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만족 국회’ 대 ‘서민을 위한 수권정당’.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내놓은 이번 정기국회의 목표다. ‘정기국회의 꽃’이라 불리는 국정감사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첫 번째 시험대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서민이 행복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토론하는 서민행복 국정감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조영택 민주당 대변인은 “국정감사 등 적극적인 국회 활동을 통해 (친서민) 정책의 미비점을 질타·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여야 모두 오는 10월4~20일 열리는 국정감사에서 ‘친서민 경쟁’을 벌이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4대강 사업 vs 서민예산 확충여기까지라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양쪽이 국정감사에서 서민을 화두로 올리는 이면엔 ‘공정한 사회’를 둘러싼 날선 공방이 있다. 특히 ‘공격’이 주된 역할인 야당으로선 ‘공정한 사회’만큼 따지기 좋은 소재가 드물다. 반면 정부와 명운을 같이해야 하는 여당으로선 야당의 공격을 막아내기가 쉽지 않다.
서민과 공정함이라는 두 가지 화두를 아우르는 최대 쟁점은 4대강 사업이다. 현재 4대강 사업 전체 공정률은 약 30%, 보 건설 공정률은 약 50%에 이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도 정부가 이 대통령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밀어붙이는 대표적인 ‘속도전’ 사례다. 이렇게 일을 추진하다 보니 졸속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바람에 4대강 사업비가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다른 사업에 배정된 예산을 4대강 홍보비로 전용하는 등의 사례는 지속적으로 지적된다. 4대강 사업 예산을 이렇게 쓰는 것은 그 자체의 불법·탈법성도 논란거리지만, 다른 예산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4대강 예산이 ‘상수’로 잡혀 있다 보니 서민복지·민생 분야 예산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도 보육·전문계고교·다문화가족을 지원하는 ‘서민희망 3대 핵심과제’ 예산을 올해보다 1조원가량 늘어난 3조7209억원으로 잡았지만, 이는 내년 4대강 예산 9조4580억의 40%도 안 되는 규모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친서민을 외치고 있지만, 예산을 배정하는 ‘우선순위’는 4대강 사업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민주당은 국정감사에서 이런 4대강 사업이 서민을 위한 것도, 공정한 사회를 위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따져, 4대강 예산을 삭감할 디딤돌을 놓을 계획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이런 태도가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고 맞설 태세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내년도 총예산에서 4대강 예산은 2%에 불과한데, 그걸 두고 서민에게 돌아갈 예산을 4대강 사업에 쓴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자 정치 공세”라며 “‘서민희망 3대 핵심과제’ 예산 등 보육·복지 예산이 대폭 늘어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 농단 실체가 더 나올까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문제로 불거진 현대판 ‘음서제’(공신이나 전·현직 고위관리의 자제를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제도) 논란도 서민·공정이라는 잣대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9월15일 라디오 연설에서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기관의 특채 현황을 철저히 파악하고 국민에게 공정한 정부가 되도록 대책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혹이 터지자마자 청와대가 유 전 장관을 경질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허물투성이 입으로 어떻게 공정사회를 강요하느냐’는 비아냥은 감수해야 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도 고위 공직자 자녀 특채를 그냥 덮어두고 가기는 어렵다는 기류가 강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대놓고 욕할 수 있는’ 민주당과 달리 정부와 여론 양쪽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다.
민간인·여당 의원 사찰 문제는 공정함의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더욱 큰 쟁점이다. 권력기관이 정권을 보위하려고 스스로 ‘찍어둔’ 반대파를 향해 초법적인 권력을 휘둘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횡’의 배경을 놓고 특정 세력이 입지를 다지려고 권력을 사유화해 국정을 농단했다는 주장이 여권 안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찰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불거진 문제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손발’을 기소하는 데서 수사를 멈추고 말았다.
불꽃이 여당으로 튀면서 사찰 의혹은 이명박계 주류와 비주류의 ‘권력다툼’으로 비화한 측면이 없지 않다. 사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남경필·정두언·정태근 의원은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는다”며 ‘배후’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그동안 남·정·정 의원으로부터 ‘사찰의 몸통’으로 지목받으면서도 가타부타 말이 없던 이상득 의원이 10월호 인터뷰에서 이들을 향해 “참 나쁜 사람들이야. 치고 빠지고…. 전형적인 운동권식”이라고 정면으로 맞대응하면서 ‘전선’은 더욱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이런 국면에서 민주당은 국정감사를 통해 ‘국정 농단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벼른다. 민주당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민간인 사찰 의혹을 받는 일부 전직 공직자 등을 국정감사 증인·참고인으로 채택하기로 한나라당과 합의했다. 그러나 ‘실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받는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을 국정감사장에 불러세우는 데는, 한나라당의 반대로 실패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의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옴짝달싹 못 하는’ 근거가 없는 한 이들을 부를 수는 없다는 게 한나라당의 논리다. 더구나 이 전 지원관 등이 국정감사에 출석한다 해도 이들이 얼마나 진실에 부합하는 답변을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천안함 사태의 ‘진실’을 둘러싼 공방도 이번 국정감사에서 다시 한번 달아오를 것 같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모두 정부의 천안함 사고 최종 조사결과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데 주목한다. 우선 민주당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고 보고 사고 조사 과정의 불투명성을 따지는 한편, 민간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다시 한번 검증을 시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명명백백히 드러난 천안함의 진실을 못 믿겠다는 걸 못 믿겠다’는 태도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북한 소행이라고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의 진실을 못 믿겠다는 일부 여론에 정치권이 동조하는 게 안타깝다”며 “정부가 밝혀낸 사고 원인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밝혀야 된다”고 말했다. 야당의 공세를 ‘음모론’으로 맞받아치겠다는 얘기다.
뜨거운 감자,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논란조현오 경찰청장의 ‘강연 동영상 발언’으로 불거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의혹은 ‘지뢰’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한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의 증인 채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다. 민주당은 조 청장의 발언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존재는 틀린 말도, 맞는 말도 아니다”라고 말한 이 전 부장의 증인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차명계좌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여권이 또다시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려 든다는 점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만에 하나 실제로 차명계좌가 존재한다면, 이는 민주당에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명계좌 특검을 주장한 홍준표 최고위원과 주성영 의원 등 한나라당 일각에선 차명계좌의 존재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한나라당은 대체로 이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세게’ 다룰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자칫 잘못 대응했다간 노 전 대통령 추모 정서를 건드려 되레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예상과 달리 맥 빠지는 국정감사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국정감사 하루 전날인 10월3일에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를 열기 때문에 국정감사 준비에 모든 힘을 집중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한나라당도 11월에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핑계로 국정감사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두고 볼 일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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