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 탈당·총선 불출마 선언하고 문국현 캠프로 간 김영춘 의원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진정성’이란 단어만큼 정치권에서 심하게 오염당한 말도 드물다. ‘거짓 없는 참된 마음’쯤으로 풀이될 이 단어는 정치인이 가장 애용하는 어휘 가운데 하나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이 진정성을 호소하면, 오히려 진정성 ‘너머’나 ‘이면’을 의심해보게 마련이다.
김영춘 의원이 10월11일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해 문국현 후보에게 갔다. 김 의원이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리라는 것은 한 달여 전부터 이미 예상됐던 사실이다. 뉴스는 통합신당 탈당과 문국현 캠프행 사이에 놓인 ‘총선 불출마’라는 다리이다. 그의 총선 불출마를 바라보는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어떨까.
“눈물나게 고맙다” vs “기회주의적 행태”
문국현 후보 쪽에서는 김 의원의 결단에 적잖은 감동을 받은 눈치다. 문 후보는 “국민이 감동할 만한 일을 김 의원이 했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문 후보 캠프의 김헌태 정무특보는 와의 인터뷰에서 “눈물나게 고맙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다”고도 했다.
통합신당 관계자는 “문국현 후보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김영춘 의원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정치인으로서 총선 불출마라고 하는 자기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김 의원이 지지부진한 범여권 후보단일화 등을 위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적어도 정치적 손익을 일일이 따져가며 정치적 ‘꼼수’를 부린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대의 시각도 있다. 바로 총선 불출마 선언에 담긴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의심의 키워드는 ‘386의원들에 대한 불신’ ‘기회주의적 행태’ ‘철새’ 등이다.
김영춘 의원은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 추대위에서 기획실장을 맡았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이명박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기획을 담당했고, 그해 12월 대선에서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3년 7월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 의원은 이번에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고 문국현 후보 캠프에 합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선 후보만 4명을 ‘모시는’ 셈이 됐다. 이력만 살펴본다면 끊임없이 ‘마른 자리’만 찾아다녔다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다음 총선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다는 사실도 총선 불출마라는 결단의 의미를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통합신당이라는 ‘난파선’에서 탈출하기 위해 승산 없는 총선을 포기했다는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김 의원이 총선 불출마와 문국현 후보 지지를 선언한 직후 그의 홈페이지에는 이같은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난파선’의 승산 없는 총선 포기?
‘열린우리당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면서 문국현 후보 캠프로 향한 김 의원의 행보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김 의원은 10월12일 과의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 문을 닫고 신당을 만들 때 열린우리당의 창당 정신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지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면서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됐다”며 “신당 합류는 전당대회 합의사항인데다 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 원인으로 김 의원은 정체성 혼란을 가장 먼저 꼽았다.
“열린우리당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고 어떤 국민을 대변하고자 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했다. 통합신당 내에서 그런 노력을 모색해볼 수도 있지만 신당 역시 정체성의 혼란은 여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지적이다. 문제는 열린우리당 내에서 김 의원을 비롯한 386 세대 의원들이 당내 문제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386 의원들이 당내 문제에 대해 단결된 힘을 과시한 적은 2005년 열린우리당 전당대회가 거의 유일했다. 당시 전당대회에는 송영길 의원이 ‘386 대표선수’로 출전했다. 송 의원과 마찬가지로 전당대회에 나선 유시민 의원은 과의 인터뷰로 인해 김영춘 등 386 의원들에게 공동의 적이 됐다.
유 의원은 당시 인터뷰에서 ‘정동영계는 용서할 수 없고, 김근태계와는 연대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때부터 유 의원은 386 의원들로부터 ‘분열적 개혁주의자’로 낙인찍혔다. 유 의원의 성향을 말할 때 ‘싸가지’라는 단어가 늘 따라다니게 된 것도 김 의원의 작품이다.
2005년 전당대회 당시 386과 유시민 의원 간의 갈등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문제 삼으며 탈당을 감행하는 김 의원의 행동은 받아들여지기 힘들 수 있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한 386 의원들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반론했다.
