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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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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쇄신론 ‘3인 3색’

원희룡 - 원칙 없는 갈지자
정두언 - 권력투쟁 도구화
김성식 - 청와대 겨냥 역부족
등록 2009-06-19 15:21 수정 2020-05-03 04:25

한나라당 쇄신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쇄신특별위원회(이하 쇄신특위)까지 꾸려 등 돌린 민심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민심을 잡기는커녕 당 내부조차 혼란 속에 떨어졌다. 이유는 쇄신 논의를 주도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드러난다. ‘원조 소장파’ 원희룡 의원이 이끄는 당 쇄신특위,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이명박계 의원들, 그리고 김성식 의원이 공동 간사를 맡고 있는 개혁 성향 초선 그룹 ‘민본21’이 그들이다. 이들은 국정기조 쇄신과 조기 전당대회(전대) 개최 등 비슷해 보이는 쇄신안을 주장하고 있지만, 각각의 셈법은 달라 보인다.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장을 맡은 원희룡 의원이 6월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쇄신특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원 의원은 “쇄신위 활동 종료”까지 언급하며 박희태 대표의 사퇴를 압박했지만, ‘화합형 전당대회론’에 손을 들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장을 맡은 원희룡 의원이 6월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쇄신특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원 의원은 “쇄신위 활동 종료”까지 언급하며 박희태 대표의 사퇴를 압박했지만, ‘화합형 전당대회론’에 손을 들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쇄신특위 위원장을 맡은 원희룡 의원은 지금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 의원은 쇄신특위 위원장에 임명된 직후 “조기 전당대회든 어떤 정치 일정이든 백지 상태다. 안 그래도 불신과 피해 의식이 있는데 이를 해소시키지 않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급하게 추진한다면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원 의원의 “책임 있는 대안”은 갈지자였다.

양쪽 눈치만 보다 되레 말려들어

처음엔 원내대표 경선 연기 요구였다.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의 업무방식과 당-정-청 관계에 강도 높은 쇄신안을 낼 것이므로, 이를 전폭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새 원내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는 경선을 준비하던 안상수·정의화 의원부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른 의원들도 “원 의원이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임태희 의원을 원내대표로 세우려고 ‘시간 벌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결국 쇄신위는 경선 연기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지 나흘 만에 ‘없던 일’이라고 진화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자 쇄신특위는 6월1일과 2일 잇따라 박희태 대표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자신이 강조한 ‘선 쇄신, 후 전대’라는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한 쇄신위원은 “원 의원은 처음부터 조기 전대라는 결론을 들고 와 쇄신특위의 추인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민심 이반은 청와대의 일방적인 태도와 잘못된 국정운영 기조 때문인데, 왜 박희태 대표가 물러나야 하느냐고 문제제기를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 의원은 특위에서 대표 사퇴 논의를 하기 전인 5월29일 이미 박희태 대표를 찾아가 사퇴를 요구했다. 그의 관심이 청와대 쇄신보다 당 대표 교체에 더 기울어 있었다는 정황은 또 있다. 최근 쇄신위원직을 그만둔 이정현 의원은 “쇄신특위가 1~2일 요구했던 대통령 담화문 발표와 조각 수준의 인적 쇄신도 애초엔 들어가 있지 않았다. 내가 회의에서 몇 시간을 버텨 겨우 관철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맨 오른쪽)이 6월6일 권영세·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왼쪽부터) 등 ‘원조 소장파’와 함께 당 쇄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 의원은 “쇄신 논의 국면을 이용해 이명박계 내부 주도권을 되찾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맨 오른쪽)이 6월6일 권영세·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왼쪽부터) 등 ‘원조 소장파’와 함께 당 쇄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 의원은 “쇄신 논의 국면을 이용해 이명박계 내부 주도권을 되찾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6월2일 기자회견에서 원 의원은 “지도부가 (박희태 대표 사퇴 요구를) 받지 않을 경우에는 쇄신위 활동 종료가 불가피하다”고 한껏 날을 세웠다. 박희태 대표는 “대화합을 위해 직을 걸겠다”며 이 요구를 거부했다. 그런데 원 의원은 이를 ‘화합형 조기 전당대회’와 ‘조건부 사퇴론’으로 받아들이고 쇄신위 활동을 재개했다. ‘화합형 전대’는 ‘박근혜 대표 추대론’으로, ‘조건부 사퇴론’은 ‘6월 말 사퇴론’으로 확산됐다. 이에 박근혜계 의원들은 “가만히 있는 박근혜한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고 일제히 반발했다. 박희태 대표도 “제가 6월말까지 어떻게 한다는(거취를 결정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못박았다.

뒤늦게 원 의원은 “대통령의 변화가 쇄신의 핵심”이라며 과녁을 바꿨지만, 그는 “정치력도 전략도 없다” “양쪽 눈치만 보다 노회한 정치인한테 말려들었다” 등 냉혹한 평가만 받고 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원 의원의 의도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개혁적인 이미지가 부각되면 서울시장 출마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전당대회가 열리면 출마할 수도 있겠다는 것 아니었겠나. 그게 아니라면 사전에 박근혜 전 대표의 의사를 타진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계파 갈등 부추겼다는 비판 받아

