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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왕의 남자’?

검찰 수사 비켜간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 지식경제부 2차관에 임명돼
등록 2010-08-20 13:42 수정 2020-05-03 04:26

“정보는 관리되고 조작될 수 있지만, 진실은 관리될 수도 왜곡될 수도 없습니다. 사찰 당사자로서 기다리는 시간은 끝났습니다.”(8월12일)
“저는 어제 불법 사찰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검찰의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 불법 사찰에 대한 몸통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8월13일)
 
정태근·남경필·정두언, ‘몸통’ 규명 촉구

지식경제부 2차관으로 임명된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8월13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지식경제부 2차관으로 임명된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8월13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이 연이틀 개인 성명을 냈다.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팀이 8월11일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와 8월13일 정부 차관 인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때를 같이한 남경필·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인터뷰나 공개 발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 사람은 지원관실,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사찰을 당한 이들이다.

민간인 사찰 사건과 차관 인사. ‘별건’처럼 보이는 두 사건의 연결고리는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다. 그는 이번 차관 인사에서 지식경제부 2차관에 임명됐다. 박 차관은 지원관실을 사조직으로 운영하며 인사 전횡 등을 통해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세 의원이 사찰을 당한 것은 2008년 6월 이후인데, 이는 당시 이들이 ‘형님 권력’ 이상득 의원의 2선 후퇴를 강하게 주장해 미운털이 박힌 결과이며 사찰 배후엔 최소한 박 차관이 있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그런데 특별수사팀을 꾸려 37일 동안이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이인규 전 지원관과 김충곤 전 점검1팀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원충연 전 점검1팀 팀원을 불구속기소하는 데 그쳤다. 지원관실이 한 일을 입증할 만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복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는데, 검찰은 이들이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수사팀을 꾸린 지 나흘 뒤인 지난 7월9일에야 압수수색을 벌였다. 박 차관의 측근으로, 지원관실 운영 등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도 단 한 차례 조사하는 데 그쳤다. 부실 수사 논란을 검찰이 자초한 셈이다.

이 때문에 보수 성향 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조차 8월12일 낸 논평에서 “검찰의 빈약한 수사 의지가 용두사미 수사 결과를 낳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앞서 8월1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검찰이 박영준 국무총리실 차장 등은 수사도 하지 않는 등 현 정권과 관련된 중요 의혹에 대해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수사로 일관해왔다”며 “결국 검찰은 ‘꼬리 자르기’ 수사에 급급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상된 결과지만, 박 차관이 8월13일 인사에서 공직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도 이들로선 답답한 노릇이다. 비록 총리실을 떠나긴 했지만 주요 경제부처 차관에 중용됨으로써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것이다. 정태근 의원은 “정무적 활동이 불가능한 곳으로 배치하고자 한 고심을 읽을 수 있으나 여러모로 걱정되는 바가 많다”고 말했다.

 

보수 단체도 ‘꼬리 자르기’ 수사 비난

정 의원 등 ‘사찰 피해자 3인방’은 박 차관의 사찰 관련 정황 등을 하나씩 공개하면서 당에 특검 수용을 호소할 계획이다. 하지만 안상수 대표 등 당 지도부는 물론, 동료 의원들조차 아직은 크게 동조하는 움직임이 없다는 게 문제다. 한편 민주당은 민간인 사찰 사건과 관련해 국정조사와 특검을 추진할 방침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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