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씨 변호 나선 전 한나라당 상임고문 박찬종 변호사… “클린턴 조사는 TV로 방송됐는데…”
▣ 글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대선은 끝났지만 사건은 남았다. 지난 연말 대선 정국을 뒤흔들어놓았던 김경준씨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바 ‘BBK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1월14일 시작된 것이다.
‘피고인’ 신분으로 다시 언론 앞에 선 김씨는 검찰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확실한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는 게 김씨의 거듭된 주장이었다. 그는 “검찰은 내가 이와 관련해 그런 일이 없다고 인정하고, 변호사를 해임했다는 허위 사실을 기자들에게 유포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자신은 ‘검찰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는 주장을 번복한 적이 없는데도, 검사들이 마치 자신이 말을 바꾼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이야기다.
김경준씨는 이제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는 물론,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권력기관 가운데 하나인 검찰과도 정면 승부를 시작한 셈이다.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은 아직 이르다.
박찬종 변호사는 김정술, 홍선식 변호사와 함께 김씨의 변론을 맡고 있다. 5선 국회의원의 경력으로 한나라당에서 상임고문까지 지낸 박 변호사가 이명박 당선자와 대척점에 선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변호사가 나선 사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한 그가 정치적 목적으로 김씨 변론을 맡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박찬종 변호사가 답했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으니까 BBK 사건도 자동적으로 끝난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 되는 소리인가. 우리 사회에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평생 무료 변론, 지난해엔 김명호 변론
정치적 목적을 갖고 사건을 맡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BBK 사건이 불거졌고, 유력 후보가 이와 관련해서 계속 엇갈린 해명을 내놓았다. 수사가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밝혀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당선자 쪽에서는 압도적인 표 차이가 곧 면죄부로 통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이래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법치주의 측면에서는 단연 꼴찌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런 정치 수준이나 법의식 앞에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사건인가.
=나는 국회에 진출하기 직전 1년을 제외하면 평생 무료 변론만 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985년 미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으로 기소된 대학생 20명의 변론을 맡은 것이다. 그 뒤에도 1년에 최소 몇 건은 무료 변론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석궁 사건’의 주인공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1심 변론을 맡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법정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충분히 펼치기도 전에 여론을 통해 매도당했다는 사실이다. 김경준씨 사건도 우리 사회가 법치주의를 얼마나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판단으로 참여했다.
어쨌든 BBK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김경준씨를 구속 기소했고, 이명박 당선자에 대해서는 무혐의라고 결론을 내린 상황이다.
=사람의 지위 여하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은 동일하게 취급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은 처음부터 이명박 당선자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단정한 채 이에 반하는 주장은 모두 배척하는 수사를 했다.
그 근거는.
=예컨대 이 당선자에 대해서는 서면 조사만 했다. 2000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기 입으로 ‘BBK를 설립했다’는 말을 했는데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검찰의 서면 조사에서 당선자는 인터뷰 발언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객관적인 근거 자료와 진술이 엇갈린다면 당연히 불러서 추궁하는 것이 수사의 기본 아닌가.
검찰 입장에서는 언론 인터뷰 등이 사건의 실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나.
=이명박 당선자가 BBK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하니까 2000년 등과의 인터뷰라든지 이장춘 전 대사에게 건넨 명함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직접적으로 이 당선자의 유죄를 입증해주는 물증은 될 수 없을지라도, 대선 후보로서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활용될 수 있었다.
김씨의 ‘오해’란 한국법 잘 모른다는 뜻
대선 직전인 12월18일 김경준씨가 공개한 (두 번째) 자필 메모를 놓고 검찰과 일부 언론에서는 김씨가 말을 바꾼 것으로 소개했다. 문제의 메모에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있었을지 모르는 의사소통의 오해가 증폭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좀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겠다’는 부분도 있어서 문제가 됐는데.
=김경준은 한국말을 잘 못하고, 한국적 관습에도 익숙지 않다. 카메라 앞에서 웃고 그랬던 것도 미국식 습관 때문이었다. 김씨가 말한 ‘오해’라는 것은 자신이 한국법에 대해 잘 모르니까 오해가 있었을지 모른다고 쓴 것이지, 그동안 자신이 했던 주장(검찰의 회유와 협박 등)에 대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검찰은 마치 김씨가 회유와 협박 주장에 대한 진술을 뒤집은 것처럼 말했다.
‘이명박 특검’도 시작됐다. 김경준씨나 변호인단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정리됐나.
=김씨와 변호인단이 논의해서 필요하다면 특검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의견을 요약해서 건넬 생각이다. 김씨는 당연히 특검에서 조사할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이명박 당선자를 직접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으로 탄핵 위기까지 몰렸던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케네스 스타 특검에게 직접 조사받는 장면이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이 당선자 역시 본인이 법질서와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특검 수사에 떳떳하게 응하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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