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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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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중심으로 헤쳐모여

국가 시스템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복지국가론, 진보대통합의 핵으로
등록 2010-06-25 14:34 수정 2020-05-03 04:26

“진보를 재구성하려면 먼저 진보 담론을 재구성해야 한다. 즉, 시민이 진보 정당에 투표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복지국가다.”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칭·이하 시민회의)를 주도하고 있는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의 말이다. 시민회의의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복지국가라는 지향점 아래 흩어진 진보 정치 세력을 묶어 ‘한나라당이 싫지만, 비전이 뚜렷하지 않은 진보 정당도 외면하는 시민’을 끌어안겠다는 것이다.

토건성장국가에 맞서는 복지국가

5월5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가 나눠주는 친환경 사과를 받으며 무상급식 서명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5월5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가 나눠주는 친환경 사과를 받으며 무상급식 서명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시민회의가 진보의 재구성이 아니라 진보 담론의 재구성, 즉 진보대통합의 ‘내용’에 우선적으로 주목하는 건 그동안 진보 진영이 국민에게 ‘무능한 좌파’ ‘실천은 못하면서 관념·구호만 내놓는 세력’으로 비쳤다는 반성 때문이다. 한나라당 등 보수 세력은 성장 위주의 정책을 핵심으로 하는 ‘선진화 담론’으로 뭉쳐 정권 교체에 성공했고, 재집권 전략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진보 진영은 신자유주의 반대, 민주주의 발전, 민생 중심 등 많은 주장을 내놨지만 여전히 정확히 뭘 하겠다는 건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민회의가 그냥 ‘복지’가 아니라 ‘복지국가’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도 이런 반성과 맞닿아 있다. ‘복지’는 지금의 국가 시스템 안에서 좀더 많은 복지정책을 실행한다는 의미다. 실업급여를 확대하거나 기초연금제를 실시하는 것이 그 예다. 이와 달리 ‘복지국가’엔 국가의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적지 않은 복지정책을 실행했지만, 오히려 양극화 체제가 고착된 이유가 국가 시스템을 그대로 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민회의는 현재 시스템을 ‘토건성장국가’로 규정한다. 토목건설 사업에 집중된 국가 역량이 복지국가에선 교육과 보육에 집중돼 우수한 인적 자본이 육성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6·2 지방선거를 되돌아보면 그런 구도가 명확해진다. 교육감·교육의원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장·의원 선거에서도 무상급식은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단순한 복지정책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사실 여기엔 무상교육, 즉 모든 학생이 평등하게 교육받도록 국가가 책임진다는 복지국가의 철학이 깔려 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내세운 ‘복지혁명’, 심상정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경기지사 선거에서 주장한 ‘세 박자 복지’를 비롯해 야권 단일후보를 중심으로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많은 복지 관련 공약이 쏟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세제도 개편 등 업그레이드 지속돼야

시민회의는 계획대로 진보대통합 정당이 출범한다 하더라도 그대로 정당에 흡수되지는 않겠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시민회의 참여 인사 가운데 정당에 합류할 사람은 정당으로 가되, 나머지는 밖에서 담론·정책·의견 등을 제시하고 다듬어야 복지국가론이 더욱 튼튼해진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국가 시스템을 바꿀 정도로 전면적인 변화를 이루려면 조세제도 개편 같은 재원마련 대책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진보 진영 일각의 지적처럼, 아직은 완성단계가 아닌 복지국가론을 집권 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하려면 정당 외곽에서 전문가들이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탄생해 흔쾌히 국민들에게 선택받을 지는 미지수다. 중요한 건 진보 진영이 국가 시스템과 집권 비전을 놓고 처음으로 머리를 맞댔다는 점이다. 담대한 희망은 이제 시작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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