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전 대표… “보수경쟁 체제라야 보수자정 가능해”
▣ 진행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정리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조갑제 전 대표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보수 논객’이란 표현은 그 가운데서 가장 점잖은 쪽에 속한다. 일부에서는 그를 ‘극우주의자’ 혹은 ‘수구 꼴통’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작 조 전 대표는 자신을 수구나 극우 인사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극우란 폭력적이거나 탈법적인 방법으로 국수주의적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자신은 헌법과 법치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면서 사실에 기초한 논리를 전개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조 전 대표에 대한 평가가 보수와 극우로 갈리는 부분은 주로 대북관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를 ‘친북좌파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남적화전략 지침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다. 그와 진보진영 사이에는 여전히 화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는 것이다.
반면 조 전 대표는 지난해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보수세력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법치주의의 원칙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BBK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일자 누구보다 맹렬하게 이 당선자를 비판했고, 이 당선자에게 면죄부를 준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강하게 질타했다.
이 조갑제 전 대표를 만났다. 다가올 4월9일의 총선 전망과 이명박 당선자의 최근 행보가 주제였다. 그는 진보진영을 가리킬 때, 반드시 그 앞에 ‘소위’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올해 63살인 이 보수진영의 ‘이데올로그’는 낮고 느리지만 분명한 어조로 인터뷰에 응했다.
200석은 어렵지 않겠나
4월9일 총선이 어떤 구도로 전개되리라 보나.
=한나라당 압승 구도 속에서 일부 변수가 있으리라 본다. 좌파세력은 퇴조하는 분위기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에서 소위 평등파와 소위 자주파가 갈등을 빚으면서 반북좌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구 열린당(대통합민주신당)에서도 손학규 대표가 상대적으로 탈좌파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도 이명박 당선 이전의 한나라당보다는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전보다는 보수층을 많이 의식하는 것 같다.
한나라당 압승이라면 어느 정도의 의석을 말하나.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200석 시대’를 예견하기도 하는데.
=200석은 사실 어렵다고 본다. 다만 ‘대통령을 뽑았으니까 일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대중의 요구가 강한 것 같다. 2006년 지방선거를 분수령으로 탈좌파 실용화 흐름과 보수 결집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대세가 당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할 것으로 본다. 한나라당 과반수, 자유선진당 교섭단체, 그리고 좌파 운동권 출신의 퇴조 등 세 가지 현상이 대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200석을 넘긴다면.
=200석이라면 3분의 2가 넘는 개헌선이라는 건데, 꼭 개헌을 하겠다면 200석을 얻어야겠지만, 개헌의 이유가 없는데 쓸데없이 너무 많은 의석을 얻으면 부작용이 더 많다고 본다. 당이 너무 비대화해서 무사안일하게 된다든지, 오만해진다든지 해서 별로 좋지 않다. 그 다음에 반드시 반작용이 오게 된다.
‘일부 변수’는 어떤 것인가.
=제일 큰 게 역시 한나라당의 공천 갈등이다. 다만 박근혜씨가 탈당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탈당의 명분과 실리에서 밀린다. 그리고 이회창당(자유선진당)이 충청도당을 넘어서는 의석을 확보할 것이냐 여부다. 한나라당 보수독점 체제가 되느냐, 아니면 보수경쟁 체제가 되느냐 하는 것은 이회창당이 원내교섭단체를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자유선진당-한나라당-반북좌파, 이상적 구도
보수독점 체제와 경쟁 체제는 어떤 차이가 있나.
=우선 대북정책에서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보수경쟁 체제라야 이명박 정부가 중도적으로 가지 않고 엄정한 대북정책을 펴도록 압박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 보수세력의 과제라면 보수자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경쟁 체제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
보수 독점이든 경쟁이든 그건 보수진영의 바람인 것 같다. 진보개혁 진영에서는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쏠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렇게 주장하려면 소위 진보세력이 스스로 변해야 한다. 어떻게 변해야 하느냐, 대한민국 헌법체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북한은 반국가단체라는 사실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세 가지에 승복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제사회 정책에서 진보적 정책을 표방하는 반북좌파 세력으로 남는다. 이건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 보수의 비대화를 걱정하기 전에 스스로 살길을 찾은 다음, 그 세력이 국회 안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장 위주의 정책이라든지 효율성 중심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좋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자유선진당이 오른쪽에 있고, 한나라당이 가운데, 지금 말한 반북좌파가 왼쪽에 있게 되면 이게 가장 이상적인 정치 구도라고 본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권력은 이미 한나라당으로 넘어갔고, 대선에서 이명박 당선자가 압승했다. 여기에 총선까지 한나라당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데.