쇄신파의 또 한 축인 수도권 이명박계 정두언 의원은 “이명박계 내부 권력투쟁의 장으로 쇄신 국면을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 의원은 한때 ‘좌두언 우형준(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으로 불릴 정도로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상왕’ 이상득 의원을 겨냥한 ‘55인 공천 파동’과 ‘권력 사유화’ 발언 이후 급속도로 영향력이 줄었다. “이제 정두언은 대통령 측근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득 의원이 공천을 주도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자 정 의원의 공간도 다시 열렸다. 재기 무대는 원내대표 선거였다. 이명박계 의원 다수가 같은 계파인 안상수 의원에게 ‘세모’를 그리던 상황에서 이상득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 쪽인 최경환 의원을 지원한다는 말이 퍼졌다. 정두언 의원은 “청와대 뜻”이라며 이명박계 의원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안상수 의원 쪽으로 표를 결집하려 했다. 결과는 안상수 의원의 압승이었다. 정두언 의원의 ‘정치적 복권’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6월2일 정 의원을 비롯한 이명박계 의원 7명은 기자회견을 열어 “현실적 지도부와 내용적 지도부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며 이상득 의원의 2선 후퇴론을 다시 들고 나왔다. 조기 전당대회 요구도 빠지지 않았다. 당 안팎에선 “이상득 의원의 뜻을 꺾고 안상수 원내대표를 세운 여세를 몰아 이참에 이상득 의원과 박희태 대표까지 갈아치우려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1년 가까이 숨죽여 지내던 정 의원이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박희태-홍준표-임태희 체제’를 밀어내고 ‘주류 교체’를 시도한다는 짙은 의심이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쇄신 국면에서 명시적으로 이상득 의원 문제를 거론한 건 정두언 의원 쪽이 처음이었다. 이 의원과 맞붙었다가 밀려난 정 의원으로선 쇄신 논의에 가담하는 게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려는 측면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오른쪽 두 번째)이 6월4일 당내 개혁 성향 그룹인 ‘민본21’ 의원들과 함께 당 쇄신 방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김 의원은 국정운영 기조에 초점을 맞춘 쇄신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뜻을 관철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오른쪽 두 번째)이 6월4일 당내 개혁 성향 그룹인 ‘민본21’ 의원들과 함께 당 쇄신 방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김 의원은 국정운영 기조에 초점을 맞춘 쇄신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뜻을 관철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뒤에선 이해관계 따라 줄서기 ‘회의론’

정 의원이 계파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난 6월7일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박희태 대표 사퇴를 반대하는 박근혜계는) 아예 당이 더 망가지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 그러고 나서 ‘땡처리’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 당도 생각지 않고 오로지 입지를 위해 권력투쟁에 골몰하는 인상을 주게 된다. 우리 요구가 관철이 안 되더라도 그런 점을 노출시킨 것만 해도 성과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본 박근혜계 이성헌 의원은 “마치 ‘친박’은 반쇄신 세력이요 자신들은 쇄신 세력이라는 엉뚱한 도식을 억지로 조작하려는 것”이라며 “한때 대통령 측근이라고 어깨에 힘주던 분들이 대통령 인기가 조금 떨어졌다고 쇄신의 주체를 자임하고 나선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맹비난했다. 박근혜계 이정현 의원도 쇄신특위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다 제지당하자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정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조차 “그런 말은 술자리에서 우리끼리나 하는 말이지, 어떻게 언론에 대놓고 할 수 있냐. 그게 정 의원의 정치 수준”이라고 혀를 찼다.

쇄신 논의를 촉발한 김성식 의원과 민본21은 이 난장판에서도 상황 인식과 해법이 그나마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쇄신특위 구성을 요구했던 5월4일 기자회견문은 △중도 실용의 국정기조 회복 △민생 본위 정책기조 수립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 방식 개선 △청와대 참모·내각 개편 및 정파 구별 없는 인재 기용 등 사태의 핵심을 조목조목 담고 있다. 6월1일 긴급 기자회견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께 시국에 대한 인식 전환과 국민에게 새롭게 다가서는 정치적 지도력을 보여줄 것을 건의한다”고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김 의원과 민본21은 6월17~18일께 자신들이 요구한 당·정·청 쇄신 방향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청와대와 당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들이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는 이유도 ‘화합’을 내세우는 다른 쇄신파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김 의원은 “국정과 당 쇄신을 하려면 먼저 현재의 ‘관리형 대표 체제’ 종식이 필요하다. 5공 땐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이후엔 공천이 당-청 관계를 좌우했다. 민주화 시대에 보수 정권이 들어섰다고 이를 다시 관계기관 대책회의로 되돌릴 수는 없지 않으냐”며 “수평적인 관계에서 당이 정부를 도울 땐 돕고 견제할 땐 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 첫발이 전당대회”라고 설명했다.

“이대론 고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희태 대표가 물러나지 않으면 정풍 운동까지 벌이겠다고 박 대표를 압박해놓고도 성과를 얻지 못한 채 “6월 말까지 지켜보겠다”고 한발 물러선 일을 놓고는 당 안에서 “소리만 요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켠에선 “지리멸렬한 지금의 쇄신 논의만 보더라도 김 의원과 민본21이 내세운 ‘초계파적인 정치개혁’은 말에 그칠 것이다. 민본21 소속 의원들조차도 살아 있는 권력과 미래 권력 아래로 갈라져 있거나, 제각각 한발씩 걸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 아니냐”는 회의론도 있다.

쇄신파들은 “박희태 대표에게 ‘화합형 전대’를 마련할 시간을 준 것일 뿐,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청와대와 내각 쇄신, 국정 운영기조 변화도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이들의 요구가 청와대는 물론 당 안에서라도 제대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중립 성향의 한 수도권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16대 국회의 ‘미래연대’, 17대 국회의 ‘새정치 수요모임’ 등 한나라당 쇄신파가 계속 실패했듯 ‘누구 물러가라’는 식으로는 일도 안 되고 갈등만 심해진다. 그런데 이미 당 공식기구인 쇄신특위부터 흔들리는 마당에 쇄신파가 얼마나 동력을 얻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고사’할 지도 모른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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