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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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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오늘은 MB의 내일?



기대치는 높은데 성과는 없어 참패한 미 민주당…

‘747’ ‘300만 개 일자리’ 등 헛공약 남발한 이명박 정부는 무엇을 배울까
등록 2010-11-12 16:04 수정 2020-05-03 04:26

개혁의 과잉이 문제인가, 개혁의 빈곤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에게 걸었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중간선거 참패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던져볼 만한 질문이다. 미국 언론은 11월2일(현지시각) 치러진 중간선거 결과를 ‘오바마의 개혁’이란 열쇳말로 풀었다. 민주당의 패배는 건강보험 개혁과 금융 개혁 등 오바마가 추진한 일련의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불만 탓이라는 해석이다. 반대로 유권자가 그에게 바란 경제회복은 느렸고,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오바마 행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도 반감을 불렀다고 미국 언론은 소개했다.
이와 달리 미국의 진보파는 오히려 개혁의 빈곤을 패배 원인으로 꼽는다. 민주당이 금융 개혁이나 건강보험 개혁 등에서 좀더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공화당 지지층과의 적당한 타협 끝에 이도저도 아닌 개혁안을 내놓았다는 불만이다. 미완의 개혁, 혹은 개혁의 실패야말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을 투표소로 끌어내지 못한 중요한 이유라는 분석이다.
깊어지는 오바마의 딜레마

11월3일(현재시각)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직원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TV중계로 지켜보고 있다.연합 AP

11월3일(현재시각)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직원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TV중계로 지켜보고 있다.연합 AP

중간선거 직후 는 인터넷판 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딜레마적 상황을 소개했다. 이번 선거 결과가 경제위기로 인한 불가피한 패배인지, 백악관이 의사소통에 실패한 결과인지, 아니면 대중이 부여하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무시한 대가인지 등의 문제를 놓고 오바마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개혁을 하자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이 앞을 막고, 개혁을 미루자니 다시 2년 뒤 대선을 기약할 수 없다. 2008년 변화와 함께 ‘국민 통합’을 내세워 당선한 오바마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는 지난해 에 연재한 ‘오바마와 미국’에서 21세기의 미국 대통령을 ‘낭만적 영웅 슈퍼맨’이 아니라 ‘영화 속 배트맨’에 가깝다고 묘사했다. 슈퍼맨의 위기는 눈앞의 악당을 물리치면 그만이지만, 배트맨에게 주어진 조건은 훨씬 복잡하고 난해하다.

사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은 바로 오바마 대통령 본인이었다. 그가 2008년 대선 직후 미국의 시사주간지 과 한 인터뷰 내용의 일부다. 당시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오바마에게 은 이렇게 물었다. “2년 뒤(2010년) 치러질 중간선거 때 유권자는 오바마 정부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오바마가 대답했다. “2년 뒤 미국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정부는 완벽하지 않아. 오바마가 하는 일 가운데 내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 몇 가지 있어. 하지만 나는 이 정부가 나를 위해 일한다고 느낄 수 있어.’”

불행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오바마의 예감은 실제로 2년 뒤 그대로 적중했다. 다만, 희망사항이 함께 실현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바로 지난 3월 미 의회를 통과한 건강보험 개혁안 이야기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전 국민 의료보험이 없는 나라였다. 4700만 의료보험 미가입자와 저소득층에게 오바마의 개혁안은 획기적인 소식이었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 확대’라는 측면에서 장차 오바마의 최대 업적으로 기록될 건강보험 개혁안은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오히려 오바마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민감한 현안인 이른바 ‘부자 감세 철폐’도 마찬가지였다. 오바마는 역시 과의 2008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근로자의 95%는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것이며, 저소득층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연봉이 25만달러 이상인 고소득층은 부시 행정부에서 받아온 세금 감면 혜택을 더 이상 받지 못할 것이다.” 연소득 25만달러를 기준으로 할 때, 과세 대상 고소득층은 미국 전체 가구의 1.7%인 270만 가구에 불과하다. 미국의 천문학적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오바마의 호소였지만 유권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기대치 게임’이 불러온 패배

오바마의 바람과 달리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백인층과 노·장년층은 건강보험 개혁과 부자 감세에 대한 그의 완강한 태도를 지켜보며 애초부터 품은 반감을 강화했다.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안과 감세안이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공화당의 선동이 주효했고, 재계까지 불만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오바마의 감세안에 대해서는 그의 표현대로 1.7%에 불과한 백만장자만 돌아선 것이 아니라 ‘반오바마’ 성향 유권자 전체가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문제는 건강보험 개혁과 부자 감세 철폐로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저소득층과 청년층, 흑인 유권자 가운데 상당수가 그를 외면했다는 사실이다. 개혁의 빈곤에서 이유를 찾자면 건강보험 개혁에서 핵심인 ‘퍼블릭 옵션’을 제외한 것이 오바마의 실책으로 꼽힌다. 퍼블릭 옵션이란 정부가 별도의 공공보험을 운영해 민간 보험사와 직접 경쟁을 벌이고, 이를 통해 보험료 인하를 꾀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의회 통과를 위해 장기에서 차포 떼듯 핵심을 도려낸 채 건강보험 개혁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이 진보파의 불만이다. 오바마의 부자 감세 철폐안은 여당인 민주당의 일부 보수 성향 의원조차 자신의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발했다.

오바마의 식어버린 인기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열쇳말은 ‘기대치 게임’이다. 애초 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 실책이 중간선거 참패의 한 원인이라는 해석이다. 2008년 경제위기에 대해 섣불리 ‘회복’을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안병진 교수는 “오바마의 유일한 실책은 건강보험 개혁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 등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라며 “취임 초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면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말해 유권자의 기대치를 높인 것은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미국 경제의 빠른 회복은 오바마 대통령이 단기간에 해낼 수 없는 과제였다. 단적인 사례가 고용 위기의 문제다. 미국 언론은 유권자가 요구한 것은 건강보험이 아니라 일자리였다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10%에 달하는 미국의 실업률은 오바마가 아니라 다른 어떤 대통령이라도 쉽게 처방을 내리기 어렵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이상동 연구센터장은 “미국의 높은 실업률은 제조업 약화 등 구조적 문제에 원인이 있다”며 “게다가 노동력 상실 등으로 장기 실업 상태에 있는 인구가 전체 실업자의 50%에 달해 단기적 처방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책임질 일만 남은 MB

‘기대치 게임’의 프레임으로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를 설명한다면, 누구보다 이를 뜨끔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국민성공시대’ 등 2007년 대선 캠페인 기간에 내놓은 구호는 말 그대로 구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매년 7%의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어 세계 7대 강국에 진입하겠다는 ‘747 공약’ 역시 말 그대로 공약(空約)으로 받아넘길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대통령이 유권자 앞에 내놓은 약속은 그 밖에도 많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며 매년 60만 개씩 임기 5년간 모두 300만 개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장담한 사람도 이 대통령이었다. 그렇지만 임기 2년간 그가 만들어낸 일자리 성적표는 초라하다. 2009년에는 오히려 전년 대비 7만1천 개 줄었다. 올해 2분기에는 43만3천 개 증가로 돌아섰지만, 핵심 근로계층인 청년층(15~29살) 일자리는 역시 5만7천 개 감소했다. 청년실업이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노동자 가운데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를 웃돈다. 나쁜 일자리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청년실업 문제와 체감 경기의 부진 등은 이미 지난 6·2 지방선거 때 이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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