=지방권력과 의회권력, 대통령 권력이 정치 및 행정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힘이 센 것 같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권력의 5~10% 정도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90%의 권력은 언론과 각종 사회단체, 종교나 학교 등 민간 부문에 있다. 여기에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등 사법권력도 있다. 충분히 견제가 가능하다.
언론 등 민간 부문과 사법권력도 보수에 의해 과점됐다고 보지는 않나.
=나는 완전히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지난 10년 동안 한국방송, 문화방송 등을 포함해서 각종 사회단체에 좌파세력이 많이 들어갔다. 정권이 좌경화되니까 민간단체도 좌경화된 것이다. 그걸 정상화하기 위해 지방정권과 국회, 대통령 권력이 보수에 의해 장악되는 것은 순리라고 본다.
삼성 비자금 문제는 이명박이 해결할 것
이명박 당선자가 내놓고 있는 대기업 중심의 성장 위주 정책 등을 보면 지나치게 보수층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이명박 당선자가 하는 것을 너무 보수적이다, 성장 위주적이다, 효율만 추구한다, 이렇게 말할 만한 게 별로 많지 않다. 인수위에서 내놓은 몇 가지 정책을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공화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보다도 훨씬 왼쪽이다. 좌파정권 안에서 좌우 대결을 하다 보니, 자연히 왼쪽으로 끌려간 면이 있다. 다만 영어교육을 너무 중시하는 것이 지나치게 효율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영어를 잘해야 국가 경쟁력이 있다는 허상을 하나 만들어놓고 영어수업 말고도 영어로 수업을 하겠다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명박 교육정책이라는 것은 방법론만 이야기하면서 교육의 목표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한 국어, 국사 교육을 소홀히 하고 그 시간에 영어교육을 하겠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무국적 교육이다. 인수위 안은 학원강사들이 모여서 아이디어 짜낸 것처럼 아주 지엽적이다.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도 그렇고 한반도 대운하 계획도 그렇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도 있다.
=문제는 내용이 정확한가인데, 그렇다고 대운하 같은 것을 논란에 붙이면 영원히 논란으로 끝날 것이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도 보면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던데 이게 이명박 스타일이다. 이게 효과가 있을 때가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하다 보면 반대 세력도 전선이 여러 개니까 분산이 될 것이고, 그렇다 보면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게 돼 있다.
이 당선자가 주장하는 법과 원칙이 힘없는 노동자에게만 불리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보지는 않나. 민주노총 방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도 그렇고.
=힘없는 노동자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힘없는 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 노조는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노조 아닌가. 노조 조직률이 12~13%밖에 안 되면서도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갖는 노조는 세계에 없다. 노조는 충분히 힘이 세다. 그리고 친기업이라는 것이 기업의 투자 분위기를 만드는 차원이라면 얼마든지 좋다고 본다. 다만 기업의 비자금 문제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법치라는 것은 재벌 회장이나 그야말로 힘없는 노동자에게나 같이 적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삼성 비자금 사건이 생겼으니 비자금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이건 이명박씨가 할 수 있다. 왜냐면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대기업의 돈을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발목 잡힐 일이 없는 것이다.
교수를 많이 쓰는 건 실용정부 아냐
이명박식 실용주의는 어떻게 보나.
=실용주의는 좋은 말이다. 문제는 그걸 어떤 식으로 실천하느냐다. 자기 합리화를 위해 어디든 갖다붙일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씨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상인 출신 대통령이다. 상인은 원래 실용주의고 실리주의다. 명분론이나 도덕주의에 빠져서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나는 환영한다. 다만 교수를 많이 쓰는 정부는 실용정부가 아니다. 교수 출신 장관 가운데 잘한 사람이 있나. 지금 인수위에도 교수 출신이 많다. 그건 이명박씨가 내세우는 실용주의와 맞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고 경제인을 지나치게 중용하는 것도 문제 아닌가. 재계의 이익만 대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오너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지 않나. 예를 들어 정몽준씨라면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지만 전문경영인은 재벌에 종속적이거나 특정 기업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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