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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와 총선] ‘MB 빼기 마케팅’이 뜬다

등록 2008-03-28 00:00 수정 2020-05-03 04:25

명함·현수막에서 ‘MB’ 지우는 ‘리틀MB’ ‘이명박의 동반자’들…텃밭 영남보다 수도권 출마자의 ‘피해’가 커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안녕하세요. 일하는 국회의원 후보 박명환입니다.”

3월19일 오후 서울 자양동 골목시장이 소란스러워졌다. 4월9일 총선에서 한나라당 서울 광진을 후보로 나서게 될 박명환 ‘MB(이명박)연대’ 대표가 나타난 것이다.

시장 공기는 따뜻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크게 허리를 숙이고 명함을 돌리는데도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무표정하게나마 명함을 건네받는 사람은 나은 축에 속했다. 주겠다는 명함을 굳이 무시한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많았다. 박 대표가 입은 파란색 한나라당 점퍼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MB가 시장 방문해 힘 실어줬건만…

귀금속 매장을 운영하는 박상철씨가 박 대표를 불렀다. “여기는 ‘추미애파’가 60%를 넘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될 겁니다.” 박씨는 시장 상인 가운데 박 대표에게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낸 사람이었다. “많이 뛰어야 할 것”이라는 박씨의 격려에 박 대표의 허리가 더욱 깊게 꺾였다.

시장을 한 바퀴 돈 뒤 자신의 승합차에 올라탄 박 대표의 표정이 어두웠다. “한 대 피울까요.” 답답한 듯 이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제가 여기(광진을)에 온 것이 2월1일이니까 이제 50일 정도 됐죠. 사실 오자마자 이 지역 현역 국회의원인 김형주 통합민주당 의원은 물론 추미애 전 의원과도 1 대 1 가상 대결을 해봤는데요, 그때는 제가 크게 이기는 걸로 나왔습니다.”

3월17일 발표된 -SBS 여론조사 결과는 달랐다. 추 전 의원은 45.1%를 기록한 반면, 박 대표는 25.8%에 그쳤다.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도 평균은 46.6%였다. 조사 결과에 대해 그는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박명환 대표는 2006년 10월 MB연대를 조직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원했다. 다른 ‘MB맨’들과 달리 박 대표는 서울시나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직책을 맡지 않았다. 그가 내세울 만한 유일한 경력은 오직 이 대통령과의 인연, 즉 ‘MB연대 대표’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화답이라도 하듯, 3월8일 취임 뒤 첫 민생 현장 방문지로 박 대표가 출마하는 지역에 있는 자양동 골목시장을 택했다. 얼굴만 비치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물건도 직접 사고 점심으로 순댓국까지 한 그릇 비우고 갔다.

이 대통령이 다녀간 뒤 박 대표 쪽은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이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자양동을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박 대표는 추미애 전 의원에게 20% 가까이 뒤진다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박명환 대표는 최근 명함을 바꿨다. 그전까지 쓰던 명함에는 ‘새로운 출발, 이명박 박명환과 함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바뀐 명함에는 대신 ‘4월9일 광진이 확 바뀝니다’라고 새겼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상임자문위원이라는 직함도 없앴다. 박 대표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MB’ ‘이명박’ 등의 문구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어느 순간 ‘이명박’이 사라진 것이다.

“더 떨어질 것 같은데요.” 예전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가 높지 않다고 말하자 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 엷은 웃음이 감돌았다. 웃음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독선적 이미지 + MB와 가까운 사람

다음날 오전 이번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서울 은평을로 향했다. 이 지역은 한나라당의 최고 실세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오른팔로 통하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내리 3선을 한 곳이다. 이재오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최근 여론조사 결과였다. 사실일까.

“이명박이 하는 걸 보니까, 견제세력이 있어야겠더라고. 자기 주장대로 할 것 같아. 그거 대운하인지 뭔지 다들 부적절하다고 그러는데 밀어붙이는 거 봐. 영어 몰입 교육 그거도 그렇지. 손자들과 대화할 때 영어로 욕해버릴지 누가 알아. 우린 (영어를) 모르잖아. 다 사교육으로 흘러가게 돼 있어. 없는 사람만 더 어려워지는 거지.”

불광동 연서시장에서 유아용품을 팔고 있는 이명숙(56·여)씨는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자 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이씨는 ‘견제세력’과 ‘대운하’, 그리고 ‘영어 몰입 교육’이란 단어에 힘을 주었다. 불광2동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이씨는 지난 2004년 총선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찍었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이 대통령에게 기대를 실은 한 표를 던졌다. 이번에는 마음을 바꿨다. 그는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를 찍겠다고 했다. “(대선에서) 이명박 찍은 게 잘한 건지 모르겠어.” 이씨의 푸념이었다.

연신내역에서 만난 회사원 이기봉(29)씨도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문국현 대표를 찍을 가능성이 80%라고 말했다. 우선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한나라당에서 보여준 독선적 이미지가 호감도를 떨어뜨린 요인이었다.

