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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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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 무너진 미디어국민위

선진당 보수 인사 추천으로 11 대 9… 한나라-민주당 전투 모드 돌입
등록 2009-03-20 22:32 수정 2020-05-03 04:25
3월13일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첫 번째 전체회의를 열고 100일간의 장정에 돌입했다(왼쪽).

3월13일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첫 번째 전체회의를 열고 100일간의 장정에 돌입했다(왼쪽).

민주당 관계자는 조바심을 냈다. “자유선진당에서는 누구를 추천할 건지 결정했대?” 3월11일 국회에서 만난 이 관계자는 오히려 기자에게 물었다. 이날까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디어국민위)에서 활동할 야당 몫 10명의 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자유선진당에서 추천해야 할 인사만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가장 걱정되는 건 자유선진당에서 어떤 사람을 추천하느냐 하는 건데, 애초 김창수 의원 쪽에서 비교적 중도 성향의 인사들을 지도부에 올렸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지도부는 자꾸 퇴짜를 놓는다는 거야. 만약 선진당이 한나라당 주장에 가까운 인사를 추천하면 미디어국민위 구성이 11 대 9가 되잖아. 그렇게 되면 위원회에서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한나라당이 사사건건 표결하자고 나올 수도 있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 명단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 명단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자유선진당은 미디어국민위 출발 전부터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다. 상대 당이 추천하는 위원보다 ‘입심’과 ‘논리’에서 비교 우위에 있는 인사를 밀어넣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선수를 친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한나라당은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와 황근 선문대 교수,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변희재 실크로드CEO포럼 회장 등 ‘공격형’ 인사 6명을 먼저 내놓으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민주당 역시 3월11일 8명의 추천 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추천 위원의 면면을 살핀 뒤 김영 전 부산문화방송 사장 등 나머지 4명을 추가로 공개했다. 남은 것이 ‘선진과 창조의 모임’ 몫이었다. 창조한국당에서는 일찌감치 박경신 고려대 교수를 추천했지만, 자유선진당은 끝까지 추천 위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자유선진당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민주당에서는 ‘설마 자유선진당에서 보수 성향의 인사를 내놓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민주당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하루 뒤 자유선진당은 ‘선진과 창조의 모임’ 몫의 추천 위원 2명 가운데 나머지 1명으로 문재완 한국외대 법대 교수를 발표했다. 선진당에서 위원 추천을 담당한 사람은 당 미디어대책위원장인 김창수 의원이었다.

문재완 위원 “대기업·신문 참여 막는 건 규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출신인 김 의원은 언론계와의 협의 끝에 차재영·이승선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와 윤석년 광주대 교수(신문방송학), 한상혁 변호사 등을 지도부에 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한나라당의 언론 관련법에 반대하는 인물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언론계 관계자는 “자유선진당의 발표가 있기 하루 전까지만 해도 윤석년 교수가 유력했고, 윤 교수도 맡을 생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 이튿날 느닷없이 엉뚱한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문재완 교수는 문화방송 민영화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왔지만, 민영방송에 대한 대기업과 신문의 지분 참여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언론 관련법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열린 많은 토론회에서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의 견해를 더 많이 대변해왔다.

문 교수는 3월12일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방송에 대한 대기업과 신문의 지분 참여를 막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규제”라며 “과거에는 그런 규제가 일정 부분 필요했지만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당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조·중·동과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찬성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한 셈이다.

문 교수는 야당 몫의 나머지 위원 9명과 생각이 다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인정했다. “자유선진당이 다른 야당보다 한나라당 성향에 좀더 가깝다는 것은 사실이고, 당연히 자유선진당에서도 추천할 때 성향 등을 감안했겠죠. 또 반드시 (한나라당 언론 관련법에 대한 찬반 의견에 따라) 10 대 10으로 구성하는 것이 옳으냐 했을 때 (자유선진당이) 굳이 그걸 맞출 필요가 없다고 본 것 아니겠습니까.”

공동위원장을 맡은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사진 가운데)와 강상현 연세대 교수(사진 왼쪽)가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공동위원장을 맡은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사진 가운데)와 강상현 연세대 교수(사진 왼쪽)가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미디어위원회 구성이 11 대 9로 마무리되자 당장 언론계와 민주당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위원회 구성을 여야 동수로 하기로 했던 취지가 흐려졌다는 주장이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위원 추천은 각 당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여야 동수로 하기로 했지만 자유선진당이 지난 2월 투쟁 때부터 완전히 한나라당 쪽으로 쏠리면서 어려운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도 미디어국민위의 양적 균형이 깨짐에 따라 위원회 운영은 표결이 아니라 합의를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사무총장은 “문재완 교수 자체는 합리적 보수주의자이지만 결과적으로 11 대 9 구도가 만들어짐에 따라 미디어위원회의 운영에 대한 긴장감이 매우 높아졌다”고 말했다.

구성 단계부터 이미 치열한 수싸움을 벌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위원회 구성이 마무리되자마자 본격적으로 불을 뿜었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민주당 추천 위원 상당수가 2006년 위헌판결을 받은 ‘노무현 언론법’ 개정을 주도한 분들”이라며 “이해 당사자가 직접 위원회에 들어와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되면 논의가 제대로 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소속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우리야말로 언론 관련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위해 현업 종사자와 실무자 위주로 구성했는데, 한나라당은 이념형·전투형·비실무형으로 구성했다”며 “언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나라당 추천 위원 가운데 이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와 강길모 인터넷미디어협회(인미협) 회장, 변희재 실크로드CEO포럼 회장 등은 보수 언론단체인 ‘미디어발전국민연합’(미발련)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미발련은 지난해 촛불 정국 직후인 9월 말에 출범식을 가진 신생 단체다. 김우룡 한국외대 교수와 최홍재씨는 공정언론시민연대(공언련)에서 활동하고 있다. 류근일 전 논설위원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공언련 역시 미발연 출범식 하루 뒤에 창립된 신생 보수 언론단체다. 두 단체 모두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을 외곽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강길모·변희재 회장은 인미협에 함께 몸담았던 경험이 있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3월13일 공식 출범했지만 언론 관계법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 워낙 첨예해 앞날은 불투명하다. 2월27일 MB악법 규탄대회.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3월13일 공식 출범했지만 언론 관계법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 워낙 첨예해 앞날은 불투명하다. 2월27일 MB악법 규탄대회.

한나라당, 자문기구로 격하시켜

3월13일 첫 회의를 가진 미디어국민위의 활동 시한은 6월15일까지다. 미디어국민위는 그때까지 방송법과 신문법, 정보통신망법 등의 처리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국민위 면면만 놓고 보더라도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국민위 활동 시한 만료 전이라도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인식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미디어국민위 출범 이전부터 이를 자문기구로 격하했다. 특히 미디어국민위에서 언론 관련법 논의가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국회 문방위에서도 법안 처리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 한나라당 입장이다. 최홍재 공언련 사무처장은 “미디어국민위의 위상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며 “그 부분은 정치권의 몫이고 미디어국민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최대한 열심히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기왕 어렵게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한 만큼 여기서 수렴하는 여론을 법안 처리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려면 4월 임시국회에서는 언론 관련법 논의를 진행하기 어렵게 된다. 한나라당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당 문방위 관계자는 “결국 누가 먼저 (미디어국민위를) 뛰쳐나가느냐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급하거나 쫓기는 쪽이 먼저 미디어국민위를 깨고 나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에 따른 부담은 먼저 뛰쳐나간 쪽이 질 수밖에 없다.

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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