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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당 소용없다 모르는 게 편하다”

등록 2008-02-22 00:00 수정 2020-05-03 04:25

통합민주당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 “비례대표도 공심위에서, 요청·청탁 상관없이 원칙대로”

▣ 진행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 정리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인터뷰 요청을 받은 통합민주당의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공심위원장)은 처음에는 망설이는 듯했다. ‘하겠다’는 대답이 나온 것은 사흘 만이었다.

2월14일, 막상 서울 군자동 세종대학교 이사장실에서 만난 박 위원장은 거침이 없었다(2003년에서 2005년까지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회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8월부터 1년 임기로 세종대 임시이사장을 맡고 있다).

인터뷰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자칫하다간 모두가 잊혀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2주간 공심위원장으로 보고 들은 결과로 느낀 위기감을 숨기지 않았다. 박 위원장은 “지난주에 들은 이야기”라고 한 자락을 깔더니 “당시에는 부산, 경남 지역 전체의 공천 희망자가 각각 1명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눈에 보기에는 검박하게 노년을 맞은 점잖은 신사지만, 속에는 굳디굳은 강단이 가득하다는 평을 듣는 박 위원장이다. 지난해에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의 공동 추천으로 삼성특검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지만, 보수색 짙은 대한변협에서 회장에 선출될 만큼 두루 아우르는 정치력도 가지고 있다. 대한변협 회장으로 일하면서도 본인의 색깔을 잃은 적은 없었다. 지난 2003년 8월12일 당연직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던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에서는 “대법원장이 기존 관행대로 대법관을 제청하려는데 더 이상 참여해서 뭐하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법조계에서 ‘대법관 제청 파문’이라고 불리는 이 일은 판사 144명의 항의 서명으로 이어져 최종영 대법원장을 퇴진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공천 과정에서도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영향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국민들의 뜻과 당선 가능성만을 따져 공천을 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는 개혁 공천을 위해 비례대표 공천도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에서 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손학규 대표에게 직접 전한 바도 있다고 했다. 손 대표는 당시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고 한다. 통합민주당 내에서 비례대표 공천은 공심위가 아닌 별도 기구에서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박 위원장의 이런 ‘비타협적’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것을 공천의 첫 번째 기준으로 내세웠다.

오른쪽으로 너무 가면 이도저도 안 된다

통합민주당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손학규 대표는 새로운 진보를 말하고 있다. 통합민주당이 내세워야 할 정체성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전통적으로 이쪽에서는 민주개혁 세력이라는 맥이 이어져왔다. 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천 대상자들은 심층 인터뷰를 통해서 검증할 생각이다. 먼저 정치를 하려면 민주주의가 뭔지 알아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회의원이 가진 각종 헌법상의 권한이 국민에게서 나오고, 권력이란 국민이 잠깐 쓰라고 주는 것이다. 그 원리를 알아야 한다.

새로운 진보를 주장하는 손 대표는 속되게 표현하면 ‘우로 한 클릭’ 이동한 중도주의 노선을 강화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오른쪽으로) 너무 많이 가면 우왕좌왕이 된다. 너무 그쪽으로 가서 정체성 혼란이 오면 오히려 손해보지 않을까 싶다. 그간의 오랜 세월 이쪽이 지닌 정체성은 유지돼야 한다. 너무 가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

한나라당은 정치자금 수수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이들은 공천을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정했다. 통합민주당 후보들에겐 그보다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될 것이다. 공천이 불가능한 후보를 정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한나라당이 그런 기준을 정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러나 옆 당에서 정했다고 해서 무조건 그보다 엄격하게 하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옆 당이 어떻게 하든 간에 국민의 뜻이 뭔지를 살펴보고, 그 개인의 역정도 살펴보고 결정해야 한다. 지금 당 사정도 막 통합이 되어 당 구조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내 지위 역시 법적으로는 통합민주당 전체의 공심위원장이 아직 아니다.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한다.

배제 원칙을 밝히기 곤란하다면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는 원칙을 말해달라.

