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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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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이러다간 피를 보겠다

등록 2008-08-12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검거 포상계획·색소 물대포·자의적 연행… 집시법 개악되고 경찰기동대까지 나서면 어떻게 될까</font>

▣ 박진 한겨레21인권위원·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1991년이었다. 어느 집회였는지 기억할 수는 없다. 선배 손에 이끌려 찾아간 어느 집회였겠지. 최루탄과 화염병의 공방이 한동안 이어진 다음이었을 거다. 전경들 사이를 가르고 하얀 운동화와 하얀 파이버를 착용한 날렵한 무리들이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고, 시위 대열은 한순간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선배는 당황한 내 손을 꼭 잡고 대열이 뛰는 방향의 옆길로 비켜섰다. 아마 시민으로 가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은 마치 먹잇감을 포획하는 독수리처럼 보였다. 매캐한 최루탄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고, 같은 학과 남자 동기가 그들에게 뒷덜미가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더욱 숨이 찼다. ‘백골단’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선명한 기억이다. 남자 동기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까지 몇 달을 강의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시민단체는 놔두고 학생은 연행?

경찰인권침해감시단 일원으로 참여한 8월5일 촛불집회에서 경찰은 마치 91년 그때처럼, 병아리를 포획하는 육식동물과 같았다. 이날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방한한 날이었고, 경찰의 진압 태도는 검거가 주된 목표 같았다. 거리를 두고 걷던 경찰들이 갑작스레 한 명씩 시위대를 낚아챌 때마다, 혹시 검거에 대한 포상이 있는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100일 가까운 촛불집회 동안 이런 식의 진압은 생경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이 이야기했다. “불구속 연행자는 2만원, 구속 연행자는 5만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경찰이 막 나간다고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생각했다. 저들의 말마따나 ‘괴담’이 또 퍼지는 것이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경찰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5월 이후 이미 시위대를 검거한 경찰관에게 1건당 2만원(불구속·즉심) 또는 5만원(구속)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이 뒤늦게 이를 보도하자, 검거 건수별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대신 ‘검거유공 마일리지’를 부여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표창 및 상품권 등의 부상을 제공하기로 방침을 수정했다고 했다. 결국 경찰은 시위 참가자를 검거한 경찰관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마일리지를 부여하고 상품권을 제공하는 등 여전히 ‘검거유공자 포상계획’을 유지하겠다는 태도인 것이다. 다시 ‘시위대를 사냥감으로 보는 것이냐’는 비판여론에 직면하자, 경찰은 “검거유공자에 대한 포상계획을 전면 수정하겠다”면서 “불법폭력시위사범 검거유공자에 대한 포상은 하반기 민생침해사범 검거유공자와 균형을 맞춰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포상계획은 유효하다.

8월5일 집회에서는 경찰이 미리 발표한 대로 검거를 목적으로 한 색소 섞인 물대포가 사용됐다. 어떤 성분이 섞인 물질인지 분석해보기 위해서 액체를 용기에 담으려고 몸을 숙였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붉은 물대포를 뒤집어써버렸다. 흰색 바지에 물든 붉은 색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얼굴에 묻은, 손에 묻은 붉은 색소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말끔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속옷까지 묻어나는 붉은 색소는 마치 ‘불법 인간’이 된 것이냐고 되묻기라도 하는 듯한 선연한 낙인이다. 물론 경찰은 현장에서 색소가 묻은 시위대를 10여 명 검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형광물질을 섞은 최루액을 쏘아 검거에 이용했던 10년 전이 떠올랐다. 분명 경찰은 빠른 속도로 민주주의 역사를 회귀시키고 있다.

요란한 부시 방한 반대 집회 검거작전 하루 전, 경기 수원에 위치한 한나라당 경기도당 앞에서는 37명 가량의 학생들이 기자회견 도중 전원 연행됐다. 기자회견이 불법집회로 변질되었다는 것이 경찰의 해명이었지만, 수없이 해왔던 한나라당 앞 기자회견과 그날의 기자회견은 다르지 않았다. 세 차례의 경고방송은 형식적이었고 마지막 경고방송은 기자회견이 시작된 지 5분의 시간도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집시법에는 불법집회라 하더라도, 해산 명령을 참석자들이 인지할 수 있는 시간 간격을 두고 3차례 경고방송을 한 뒤 해산시키도록 되어 있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받지 못했다는 학생들의 항의도 이어졌다. 설령 기자회견이 아니라 불법집회였다고 하더라고 체포의 구성요건은 미비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권력 남용은 다음날도 이어졌다. 학생들을 집단적으로 표적 연행한 것에 대한 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 규탄 기자회견을 전날의 집회 해산을 지휘한 수원 중부경찰서 앞에서 진행하겠다고 밝히자 경찰은 자신들이 관할하는 지역의 대학과 사회단체에 전화를 했다. “오늘도 연행방침이니까 몸조심해라”라는 조언에서부터 “기자회견하면 무조건 연행이니까 그런 줄 알아라”라는 협박까지.

