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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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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갖고 그래…

등록 2007-10-12 00:00 수정 2020-05-03 04:25

조직 동원 문제로 신당 내에서 사면초가 형국인 정동영 후보, 집중공격의 배경엔 당권 문제가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10월4일 오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예비후보의 선거사무실 분위기는 잔뜩 격앙돼 있었다. 전날 당 지도부가 발표한 이른바 ‘원샷 경선’ 때문이었다. 신당 지도부는 손학규·이해찬 두 후보가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경선 잠정 중단을 요구하자, 남은 지역의 경선을 14일 하루에 치르기로 결정했다.

손·이 두 후보가 2일 새벽에 모여 서울 종로구의원 정인훈씨의 노무현 대통령 명의 도용 사태 등을 문제 삼으며 경선 중단을 요구했을 때만 해도 정 후보 쪽의 반응은 ‘곤혹스럽다’ 정도였다.

정동영-김한길 대권 당권 거래설

정 후보 쪽에서 부담을 느낀 대상은 경선 중단이나 원샷 경선이 아니었다. 명의 도용 대상이 ‘하필이면’ 대통령이었고, 명의 도용 주체가 정 후보 쪽 사람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정 후보 쪽에서는 당 지도부가 두 주자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3일 “원샷이든 투샷이든 우리 처지에서 못 받을 것은 아니지만 정인훈씨 사건 때문에 대리접수와 조직 동원의 책임이 우리에게만 집중되고 있는 것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막상 신당 지도부가 원샷 경선을 중재안으로 내놓자 정동영 후보 쪽은 맹렬히 반발했다. 지도부가 설마 하루 만에 손·이 후보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지도부 결정이 나온 직후 정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정동영이가 당에서 완전히 포위됐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정 후보가 말한 포위망은 네 곳에서 죄어오고 있는 형국이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정 후보를 가장 전면에서 압박하고 있는 쪽은 물론 손학규-이해찬 두 후보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당 지도부 역시 정 후보 쪽에서는 이미 우군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손·이 두 후보가 심야 회동을 한 다음날 곧바로 경선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김영춘·오영식·임종석·강성종·문병호·우원식·최재성 등 신당 초·재선 의원들, 그리고 3일 오전 긴급 회동을 가진 정세균·장영달·정대철 고문 등 신당 중진 모임도 ‘반정동영’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정동영 후보 쪽의 판단이다.

정동영 후보가 이처럼 대통합민주신당 내에서 고립된 표면적 이유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 벌어진 조직 동원과 부정 접수 문제의 화살이 정 후보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알고 보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가깝게는 9월 중순부터 불거졌던 ‘정동영-김한길 대권 당권거래설’과 관련이 있다. 당권거래설은 김한길 그룹 14명의 의원들이 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캠프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김한길 그룹이 정 후보를 지지하는 대신 정 후보는 김한길 그룹에 당권을 약속해준다는 것이 당권거래설의 핵심이었다.

당권거래설은 그 이후 뚜렷한 물증이 없어서 ‘설’ 수준으로만 넘어갔다. 하지만 이때부터 중립지대에 남아 있던 당내 중진들과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초·재선 의원들의 위기감은 증폭됐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당헌을 보면 당권 거래가 이뤄졌을 경우 그 파괴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신당은 지난 8월 창당 과정에서 다음 총선에서 전략공천 지역을 선거구의 30% 이내로 선정할 수 있도록 당헌·당규를 만들었다. 전략공천의 권한도 최고위원회의에 부여했다. 과거 열린우리당이 최고위원회의가 아니라 중앙위원회에 전략공천 권한을 줬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중앙위원회는 최고위원회의와 달리 당 대표의 ‘입김’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당권 거래가 이뤄졌다면 경우에 따라 신당의 차기 당 대표가 실제로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해찬 후보 쪽 선병렬 종합상황본부장은 “김한길 의원과 정동영 후보는 실제로 그전부터도 끊임없이 이익만 좇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중립지대에 남아 있던 의원들을 포함해서 상당수 의원들이 ‘정동영-김한길 당권거래설’에 대해 강한 심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 후보 쪽 전략 ‘일점돌파’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핵심 관계자 역시 “대권 당권거래설이 사실일 경우 정동영 후보 쪽에 줄서지 않는 누구라도 차기 총선에서의 공천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며 “당권거래설이 나온 직후 중립지대에 남아 있던 중진들과 초·재선 의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진 것도 위기감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6~7월 범여권 대통합신당 논의가 한창 진행될 무렵 정동영 후보가 보인 행보도 신당 중진그룹과 정 후보의 신뢰관계에 균열을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7월 초 정 후보는 당시 통합민주당의 박상천·김한길 공동대표와 만나 ‘대통합신당 추진’과 ‘국민경선’이라는 두 개의 열매가 담긴 합의문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이는 당시 통합 논의의 중심이던 열린우리당 등 범여권과 국민경선추진협의회(국경추)로부터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통합의 대상이 모호하고 시기가 국경추에서 결정한 사항과 달랐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신당의 한 중진 의원 쪽은 “당시 정동영 후보의 행태는 대통합과 상관없이 호남표만을 의식한 양다리 걸치기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며 “정 후보가 최근 자신의 주장처럼 중진들이 정 후보 편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면 왜 상황이 그렇게 됐는지도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기 다른 네 방향에서 ‘반정동영’ 세력을 맞닥뜨리고 있는 정동영 후보 쪽에서는 ‘원샷 경선’과 ‘선거인단 전수조사’ 등 손·이 후보의 요구는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다. 두 후보가 경선 룰과 관련한 어떤 제안을 해온다 해도 ‘정동영 대세론’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정 후보 쪽의 분석이다. 정 후보 쪽 정기남 공보실장은 “당 지도부의 원샷 경선 결정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유·불리 때문이 아니라 우리와는 일절 상의 없이 상대 후보 쪽 요구를 우리에게 받아들이라고 통보하는 당 지도부의 태도”라고 지적한 뒤 “우리는 원샷 경선을 받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초조한 쪽은 문제 제기를 시작한 이해찬 후보 캠프다. 이 후보 쪽 핵심 관계자는 “정동영 후보의 조직 동원 문제를 강하게 제기함으로써 우리 지지층 가운데 경선 참여를 유보하고 있는 부동층을 경선과 모바일 투표에 끌어들인다는 생각이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원샷 경선을 받아들인 정동영 후보 쪽에서는 대신, 남은 14일 경선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서는 일전불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정 후보 쪽에서 취하고 있는 전략은 ‘일점돌파’이다. 포위망의 가장 약한 고리를 뚫고 나감으로써 현재의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정 후보 캠프에서 약한 고리로 판단하는 쪽은 신당의 일부 지도부 인사들이다.