=결국 국민의 뜻이다. 그러나 꼭 얼굴이 새로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후보)이 가진 내실이 어떤가를 중시해야 한다. 먼저 지역에서의 여론조사도 해야겠지만, 당에서 나온 평가자료도 보고, 공심위원들이 인터뷰도 해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민주주의에 대해 뭐라고 알고 있는지, 우리 국가의 장래에 대한 비전은 뭔지를 확인해야 한다.

공심위에 시민심사위원회도 구성해 포함시키겠다고 했는데, 그 구상을 밝혀달라.

=내가 심사위원단을 다양성 있게 구성하려고 애썼지만, 인원수(7명) 때문에 다양성을 충분히 담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부족한 측면의 의견을 듣자고 해서 시민심사위원회를 만들자고 했다. 열 분 정도 선임해서 의견을 들을 예정인데 주부, 자영업자, 대학생 등을 넣어서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각개로 싸워서 생존해야지

한나라당의 경우는 공천 경쟁률이 4.8 대 1에 이를 정도인데, 민주당의 경쟁률은 얼마나 될 것으로 예상하나.

=전국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광주·전남에서 출마하겠다는 분들은 꽤 많다. 하지만 부산·경남·대구 쪽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전국적으로는 높지 않을 것으로 본다.

공천 과정에서 ‘감동’이 필요하다는 말을 당 안팎에서 한다.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일으켜야 국민들이 신당에 다시 눈길을 주게 될 것으로 보는가.

=미리 수치를 정해놓고 50%를 바꾸겠다, 60%를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부적합하다. 국민들이 이쪽 세력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도록 공감할 수 있는 공천을 하겠다.

당내에서는 그 때문에 주목받는 분들이 있다. 선거법이나 불법자금 문제로 형을 선고받았던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굿머니’ 사건에 연류됐던 신계륜 총선기획단장 등 이른바 ‘사면복권 대상자’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런 문제들에 대해 국민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공심위가 정식으로 발족되면, 심도 있게 논의해서 기조를 정하겠다.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들이 자신의 희망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요청이나 청탁 등을 어떻게 할 예정인가.

=그런 요청이 들어온다고 해도 내가 들어준다고 어떻게 이야기를 하겠나. 일체 상관없이 원칙대로 할 것이다.

당내에는 이른바 ‘트로이카’가 있다.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대선 후보, 그리고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다. 이들의 거취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공심위 권한으로 이들의 거취를 정해줄 의사는 없나.

=공심위에서 토론을 거쳐 판단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이들이 당의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으니, 국민 여론도 중요하지만 지도부의 의견도 중요할 것으로 본다. 그런 종합적인 판단 근거를 가지고 판단할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누구도 공심위 심사 대상이 안 되는 사람은 없다. 소신을 가지고 우리 방향이 정해지면 (지역구로 갈지, 비례대표로 할지) 권고를 할 것이다.

당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비례대표 진용이다. 손학규 대표가 직접 비례대표 선정을 챙기겠다는 말이 나오던데, 이에 대한 견해를 말해달라.

=손학규 대표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비례대표도 원칙적으로 공심위에서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답을 했다. 앞으로 통합민주당의 당헌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두고봐야 한다.

손학규 대표에게 직접 그런 뜻을 밝히신 건가?

=그렇다. 직접 만나서 했다. 손학규 대표는 내 말에 분명한 답변은 하지 않더라. 그런 모습으로 봤을 때 본인이 직접 챙기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거대 한나라당의 출현을 막기 위해 통합민주당이 자유선진당이나 포괄적으로는 민주노동당과 연합공천 또는 전략공천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각개로 싸워서 생존해야지, 벌써부터 그렇게 하면 여간 혼란스럽게 되지 않을 것이다.

누가 통합신당인지 민주당인지 모른다

에서 여론조사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부분이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200석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그런 의견에 동의하나?

=지금 솔직히 굉장히 위험스럽게 본다. 대선 결과처럼 일방적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멸은 아니더라도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이 대목에서 그는 굉장히 염려스런 얼굴이었다).

옛 민주당 쪽에서 지분 안배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나한테는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으로선 어떤 사람이 통합신당 출신인지 민주당 출신인지 전혀 모른다. 생소한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이름도 잘 모른다. 그렇게 모르는 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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