진정성 평가는 미뤄둬야 할 듯
“나름대로 대통령을 비판하기도 했고, 젊은 동료 의원들과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밤새워 토론하고 학습하기도 했다. 심지어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당대회에 나가서 당내 양대 주류에 대해 각을 세웠다. 그런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구성으로 봤을 때 불가능한 노력이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김 의원은 ‘불가능한 노력’을 접고 대신 문국현 후보를 택했다. 그러면서 당분간 ‘정치적 노마드(유목민)’로 지내겠다고 말했다. 정주지를 만들 때까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의 탈당과 불출마 선언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는 그때까지 조금 미뤄두는 편이 현명할 것 같다.
|
대통합민주신당 탈당과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김영춘 의원은 오히려 일정이 많아졌다. 문국현 후보에 대한 지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10월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대통합민주신당 사정으로 볼 때 어차피 내년 총선 당선은 어려웠던 것 아닌가.
=(내 지역구인) 광진갑은 그래도 사정이 괜찮은 곳이다. 내 나름의 지지 기반이 강한 지역이기 때문에 당 지지도가 낮더라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내년 총선에서 통합신당이 서울에서 얻을 수 있는 의석이 몇 개 안 된다 해도 분명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지역구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처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서울시장을 노린다는 관측이 있다.
=오세훈 시장은 정계 입문 전부터 이미 연예인급 인기를 지니고 있던 사람이다. 그런 오 시장과 나를 수평적으로 비교해서 나도 같은 길을 갈 수 있으리란 생각은 전혀 안 한다. 서울시장 출마를 구체적으로 생각한 바 없다.
열린우리당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서 왜 당 밖에 있는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나.
=정계 은퇴로 책임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좋은 정치를 만들기 위해 책임지겠다는 것이고, 그래서 문국현 후보 도우미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나름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그마저도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포석으로 본다면 할 말이 없다.
문 후보의 지지도가 아직 4~5%선에 머물고 있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인지도가 아직 낮아서 그렇다. 통합신당 후보들만큼만 언론에 노출될 수 있다면 지지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본다.
지나치게 막연한 기대 아닌가.
=지금 상황으로만 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은 믿음이 필요하다. 국민이 알면 알수록 지지도가 오르리라는 것은 문 후보나 나 같은 사람들의 확신이다. 그만큼 문 후보의 메시지가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문 후보 지지층과 친노 세력이 일부 겹친다.
=친노 성향 유권자도 다양하다. 문 후보의 주장과 철학에 공감하면 친노라고 해서 배척할 이유는 없다.
그들이 유시민 의원과의 연대를 요구할 수 있는데.
=그 결합은 따져봐야 할 문제가 참 많다. 유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했던 인물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진로에 대한 견해, 즉 정체성이 일치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을 것이고, 정치적 파급효과도 심사숙고해봐야 한다.
정체성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나도 유 의원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지만, 꼭 생각이 비슷하다고 해서 정당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죽하면 옳은 말을 뭐 없이 한다고도 했겠나.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거부권 쓴 한덕수 “헌법정신 최우선으로 한 결정”
권성동·한덕수, 롯데리아 ‘권’모술‘수’ 세트 [그림판]
김병주 “선관위 30명 복면 씌워 납치하는 게 정보사 HID 임무”
[속보] 국정원 “파병 북한군 최소 100명 사망, 1천여명 부상”
[영상] 김문수, “내란공범” 외친 시민 빤히 보면서 “경찰 불러”
‘야당 비판’ 유인촌, 결국 사과…“계엄은 잘못된 것”
[속보] 한덕수 ‘거부권’ 행사…양곡법 등 6개 법안
민주 “탄핵 기간 빈집에 통지서”…‘이재명 재판 지연’ 주장 반박
‘윤석열 내란 이첩’ 심우정 검찰총장 “절차 논란 빌미 없어야”
‘결격 대통령’ 박근혜·윤석열 연속 배출하고도…국힘은 반성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