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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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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로 변신한 ‘정치 햄릿’

정운찬 총리 후보자, 선거의 계절마다 갈지자 걷다 정책의 차이 뛰어넘은 깜짝 선택
등록 2009-09-11 12:15 수정 2020-05-03 04:25

“본인도 어려운 결심을 하신 거라고 봅니다. 거기에 재 뿌리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결코 훌륭한 결정이라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평생 지켜온 원칙과 철학이 있는 분인데, 그걸 잘 유지하며 국무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어차피 일은 청와대가 하는 거니까 총리는 보완재 역할이나 해달라’는 취지의 총리 기용이라면, 그건 황당무계한 기대가 되겠죠.”

올 초까지 각종 선거 때마다 민주당으로부터 출마 제안을 받았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로 전격 발탁됐다. 총리로 내정된 9월3일 오후 정 전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올 초까지 각종 선거 때마다 민주당으로부터 출마 제안을 받았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로 전격 발탁됐다. 총리로 내정된 9월3일 오후 정 전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학계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의 개각 명단 발표 직전인 9월3일 오전 과의 통화에서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 후보자 지명을 수락할지 측근 그룹과 미리 상의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걸 상의하면 우리가 펄쩍 뛸 것이라는 사실을 (정 후보자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상의했을 리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상실감 큰 민주당 지도부

정 후보자의 등장은 갑작스러웠고, 전격적이었고, 무엇보다 뜻밖이었다. 정 후보자의 또 다른 핵심 측근 역시 “상의는커녕 나도 오늘 아침에서야 총리 후보자로 발표될 것이라는 사실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상식적인 케인시언의 범주를 뛰어넘지 않는 정 후보자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나 사회 안전망 확충을 통한 복지 확대, 정보기술(IT)과 관광산업 육성 등 정 후보자가 강조해온 방향이 MB 정부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정치권의 반응도 정운찬 후보자의 측근 그룹과 비슷했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권이란 지난 수년간 정 후보자와 일정 부분 교감을 나눠온 민주당을 가리킨다. 특히 올 초까지 정운찬 후보자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던 민주당 지도부의 상실감이 크다.

실제로 민주당 지도부는 4월29일 인천 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정 후보자를 내세우기 위해 정 후보자를 두 차례나 직접 만나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수도권 압승을 이루고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참신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지닌 정치권 외부 인사의 합류가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 대표적 인물이 정 후보자라는 데에도 민주당 내 이견이 없었다. 3월 말께 이뤄진 양자 접촉은 정 후보자가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며 난색을 표한 탓에 소득 없이 끝났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 후보자는 민주당 지도부가 만나달라고 해서 만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가 당시 정치나 선거 출마 자체에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은 아니어서 지도부 내부에서는 2010년 지방선거 이전에 다시 설득해보기로 하고 영입 작업을 매듭지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대 제의에 ‘ NCND’로 일관

이런 식이었다. 지난 수년간 정운찬 후보자가 정치권에 보인 태도는 늘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딱 부러지게 거절하거나 승낙하는 게 아니라,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그가 보인 일련의 행보가 단적인 사례다. 그해 3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한나라당을 전격 탈당한 뒤 ‘손학규·정운찬·진대제 드림팀’ 구상을 내놓았다. 충청권 지지세가 약한 손 전 대표가 충남 공주 출신의 정 후보자에게 노골적으로 구애한 것이다. 3월20일 마침 정 후보자가 특강을 위해 충남대를 방문했다. 기자들이 강의실에 들어가려던 그에게 손 전 대표의 드림팀 구상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아직 어떤 제안도 받은 적이 없지만, 학교 선후배 사이고 인간적인 신의를 가진 사이라 정치적 만남이 아닌 인간적인 만남이라면 언제든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 있다.”

정 후보자의 발언 이후 언론 보도는 중구난방이었다. 한 인터넷 언론은 “언제든지 손 전 지사 만날 수 있다”라는 제목을 뽑았고, 다른 언론은 “정운찬, 손과 정치적으로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전혀 상반된 제목을 달았다.

손학규 전 대표의 드림팀 구상에 이어 정동영 의원 쪽에서 ‘정동영·정운찬·손학규’의 연대, 즉 ‘정정손 연대’를 제안했다.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민생정치모임에서도 정운찬 후보자에게 호감을 나타냈고, 김한길 의원 중심의 통합신당모임도 정 후보자와의 연대를 신당 추진을 위한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이런 흐름과 별도로, 충청권에 연고를 둔 당시 여권 의원들도 정 후보자에게 줄을 댔다. 이들 그룹에 참여하던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정 후보자와의 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일본 도쿄까지 쫓아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겠다’며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학 특강 등의 형식을 빌어 대선 출마와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그리고 그해 4월30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07년 4월4일 광주 전남대 용봉홀에서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정 후보자. 사진 연합 형민우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학 특강 등의 형식을 빌어 대선 출마와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그리고 그해 4월30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07년 4월4일 광주 전남대 용봉홀에서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정 후보자. 사진 연합 형민우

한나라당도 2006년 지방선거 때 구애

2006년 7월19일 서울대 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2007년 4월30일까지 9개월여 동안 정운찬 후보자는 정치권과 비정치권의 경계에서 갈지자 행보를 수십 차례 되풀이했다.