“원래 이재오씨를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열심히 하고 부지런하잖아요. 그런데 최고위원 하면서 독선적인 이미지를 많이 보여줬어요. 부모님도 저번에는 이씨를 찍었는데 요즘 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도 안 찍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역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 탓이었다. 이씨는 “대운하를 하려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하는데 반대 여론은 듣지 않는 것 같다”며 “아무래도 MB와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씨도 같은 부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남 삼천포가 고향인 박아무개(60)씨는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박씨 역시 지난 2000년과 2004년 총선에서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에게, 지난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의 불만은 이 전 최고위원이 이방호 사무총장과 함께 한나라당 공천을 쥐락펴락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이재오가 이번에는 너무 지나쳤다”며 “공천을 이렇게 해서는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덕 보기 어렵다”

같은 시각, 당사자인 이 전 최고위원은 서울시당 공천자대회에서 선거전략을 강의했다. 여기에서 그는 “대선 직후에는 여당과 야당 지지도가 차이나게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덕 보기 어렵다”며 “한나라당의 기득권은 없고, 이 대통령의 지지율도 40%대”라고 강조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이 대통령은 인수위 단계부터 영어 몰입 교육 정책 등으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강부자’(강남 땅부자)로 요약되는 이 대통령의 편향적 인사 스타일은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이 대통령의 인기는 뚝뚝 떨어졌고, 이는 이 대통령의 직계로 불리는 ‘MB맨’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특히 한나라당의 텃밭 영남이 아닌 수도권에 출사표를 낸 MB맨들의 피해가 심각했다.

수도권 출마가 확정된 MB맨은 서울의 강승규(마포갑)·강용석(마포을)·권영진(노원을)·권택기(광진갑)·박명환(광진을)·정태근(성북갑)·김효재(성북을)·진성호(중랑을) 후보와 김해수(인천 계양갑)·김영우(경기 포천·연천)·백성운(경기 일산동) 후보 등 20명 안팎이다.

3월17일 -SBS의 주요 지역 여론조사 결과, 서울 17개 관심 지역 가운데 상대 후보를 앞서고 있는 MB맨은 권영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유일했다. 나머지 강승규·박명환·진성호·신지호(도봉갑)·이범래(구로갑) 후보는 고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청 등 국회 외곽에서 이 대통령을 돕다 이번 총선을 통해 원내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이들 원외 측근의 공통점은 현역 국회의원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대신 ‘이명박 효과’를 기대했다. 대선에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것으로 낮은 인지도를 상쇄시키겠다는 계산이었다.

실제로 대선이 끝난 뒤 총선 공천을 노리고 쏟아져나온 직계, 방계 MB맨들은 너도나도 이명박 마케팅에 매달렸다. 예비후보자 홍보물과 명함, 홍보용 현수막 등 여기저기에 ‘이명박’ ‘MB’라는 단어를 갖다붙였다. 가장 흔한 경우가 출마 지역 뒤에 MB를 붙여 ‘○○MB’라고 자신을 각인시키는 식이었다. ‘리틀MB’ ‘슈퍼MB맨’ 등의 신조어도 등장한 바 있다.

서울 마포갑에 공천을 신청했다 탈락한 김우석 한나라당 디지털정당위원장은 최근까지 서울 공덕오거리에 ‘MB와 함께 마포를 확 바꾸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비서실 부실장을 지냈던 김해수 인천 계양갑 당협위원장은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의 성공 DNA를 전파하겠다”는 표현까지 썼다. 이 밖에도 ‘이명박이 인정한 정책 일꾼’ ‘이명박의 동반자’ 등의 표현을 홍보물에 활용한 후보도 있었다.

서울시 홍보기획관 출신의 강승규 전 인수위 부대변인(마포갑) 역시 얼마 전까지 ‘마포MB’를 핵심 이미지로 강조했다. 홍보 현수막에도 ‘마포MB’라는 문패가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강 전 부대변인은 3월 중순 선거사무소를 옮기며 현수막을 교체했다. 바뀐 현수막에는 ‘마포MB’라는 표현이 없었다.

이 대통령의 추락하는 인기를 반영하듯, 총선용 홈페이지에 더 이상 이명박, 혹은 MB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MB맨이 늘었다. 권영진·김효재·김성식·백성운 후보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암시하는 어떤 문구도 없다. 여전히 홈페이지를 통해 ‘슈퍼MB맨’이라고 주장하는 진성호 전 인수위 전문위원이 고집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총선용 홈페이지에서도 사라져

백성운 전 인수위 행정실장은 “지금까지는 크게 낮은 인지도가 여론조사에서 불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며 “앞으로 교육과 교통 대책 등 일산의 숙원사업을 해결할 적임자는 바로 백성운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백 전 실장은 과의 통화에서도 이 대통령과의 인연과 그의 측근이란 사실을 굳이 강조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이명박 프리미엄’이나 ‘이명박 마케팅’이란 말은 벌써 철 지난 표현이 돼버렸다. MB맨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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