복면 착용 금지, 채증 허용…

기자회견을 위해 찾아간 수원 중부경찰서 앞에는 연행에 대비한 호송차와 여경, 전의경 들이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구호를 외치자 경비과장은 메가폰을 잡고, 불법집회에 대한 해산명령을 한 차례 했다. 그러나 이날의 기자회견에는 종교계 대표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0여 명 참여해 전날의 학생들처럼 만만히 보기 어려웠다고 판단했는지 별다른 마찰 없이 기자회견이 끝났다. 이것이 바로 경찰의 고무줄 법집행이다. 학생들의 기자회견과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은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기자회견 뒤 면담 자리에서 만난 수원 중부경찰서 수사과장 등은 앞으로 기자회견에도 엄정한 법집행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법집회로 변질되었다는 판단근거가 무엇이냐고 묻자, “구호를 외치거나 집단적으로 정치적 표현을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옥외에서 이뤄지는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지 않은 경우가 있었던가? 기자회견의 성격 자체가 집단적인 정치적 의사표현 행위인데, 그동안은 왜 엄격히 법집행하지 않았는지 질문했지만 경찰은 답하지 못했다. 정황상 판단해서 연행하고 최종적인 법률 판단은 법원에 맡기겠다는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정황상 판단한다’는 것은 결국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처럼 탄압해도 상대적으로 비판여론을 비켜갈 수 있는 집단과 종교계·시민단체처럼 상대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집단을 따로 분리해 판단하겠다는 것 아닌가. 한마디로 차별적 판단이다. 이것은 결국 한나라당이나 보수기독교인들처럼 정권에 우호적인 집단에 대한 관용과 정권에 반대하는 집단에 대한 무관용으로 드러날 것이다. 경찰은 지금도 자의적 기준으로 권력을 남용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러한 방침을 더욱 강화할 기세다. 검거와 연행, 체포의 대상인 집단에 대해 분류기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누가 그런 차별적인 고무줄 잣대를 경찰에게 줬는가.

또한 경찰은 집시법에 근거한 법집행을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법을 바꾸어야지 자신들을 탓하지 말라고 말해왔다. 현행 집시법은 일몰 이후 야간이나 시내 대부분의 주요 도로에서 집회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집회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는 헌법 원칙을 저버렸다고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법을 바꾸라는 게 경찰의 진심일까. 경찰은 오히려 ‘마스크 등 복면 착용시 처벌, 불법폭력 시위도구 소지시 처벌, 소음기준 대폭 강화’를 뼈대로 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지난해 2월 자유주의연대 등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이 청원해, 같은해 7월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던 법안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청원한 단체들은 소개 의견에서 “벌금형 상한액의 대폭 인상과 폴리스 라인 침범시 처벌조항 강화, 시위자의 신원을 감추는 복면이나 마스크 착용 금지, 경찰관의 채증촬영 허용 등 폭력집회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현행 집시법이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마음먹고 통과 못 시킬 법안이 있겠는가. 한나라당과 보수단체, 경찰까지 가세해 개악된 집시법 개정안이 날치기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모범생인 ‘엄마 친구의 아들’도 지키기 어렵다는 집시법. 앞으로 어떻게 개악될지, 그 법을 등지고 경찰의 폭력이 얼마나 더 날이 설지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한국 시위가 정말 폭력적인가

정부가 좋아하는 선진 유럽의 집회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폭력적이다. 시위는 대부분 폭동으로 변화하는데, 인근 상가에 대한 약탈과 도로변에 주차한 차량에 대한 방화 등으로 이어진다. 집단행동을 막는 경찰차량에 대한 방화도 아니고 그저 주변에 있는 차량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무산자들의 분노의 폭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판단의 시시비비는 논외로 놓더라도, 어쨌든 우리나라의 시위는 그야말로 양반이라는 말이다. 100일 가까이 국민 수백만 명이 반정부 시위를 하루도 빼지 않고 벌이면서도, 방화나 약탈과 같은 폭력을 목도한 사람이 있었나. 경찰차를 밧줄에 묶어 흔들고 경찰 차량을 파손하는 정도의 폭력이었다. 이것을 시위 참여 시민의 손가락을 베어 무는, 힘없는 여대생의 머리를 짓밟는, 기자와 국회의원을 가리지 않고 방패와 곤봉으로 가격하는 경찰의 폭력과 비교할 수 있는가. 기껏 도로를 점거하고 뛰어다니면서 노래와 구호를 외치는 비무장 시민들을 포획해서 검거 포상금을 챙기는 경찰의 권력에 비교하겠는가. 마구잡이 연행의 후폭풍은 또한 얼마나 큰가. 몇 십 만, 몇 백 만원의 벌금에서 크게는 구속까지…. 지금까지 촛불시위로 연행된 1천여 명의 시민들은 이 나라의 공권력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는 중이다.

이제 ‘백골단’의 추억을 피할 수 없는, 중무장한 경찰기동대가 집회 때마다 나타날 것이다. 이들이 얼마나, 어떻게 인권기준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지 경찰청에 질의를 해놓았지만, 지금까지 경찰의 태도를 봐서 설사 교육을 받는다 하더라도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싶다. 오랫동안 거리에서 살았던 선배는 “분명 올해 안에 경찰기동대가 손에 쇠파이프를 들고 시위대 진압에 나설 것이다. 내 말이 틀린지 보라”고 경고했다. 이 말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불길한 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백골단 진압으로 상징되는 지난 시대에 죽어간 이한열, 강경대, 김귀정…. 백골단이 나오지도 않았던 거리에서 죽어간 홍덕표, 전용철, 하중근….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그렇게 엄숙한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경찰이 흩뿌린 붉은색의 물대포를 보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피를 보게 되겠다는 섬뜩함에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경찰기동대 창설식에서 보여준 시위진압 장면, 시위대를 연기한 경찰관의 목에 걸린 빨간 스카프. 경찰이 치안을 위해 자기 자리로 돌아갈 날은 이명박 정부 5년 내 없는 것일까. 치안 부재로 죽어간 ‘화성의 추억’.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소녀들의 울음소리마저 들리는 여름, 대한민국은 지금 호러무비를 찍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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