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생명 위기 때마다 재산 헌납으로 돌파… 이번엔 도덕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선택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흡사 대통령 당선자의 수락 연설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12월7일 한국방송 대선 후보 선거방송 연설에서 ‘확신’과 ‘희망’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그는 정권 교체의 확신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고, 세계 일류 나라로 가는 확신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틀 전 검찰의 BBK 수사 발표로 대세는 이미 결정됐다고 확신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재산마다 얽히고 설킨 구설수들
이 후보는 이날 깜짝 카드를 꺼내들었다. 300억원대에 이르는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이제 저의 남은 소망은 이웃을 돕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일”이라며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제가 가진 것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진작부터 그러고 싶었지만 그동안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보류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모두 정리됐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국민 앞에 고하게 됐습니다.” 이 후보의 재산 헌납 소식이 전해지자 범여권과 이회창 무소속 후보 쪽에서는 “진정성이 없다”며 잇따라 비난 성명을 쏟아냈다.
그동안 ‘정치인’ 이명박이 소유한, 그리고 소유했다는 의심을 받아온 막대한 재산은 그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하는 아킬레스건이었다. 올해만 해도 이 후보는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 강남 소재 부동산 투기 논란, 아들·딸 위장취업, 성매매 건물주 의혹 등에 시달렸다. 이 후보가 수억원대의 평범한 재산을 가진 소박한 정치인이었다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당내 경선도 좀더 편안히 치를 수 있었을 것이고, 이회창씨가 뒤늦게 대선판에 뛰어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재산은 유력한 정치인으로 명성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한 물적 토대이기도 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발목을 잡는 ‘주홍글씨’이기도 했다. 재산 헌납을 선언하는 이 후보는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이 후보가 내놓게 되는 재산은 얼마나 될까. 그는 지난 11월25일 대통령 후보로 등록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총재산을 353억8030만원으로 신고했다. 이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마지막 해인 2006년 2월의 재산 신고액 178억9905만원에 견주면 2배로 늘어난 액수다. 모두 강남에 자리한 이 후보 소유 부동산의 평가가액이 달라진 것을 반영한 것으로, 재산 내역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장으로 취임할 때 재산을 보수적으로 신고했다는 비판이 가능하지만, 지금 와서 이를 따지고 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후보의 재산을 큰 덩어리부터 꼽아보자. 먼저 서초동의 영포빌딩(118억8천여만원)이 눈에 띈다. 이 후보 아들·딸의 위장 취업 사실이 확인돼 논란을 빚은 건물이다. 다음으로는 그 맞은쪽에 자리잡은 상가 건물(90억4천여만원)이다. 지금은 ‘대명주’라는 중식당이 입점해 있다. 2001년 7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건물 관리 직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기정 대통합민주신당 의원한테서 공격을 받았다. 세 번째로 양재동 영일빌딩(68억9천여만원)이다. 최근까지 지하에 입점해 있던 유흥주점이 성매매를 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그 밖에 이 후보와 부인 김윤옥씨 명의로 등기돼 있는 논현동 땅(11억5천여만원)과 주택(51억2천여만원)이 눈에 띈다. 이 후보가 재산 헌납의 범위와 방식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영포빌딩, 영일빌딩, ‘대명주’가 입점해 있는 상가 건물 등이 헌납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3년 공직자 재산 공개의 역풍
이 후보는 그동안 정치 생명이 위기를 맞거나 답답하게 꼬인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재산 헌납’ 카드를 자주 사용해왔다. 1993년 3월, 민주자유당은 8월에 도입되는 공직자 재산신고에 앞서 당 소속 의원 162명과 당무의원 8명을 합친 170명에 대한 ‘1차’ 재산 공개 행사를 기획한다. 이명박 민자당 의원(전국구)는 영포빌딩의 건물·땅값 5억5700만원, 영일빌딩 건물·땅값 5억9500만원 등을 합쳐 전 재산을 62억3240만원으로 신고했다.