정동영 vs 반정동영, 싸움은 계속된다

정 후보 쪽 핵심 관계자는 4일 “현재의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특정 후보에게 편향적인 신당의 일부 지도부를 교체하는 수밖에 없다”며 “원샷 경선 요구는 쿨하게 받는 대신, 이들에 대한 사퇴 요구는 반드시 관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후보 선대위 소속의원 33명도 이날 성명을 통해 “공정성을 상실한 일부 당직자의 사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정 후보 쪽에서는 말하는 ‘편향적 일부 당직자’는 3인의 민주당 출신 인사를 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효석 원내대표와 이낙연 대변인, 그리고 정균환 최고위원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9월 말 손학규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하는 소동을 빚은 바 있다. 정 후보 쪽에서 사퇴해야 할 당직자 1호로 공공연히 꼽고 있는 이낙연 대변인의 지역구인 전남 영광과 함평은 9월29일 광주 경선 결과 손학규 후보가 정 후보를 상대로 각각 63.3% 대 32.9%, 64.2% 대 24.9%의 압승을 거두는 결과가 나왔다.

신당 일부 지도부의 거취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든, 정동영 후보 쪽과 ‘반정동영’ 세력 간의 다툼은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선 룰 문제에 대한 해법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피아’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쪽 머릿속에는 12월 대선이 끝난 직후인 내년 1월 첫 전당대회를 통해 가리게 될 신당의 당권 문제, 그리고 차기 총선과 관련한 공천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상황이다.



경선 연기 배후는 유시민?

드러나는 행보 하지 않다가 돌아와 공격의 전선으로

유시민 의원이 돌아왔다. 유 의원은 이해찬 후보 쪽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신당 경선의 초반 4연전 이후 유 의원은 한동안 드러나는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9월29일 많은 언론이 관심을 가진 대통합민주신당의 광주·전남 경선에도 유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10월2일 새벽 손학규·이해찬 후보의 회동 직후 경선 연기 문제가 불거지자 정동영 후보 쪽에서 ’배후’로 지목한 인물은 유시민 의원이었다. 정청래 의원은 3일 “이번 경선 연기 사태의 배후에는 경선 불복을 꾀하는 유시민 의원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친노·영남 세력이 정치적 지분을 차지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유 의원이 나서서 경선 불복의 명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정청래 의원의 분석이다.
정 후보 쪽 또 다른 관계자도 “당권거래설의 실체가 밝혀진 것이 없는데 유시민 의원 등 대선 패배주의에 빠진 영남·친노 세력들이 이를 이용해 중립지대에 있는 인사들까지 흔들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9월 말까지 각 지역을 돌며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에 공을 들이고 있던 유시민 의원이 ‘상경’한 것은 양쪽 긴장이 폭발하기 직전인 10월1일이었다. 유 의원의 한 측근은 5일 “서울에 와서 보니까 이해찬 후보가 정동영 후보와의 ‘공중전’에서 워낙 밀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당장은 캠프의 메시지 생산 작업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3일 이해찬 후보 캠프가 당 지도부에 요구한 경선 참여의 5가지 전제조건은 유 의원의 아이디어였다. 14일 원샷 경선과 선거인명부에 대한 전수조사, 불법 콜센터 조사 방안 등이 모두 유 의원에게서 나왔다.
유 의원은 5일에도 ‘한 사람이 열 명씩만 노아의 방주에서 탈출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정동영 후보를 강하게 공격했다. 유 의원은 글에서 “불법 부정선거로 일관한 정동영씨가 대통합신당 후보가 될 경우 신당은 대선에서 참혹한 패배를 당하고, 곧이어 치르는 총선에서도 영남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호남 지역은 정동영계와 민주당의 보수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차지하고 그 밖의 지역은 수구보수 세력이 완전히 장악하는 사태가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합민주신당 내부에서는 정동영 후보 쪽과 유시민 의원을 비롯한 ‘반정동영’ 세력의 싸움이 경선 이후에도 당에 심각한 분란의 씨앗을 남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손학규 후보 쪽 관계자는 “최근 이해찬 후보 쪽에서 DY(정동영) 상처내기를 시도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경선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경선보다는 오히려 경선 이후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관측에 대해서는 이해찬 후보 쪽에서도 크게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 후보 쪽 선병렬 종합상황본부장은 “정동영 후보가 끝까지 이런 식으로 경선을 치르면 (경선 이후) 신당에서 이탈할 세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이탈을 고민하는 세력들에게 정 후보가 확실한 명분까지 챙겨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시민 의원 쪽 역시 경선 결과 승복 여부에 대해 묻자 “(정 후보가) 깨끗하게 해서 이긴다면 승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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