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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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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풍 패션’ 국방개혁안

최소한의 자주적 방위력 포기하고 시대착오적인 지상군 페스티벌…
미국과도 인식 다른 국방부의 시대착오
등록 2009-07-10 11:04 수정 2020-05-03 04:25

북한의 군사전략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경탄을 자아낸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한반도 전장의 판을 어떻게 짤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왔고, 이를 군사전략으로 구체화해온 것으로 보인다.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기발함과 의외성, 그 혁신 사례는 1970년대의 땅굴, 80년대 시작된 핵과 미사일, 90년대 완성된 특수부대에 의한 ‘판갈이 전술’(속전속결식 비정규전을 일컫는 북한 군사용어) 등 수도 없이 많다. 틈새를 공략함으로써 전장에서 일거에 전략적 우위를 달성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돋보인다. 북한식 ‘블루오션 군사전략’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뒤로 돌~아 갓!’ 지난 6월26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국방개혁 기본계획(2009~2020)’ 발표 회견에서 이상희 국방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계획안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 황광모

‘뒤로 돌~아 갓!’ 지난 6월26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국방개혁 기본계획(2009~2020)’ 발표 회견에서 이상희 국방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계획안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 황광모

반면 북한보다 4배 이상 많은 국방예산을 쓰는 우리는 어떤가? 한반도 전장의 틀을 우리 스스로 짠다는 것은 이제껏 우리 군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영역이다. 한국 군부에는 오랫동안 대미 의존 심리와 타성에 길들여져 안주하고자 하는 정신적 유전자가 자리잡았다. 국방력을 건설하는 목적은 단지 북한을 따라잡는다는 ‘대응전략 차원’, 즉 ‘레드오션 전략’에 머물렀다. ‘부족한 부분은 미국이 다 해결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이를 뒷받침했다. 그 결과 한반도 전장은 북한이 ‘주도’하고 남한은 이에 ‘적응’하는 행태가 되풀이됐다.

‘레드오션 전략’ 반복해온 한국 군부

지난 6월26일 국방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발표한 ‘국방개혁 기본계획(2009~2020)’은 바로 그런 한국식 ‘레드오션 전략’의 산물이다. 이 계획은 지난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 노선’을 전면적으로 포기하고, 전통적 군사사상으로 회귀하는 복고풍 패션이다. 1년여 검토 기간을 거쳐 이런 계획이 나오게 된 데는 과거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중요한 전제와 가정이 있다.

그 첫 번째 가정은 한반도 방위에 필요한 핵심 전력을 미국이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육·해·공군이 모여 있는 충남 계룡대 워크숍에서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한국군의 취약한 부분은 미국이 보완해주기로 했다”며 미 지원 전력을 일컬어 ‘연계전력’(bridging capability)이라고 표현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수립된 ‘국방개혁 2020’에서 표방한 자주적 방위태세의 핵심인 한국군의 ‘눈과 귀’(징후경보수집), ‘신경과 혈관’(지휘통제능력), ‘펀치력’(정밀억제타격) 등 핵심 전력을 이번 계획에서는 후순위로 조정했다.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잠수함, 구축함, 한국형 전투기 등이 줄줄이 뒤로 밀렸다.

최소한의 자주적 방위력을 포기하고 대미 의존을 더더욱 강화시킨 이번 ‘국방개혁 기본계획’은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 대통령이 합의한 ‘확장 억지’ 개념과 잘 어울린다. ‘한반도 방위를 위해 핵우산은 물론 재래식 전력을 미국이 지원한다’는 이 개념이 한-미 미래 동맹비전에 포함된 것은 한국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드러난다. 도대체 미국이 무엇을 지원한다는 것인지 ‘연계전력’의 목록을 놓고 한-미 간에 논의한 적도 없고, 검증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러는 동안에 미국은 한국에서 아파치 공격용 헬기부대 2개 대대를 철수시켰고, 핵심 임무를 한국군에 이양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마련한 우리의 ‘주권을 관리하는 최소한의 장치들’이 두 차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인 ‘개념계획 5029’가 작전계획으로 구체화했다. 이 계획은 남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전제하고 미국이 주도해 유사시 북한을 봉쇄하는 계획으로, 주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번 ‘국방개혁 기본계획’에서는 급변사태 대비전력이라는 명분으로 지상전 장비가 새롭게 추가됐다. 주한미군의 입·출입도 우리의 통제를 벗어났다. 즉, 우리가 그토록 경계해왔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아무런 제한도 없이 마구 추진되는 중이다.

