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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에 난타당하는 민주당 속사정

한나라당의 잇따른 막말 공격에 뾰족한 대응 없어… “상황의 절박함 못 느낀다” 지적도
등록 2009-07-16 14:38 수정 2020-05-03 04:25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입’이 연일 화제다. 사무총장 취임 이틀 뒤 “노무현 조문 정국이라는 ‘광풍’ 역시 정 많은 국민들이 또다시 겪는 ‘사변’”이라고 말해 막말 논란을 일으키더니, 7월6일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투쟁 교시를 내리는 한국판 ‘호메이니’”라고 비난했다. 호메이니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이끌어 팔레비왕조를 무너뜨린 시아파 최고지도자다. 장 사무총장은 이명박 정권이 ‘독재’라는 김 전 대통령의 비판을 “아프리카 어느 후진국 반군 지도자의 선동발언”이라고 받아치며 ‘DJ 저격수’란 별명도 얻었다. ‘시련’도 찾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을 살인마로 지칭하는 현수막을 걸었다”며 ‘주어’ 없는 공격을 했다가 민주당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발과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이에 장 사무총장은 “변별력을 상실한 치매정당”이라고 또 독설을 날렸다.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6월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앞에 걸린 펼침막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장 사무총장은 이날 민주당이 펼침막을 설치한 것처럼 말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6월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앞에 걸린 펼침막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장 사무총장은 이날 민주당이 펼침막을 설치한 것처럼 말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장광근의 거친 입 연일 불뿜어

장 사무총장처럼 막말 논란을 빚는 정치인은 한둘이 아니다. 전병헌 전 열린우리당 대변인의 말마따나 막말은 “인내력과 인간성까지 황폐화시킬 수 있는 저질 발언”이지만, 이처럼 손쉽게 꺼내들 다른 ‘무기’가 드문 탓이다.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가령, 거짓말을 계속하는 고위 공직자에겐 ‘그러지 말라’가 아니라 ‘그만두라’고 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으냐”며 “짧은 글이나 말로 상대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려면 발언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다. 그래야 지지층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단 ‘저격수’로 이름이 나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사실 한나라당엔 이름난 막말 혹은 독설의 고수가 적지 않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김대중씨”라고 지칭해 논란을 불렀다. 민주당엔 “파업 전문 정당”이라는 딱지를 붙여줬다. 신지호 원내부대표는 올 초 용산 참사와 관련해 “반대한민국 단체(전국철거민연합을 이름)의 치밀함 속에 진행된 도심 테러다. 고의적으로 방화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홍준표 전 원내대표, 공성진 최고위원, 차명진·심재철·전여옥·진성호 의원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독설가들이다.

반면 민주당에선 ‘선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대변인 시절 “한나라당은 대통령 지시만 있으면 또는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눈치 보고 움직이는 식물 정당, 금치산 정당”이라고 했던 최재성 의원,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 때 “공공기관 낙하산 대기자들은 이명박의 휘하이자 졸개들”이라고 말했던 이종걸 의원 정도가 손에 꼽힌다. 민주당 처지에서 보면 거품을 물 일이 수두룩한데도 말이다. 국회법 25조 국회의원의 ‘품위’ 유지 의무를 유독 지켜서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지난 17대 국회만 돌아봐도 그렇다. 정청래 전 의원은 지난해 5월 “인터넷에서 대통령 탄핵 서명을 하고 있는데, 시작과 함께 레임덕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고 말하는 등 거친 입으로 유명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히틀러 못지않은 재앙을 불러일으킬 사람”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김현미 전 의원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와 동급이다. 둘 다 퍼스트레이디였고,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정권의 동업자”라고 표현했다.

새로운 무기도 못 찾는 무력감

여의도 주변에선 지금 민주당이 독설로도 한나라당에 밀리는 이유를 두고 “절박함을 못 느끼는 탓”이라 말한다. 정치권에서 막말이 사라지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민주당은 막말과 독설을 대신할 새로운 무기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이한 인식은 여기저기 드러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등 임시국회 개회 조건으로 내건 ‘5대 요구’는 어느새 잊었다. “대안은 있을 수 없다”던 미디어법안에 ‘준종합편성채널’을 집어넣어 스스로 ‘틈’을 열어줬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여권을 공격할) ‘스피커’가 약하다는 것도 고민이지만, 아직도 여당 티를 벗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의원 개개인의 스타일이 그리 쉽게 바뀌겠느냐”며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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