문민정부가 치켜든 사정의 칼날은 이 후보를 비켜가지 않았다. 이 후보는 재산을 축소 신고하려고 안간힘을 쓴 정황이 드러난데다, 강남 노른자위 땅을 취득하게 된 경위 등에 대한 뒷말이 이어져 의원직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러자 이 후보는 ‘재산 투매’와 ‘헌납’ 카드로 위기를 정면 돌파한다. 1993년 8월로 예정된 정식 재산 공개를 앞두고 대명주 식당 터 옆 470평짜리 땅을 공시지가(평당 2400만원)의 절반 가격(평당 1275만원)에 대한변호사협회에 팔아치웠다. 문제는 다음 부분이다. 그는 3월 재산 공개 때는 밝히지 않은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 산 53-1 일대 땅을 그해 5월26일 고려대학교 교우장학회에 기부했다. 이 후보가 이 땅을 사들인 것은 1974년 4월8일이다. 이 후보가 무덤과 밤나무로 뒤덮인 화성 오지의 야산을 왜 사들였고, 왜 이를 고려대 교우장학회 쪽에 기부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93년 3월 재산 공개 때 이 땅의 소유 여부를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봐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재산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다시 10년이 흘렀다. 전국구 초선이던 이 후보는 한나라당을 대표해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정도의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당시 이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던 김민석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이 후보의 재산 형성 과정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이 후보가 빼든 카드는 다시 ‘헌납’이었다. 그는 유권자들 앞에서 “재임 중 월급 전액을 사회를 위해 쓰겠다”고 공약했고, 꼭 그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민선 3기 서울시장으로 당선된다. 약속대로 이 후보는 2002년 7월20일 나온 첫 월급 실수령액 506만2천원을 청소년 야학학교에 기부했다. 이 후보는 두 달 뒤인 9월13일 공무를 수행하다 죽거나 다친 환경미화원·소방공무원 유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등불기금’에 매달 월급 전부를 내놓기로 아름대운재단과 약정을 맺었다.
세 번째 ‘헌납’ 카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후보는 12월5일 검찰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후보의 대세론은 이제 확고하게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단지 대선 판도에 쐐기를 박기 위해서라면 굳이 빼들 필요가 없는 카드다.
헌납 재산은 어디에 쓸까
〈YTN〉이 12월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에 맡겨 전국의 성인 남녀 1003명에게 물어본 결과, 국민의 56.9%는 BBK 의혹과 관련해 이명박 후보는 사실상 무혐의라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믿는다’는 답변은 38.5%에 그쳤다.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에 대해서도 ‘대통령 후보로 문제 있다’는 응답이 43.1%로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다’(37.6%)는 응답보다 높았다. 검찰은 ‘면죄부’를 줬지만 국민들은 그 면죄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후보를 지지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을 애먹여온 지독한 ‘이명막의 역설’이다. 그러나 선거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정권 교체’라는 역사적 사명을 안고 선거에 나서는 장수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국가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도덕성의 수준은 다르며, 또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정국을 이끌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리더십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는 이 후보가 그동안 강조해온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나머지 반쪽은 ‘도덕성’이다. 그는 재산을 내던져 선거 이후에도 이어질지 모를 도덕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후보의 재산은 어떻게 될까. 구체적인 재산 환원 방법과 절차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측근들은 대통령 퇴임 이후 소외 계층들을 돕는 재단을 만드는 등의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절망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고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는 데 쓰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효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보과장은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재산을 환원하겠다고 하면 선거법이 정한 기부 금지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대통합민주신당 쪽에서는 논평을 내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가 이제는 대통령직을 사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가여운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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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선 후보가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밝힌 뒤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그의 재산이 얼마인가’ 하는 것이다. 도곡동 땅에서 BBK 논란까지 이 후보를 둘러싸고 지루하게 이어진 도덕성 공방은 결국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 후보의 공식적인 재산은 그가 대통령 후보로 등록하면서 밝힌 353억8030만원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그가 친·인척 등의 이름으로 신탁해놓은 재산이 수천억원대에 이른다는 ‘설’(說)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센 수치를 부른 사람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쪽에서 활동하다 한나라당을 탈당해 이회창 무소속 후보 쪽 캠프로 합류한 곽성문 의원이다. 곽 의원이 지난 6월5일 당내 경선 과정에서 주장한 이 후보의 재산은 8천억원이다.
이 후보의 재산 헌납 소식이 알려진 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쪽 김현미 대변인이 부랴부랴 내놓은 논평에서도 비슷한 인식이 읽힌다. 김 대변인은 “재산을 내놓으려거든 실명이 아닌 차명으로 숨겨놓은 2천억원에 달한다는 다스, 도곡동 땅값 등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천억 차명 재산을 숨겨놓고 300억 실명 재산만 내놓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 대변인은 이 후보의 차명 재산을 2천억원으로 추정한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문제는 고개를 끄덕일 만한 정황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의 차명 재산을 입증할 수 있는 명명백백한 물적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8월13일 이 후보의 큰형인 이상은(74)씨가 갖고 있던 서울 도곡동 땅의 지분은 이상은씨가 아닌 제3자의 차명재산으로 보인다고 했지만 그 ‘3자’가 누군지 밝히지 않았고, 전국 방방 곳곳에 흩어진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 명의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김씨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12월5일에는 한발 더 나아가 “다스는 이명박 후보의 것이 아니다”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후보의 전 재산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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