온 뒤 민주당 입장을 정리해야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적표만 놓고 볼 때 상당히 미흡한 수사로 볼 수밖에 없다. 미흡한 수사, 편파 수사라면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국정조사나 특검 요구밖에 없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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