“나는 대통령감이 못 된다. 여론조사에서 이름을 빼달라.”

“정치권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 정치권 가면 다 망해서 오더라.”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대선 출마 생각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

“누가 국가 경제를 제대로 이끌어갈 것인가를 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면 지금 출발해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 밀리지 않을 것 같다.”

모두 정운찬 후보자 본인이 언론에 한 말이다.

정운찬 후보자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결과적으로 당시 여권에 치명타가 됐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각 정치 그룹이 그의 영입에 매달린 탓에 언론의 관심이 온통 정 후보자 등 외부 인사의 대선 합류 여부에 쏠렸다. 이는 여권 내부의 대선 후보가 왜소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7년 대선 전후 구여권이 정운찬 후보자에게 끊임없이 구애한 이유는 그의 이력이 한나라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정 후보자가 유명세를 얻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는 서울대 교수 재직 시절 참여한 정치 민주화운동 덕분이었다.

정 후보자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해직될 뻔했다. 1984년 4월에는 동료 교수 2명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주도했고, 1986년 3월에는 민주화와 대학 자율화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몇 차례 교수직을 걸고 투쟁한 이력은 그가 대학 사회에서 ‘개혁 지향의 중도 성향’ 교수로 자리잡게 된 계기였다. 정 후보자의 측근은 “이런 이력을 잘 아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를 상당히 아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정 후보자를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하려 했지만 정 후보자가 이를 고사했다.

한나라당이 정운찬 후보자를 영입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서는 그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 입문을 놓고 오락가락했던 정 후보자도 각종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는 분명히 반대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3불 정책 놓고 참여정부와 첨예 대립

굳이 거리를 따진다면 정운찬 후보자는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에 가까웠던 셈이지만, 3불 정책 등 교육정책 분야에서는 오히려 참여정부와 날카롭게 대립했다. 본고사와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금지한 3불 정책 폐지를 주장하는 정 후보자의 교육 철학은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관과 맞닿아 있다. 2007년 초 열린우리당 내에서 정 후보자를 지지하며 그와 수차례 접촉했던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은 “3불 정책에 대한 대화를 하다 보면 정 후보자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정치 개혁에 대한 식견이 다소 모자라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특히 3불 정책 폐지를 옹호하는 주장을 되풀이하기에 결국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대선 후보로 적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교육 분야와 달리 경제정책 분야에서는 정운찬 후보자와 MB 경제팀의 차이가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한 정 후보자의 비판은 신랄했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대외적 요인에 의한 것도 있지만 새 정부 경제팀이 만든 것도 많다. 무엇보다 대내적 불확실성은 새 정부 경제팀의 철학이 불분명하다는 데서 비롯됐다. 감세가 실제 경제 효과 없이 소수 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의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다.”(2008년 12월15일 기고문 일부)

이명박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4대강 정비사업과 이른바 ‘녹색 뉴딜’에 대해서도 정 후보자는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뉴딜은 제도를 바꾸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둔 것이지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뉴딜를 한다고 잠수돼 있던 대운하가 나올까 걱정이다.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맞지 않는 대운하 사업에 들어갈 돈은 장기적 연구와 개발 등 소프트파워 신장에 써야 한다.”(2008년 12월10일 미국 뉴욕 초청강연)

하지만 국무총리 자리에 지명된 직후 정운찬 후보자가 밝힌 ‘소신’에 따르면, 대중은 대운하와 감세 정책 등에 대한 그의 철학을 상당 기간 ‘오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9월3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는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해 “나는 그동안 대운하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쉽게 반대하기 힘든 사안”이라고 말했다.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4대강 주변에 쾌적한 중소도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바뀐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직후 정운찬 후보자가 내놓은 평가도 과거와 다르다. 9월3일 정 후보자는 “구체적 정책에는 경제학자로서 이런저런 비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최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분과 내 경제철학에 크게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반면 2007년 3월 과의 인터뷰에서는 “서울대 총장 시절 서울시장이던 이 전 시장을 여러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 거칠고 독선적이었다. 이 전 시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집요하게 권유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거칠고 독선적이라고 느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중도 이념의 몰가치성 드러내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정운찬 후보자가 애매한 행보를 보인 부분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검증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치권의 이쪽저쪽을 현란하게 오간 행적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속앓이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사실 우리가 일방적으로 구애하다 끝난 것 아니냐”는 자조적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2007년 정운찬 후보자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지 그를 당시 여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우리나라에서 중도를 지향한다는 지식인의 이념적 스펙트럼이란 것이 대단히 몰가치적”이라며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공직 진출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공직 진출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직 개념이 형성돼 있는 나라”라고 허탈해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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