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 한겨레 김종수 기자
“이명박 정부는 국토를 재창조하고 전국에 물길을 살리고 하천·지천을 살아 있는 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현대판 치산치수를 해야 합니다. 나는 그 이름이 운하든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창출해내야 하고 국운 융성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운하 전도사’의 정치적 영향력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8월1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일부다. 이 전 의원은 ‘국가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동력’과 ‘국운 융성의 계기’ 부분을 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촛불집회의 열기에 밀려 사실상 중단을 선언한 사업이다.
미국에 체류 중인 이 전 의원이 대운하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운을 떼자 논란은 국내로 확산됐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9월2일 “여건이 조성되면 대운하를 다시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고, 이틀 뒤에는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이 “논란이 있다고 대운하 국가 프로젝트 공약이 완전히 폐기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시기와 여건을 봐서 필요하다면 국민 검증 과정과 공론화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해진 의원 등 10여 명의 친이계 의원들이 9월1일 모임을 갖고 대운하 재추진 및 공론화 문제를 논의했던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던 대운하 공약이 반대 여론에 밀려 유야무야될 위기에 처하자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 전 의원이 미국에서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이다. 이 전 의원이 피운 불씨는 국내에서 폭풍이 됐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방증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마다 이재오 전 의원의 조기귀국설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와대로서는 이 전 의원 특유의 돌파력과 정치적 기획력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자유롭게 대권 밑그림 그리기하지만 당장 이 전 의원이 국내로 유턴할 가능성은 낮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정치대학원(SAIS) 연구원 자격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한 이 전 의원은 최근 객원교수로 신분이 바뀌었다. 동시에 9월5일 시작되는 가을 학기에 한국현대정치 강의를 맡았다. 일회성 강연이 아니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매주 금요일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2시간씩 진행하는 정식 수업이다. 따라서 학기가 끝나는 12월까지는 이 전 의원이 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이 전 의원의 측근도 “국내 언론에는 조기귀국설이 계속 보도되고 있지만 일단 학점이 주어지는 정식 수업을 맡았기 때문에 적어도 12월까지는 귀국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전 의원의 정치적 행보는 당분간 홈페이지를 통해 올리는 글이나 미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 등의 형식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한나라당 안팎의 ‘안티 이재오’ 세력을 생각하면 ‘원격 정치’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논란에서 한 걸음 벗어난 채 자유롭게 대권을 향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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