이러는 동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아왔던 군사정보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한국군의 부족한 탄약도 미국은 지원할 의사가 없음이 한-미 군수회의에서 명확해졌다. 그런데도 이번 ‘국방개혁 기본계획’에서는 ‘취약한 전력은 미국이 지원해주기로 했다’는 비현실적 가정이 부각됐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가 자주국방의 핵심 취지로 미국에 의존하는 핵심 전력을 자주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것과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됐다.

이상희 장관의 ‘이상한’ 변신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노무현·이명박 두 전·현직 대통령이 국방에서 정반대의 길을 추구하는 데 주역을 맡은 인물이 모두 이상희 국방장관이라는 사실이다. 이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합참의장으로 재직하면서 자주국방 노선에 입각한 ‘국방개혁 2020’을 입안한 핵심 인물이다. 지난 정부에서 그는 ‘국방개혁 2020’이 “퍼펙트(완벽)하다”며 자화자찬을 했는데, 이번에는 그 정반대로 대미 의존을 더 강화하는 국방계획을 수립했다. 두 명의 대통령을 각기 정반대의 논리로 보좌하는 장관의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두 번째 중요한 가정은 북한의 재래식 지상전 위협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합참 작전본부는 “북한군이 경보병 부대로 재편돼 특수전 위협이 대폭 증가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보고서를 이상희 장관에게 제출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합참은 국방부를 통해 청와대에 제출한 비밀 보고서에서 “현 국방예산 구조하에서 2020년이 되어도 북한과 대등한 전면적 수행 능력은 열세”라고 결론내렸다. 박정희 정권 출범 이래 자주국방을 시작한 지 50년 가까이 지난 시기, 우리가 북한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전력 투자를 하고서도 북한에 비해 열세라는 이 황당한 결론은 ‘국방개혁 기본계획’에서 재래식 지상전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지상전 위협 증가에 대해 미국 쪽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정보판단서(PIE)나 연합사령관의 미 상원 제출 보고서에서는 “북한은 전력의 노후화로 재래식 전면전 수행 능력을 상실하고 있고 지상전 위협은 감소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한-미 간 공동의 위협 인식은 동맹의 출발점인데, 이처럼 정반대로 이야기하면서 무슨 한-미 공조를 한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번 ‘국방개혁 기본계획’의 백미는 재래식 지상전 능력을 대폭 강화한다는 것이다. 다연장포(MLRS)에 29조원, 자주포에 11조원, 신형 전차에 약 3조원, 공격 헬기에 6조~7조원, 차륜형 장갑차에 2조~3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이는 지상전력 무기체계는 ‘국방개혁 2020’ 당시보다 더 앞당겨 도입하기로 계획이 조정됐다. 한마디로 지상군 페스티벌이다.

합참의 한 장군은 이번 계획에서 “국내 방위산업체 물량 유지”도 중요한 고려 항목이었다고 필자에게 말한 바 있다. 그 결과 굵직한 것만 따져봐도 삼성(자주포), 한화·풍산(다연장포), 두산(장갑차), 현대로템(전차), KAI(공격용 헬기) 등 굴지의 재벌급 방산기업에 50조원이 넘게 투입된다. 반면 기술력 위주의 중소 방위산업체들은 “현 정부 들어와서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한다. 친재벌 성향의 이명박 정부와 잘 어울리는 국방개혁안이라고 하겠다.

‘친재벌’ 이명박 정부에 어울리는 방안

종합해보면, 이번 국방개혁안에는 한반도 전장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관리하면서 미래를 설계해보겠다는 결의와 자신감이 없다. 오직 미국에 의존하면서 ‘육군 패권주의’를 지속시키는 논리와 주장들이 우리 군에 있던 최소한의 개혁성마저 잠식시키는 중이다. 그것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김종대 월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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