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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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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목표이면서 동시에 수단인

연평도 요새화·군복무기간 연장 등 포격 사태 이후의 한심한 해법들…

연평해전 뒤 정상회담했던 DJ처럼 대화 통해 해법 찾아야
등록 2010-12-16 17:37 수정 2020-05-03 04:26

평화의 바다여야 할 연평도에서 ‘작은 전쟁’이 발발한 지 보름째인 지난 12월7일 이명박 대통령은 ‘착한 전쟁’처럼 존재하기 힘든 주문을 했다. 이 대통령은 연평도에 대해 “군사적으로 요새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주민들이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일자리 등 여건을 만드는 데에도 여러 부처들이 협력해달라”고 말했다. 무인도화하지는 않되, 지정학적으로 연평도와 유사한 환경인 대만의 진먼섬(금문도)처럼 주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지하시설과 방공호 등을 갖추라는 뜻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주민들이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군사적 요새가 존재할 수 있을까?
 
전작권 없는 자위권 운운은 자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선진강군’을 목표로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추진위)는 12월6일 병사(육군 기준)의 복무기간을 과거 수준인 24개월로 환원하는 방안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병사 복무기간 단축은 노무현 정부에서 결정돼 2014년까지 18개월로 단축한다는 목표 아래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최근 입대자는 21개월 남짓 복무한다. 또 추진위는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했던 군복무 가산점 제도를 다시 도입하는 방안 등 71개 국방개혁 과제를 보고했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이날 보고된 과제를 검토한 뒤 선별해 정책화한다는 방침이다.
따져보자. 병사들의 복무기간을 늘리겠다는 배경에는 ‘훈련해서 쓸 만하면 제대한다’는 추진위의 인식이 깔려 있다. 현대전의 특성상 첨단 장비가 많고 이를 능숙하게 다룰 즈음 전투력이 최고조로 향상되므로, 복무기간 단축은 곧 전투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판단은 달랐다. 첨단 무기가 많고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한 만큼 이런 역할을 일반 사병이 아닌 직업군인에게 맡기자는 복안이었다.
병사의 복무기간 환원 방안은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군의 허술한 대응의 원인과도 무관하다. 연평도 포격 당시 군의 대응과 관련해 병사들의 훈련량이 부족했다거나 복무 경력이 짧아진 것이 원인이라는 평가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군 지휘부의 보고와 근무체계, 그리고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위기대응 체계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추진위가 엉뚱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군복무가산점제 부활 역시 전투력 향상이나 위기대응 체계와는 거리가 멀다. 군복무자와 군복무할 수 없는 여성·장애인 사이에 틈새를 벌려놓는 차별적 제도라는 이유로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데, 사회적 논란만 거듭할 수 있는 소모적 쟁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관진 신임 국방장관의 취임을 즈음해 불거진 자위권 주장 역시 소모적일 수 있다. 김 장관은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이 넘어왔기 때문에 자위권 차원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을 경우 전투기 폭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이양됐음에도 ‘전쟁 억제와 방어, 정전협정 준수를 위한 한미연합위기관리’ 등 6개 사항은 여전히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남아 있다. 또 북한이 도발하고 이에 대한 남한의 강도 높은 대응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미국은 방어준비태세(데프콘)를 격상해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현재 4단계인 데프콘이 3단계로 격상되면 한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이 자동으로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넘어가게 된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상태에서 자주국방·자위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헛헛하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53년 정전협상 이후 줄곧 데프콘4 발령 상태였는데,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살인사건과 1983년 아웅산 묘역 폭탄테러사건 당시 데프콘3이 발령된 바 있다.
 
학자들의 대화 주문에 딴 곳 보는 MB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가까운 역사 속에 이미 정답이 있다. 1999년 6월 남북 함정이 처음 맞붙었던 연평해전(1차 서해교전)이 있었음에도 1년 뒤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 정부의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 당시 김대중 정부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의도적 도발보다는 우발적 충돌에 가까워서 현재 상황과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연평해전이 있었음에도”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의 평화와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지는 흔들림이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김대중 정부 쪽 인사의 증언이다.

»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연평해전 1년 뒤인 2000년 6월 손을 맞잡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연평해전 1년 뒤인 2000년 6월 손을 맞잡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햇볕정책을 표방하고 집권했지만 초기에는 외환위기 극복과 후속대책 때문에 남북관계에 눈 돌릴 여력이 없었다. 그러는 중에 서해교전이 벌어졌다. 현대그룹을 매개로 분위기가 조성되던 남북 정상회담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은 ‘햇볕정책’이 흡수통일을 가정하면서 공화국을 음해하는 용어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하던 때였다. 이런 와중에 무슨 정상회담이냐는 비판적인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정상회담밖에 길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연평도 포격의 충격이 가라앉고 어느 정도 안정 기미를 보이자 국내외 남북문제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대화를 통한 해법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현재는 이명박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에 참여하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와 최완규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공동대표)은 12월6일 가 마련한 특별대담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 교수는 “안타깝게도 연평도에서 4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었지만 이를 계기로 5천만 명의 생명을 지킬 방안을 마련하는 게 위대한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최 부총장은 “정치적으로 어렵고 여론을 추스르기 힘든 상황이지만 정상회담 추진이라는 결단으로 발상을 전환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적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올해의 ‘DMZ 평화상’ 수상을 위해 서울에 온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 유럽평화대학 교수도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방법은 그동안 추진됐던 남북 협력을 재개하고 북-미 사이의 대화를 재개하는 것뿐”이라고 거들었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시선은 엉뚱한 곳을 향해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부쩍 북한붕괴론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에 긍정적 변화는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상 국민의 변화를 거스를 수 있는 어떠한 권력도 없다”(12월3일 사회통합위),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면서 머잖아 통일이 가까운 것을 느낀다”(12월9일 말레이시아 동포 간담회) 등이 대표적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흡수통일을 공개적으로 표방하거나 북한 정권 붕괴를 전제로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이유로 이명박 정부의 △북한 정체성 불인정 △북한붕괴론 기대 △미국에 대한 만병통치약적 인식을 꼽는데, 이 대통령은 이를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손 모아 빌기엔 너무 엄중한 상황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 대통령 발언의 행간에서는 수수방관하던 기다림의 전략을 넘어 북한 정권교체를 위해 모든 힘을 쏟겠다는 ‘김정일 정권 타도론’이 읽히는데, 현실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말로 떠드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며 “강경과 원칙을 앞세운 무대책으로 북핵 문제가 관리되고 개선되기는커녕 북한이 우라늄 농축이라는 ‘아킬레스건’까지 들고 나와 압박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2~3년은 머리 위에 폭탄을 이고 사는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이 공개한 우라늄 농축 시설로 미뤄볼 때 핵 능력을 강화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어서 걱정이다. 지금보다 더 악화되지 않기를 손 모아 빌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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