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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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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의 고민

등록 2007-08-24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지지율은 6~7%에서 꿈쩍 않고, 추가 캠프 합류자 없고, 예비경선은 잘해봐야 본전이고…</font>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8월16일 정치 1번지인 서울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전까지 손 전 지사의 캠프 본진은 서대문에 자리잡고 있었다. 게다가 전략기획실은 안국동, 공보조직은 여의도에 따로 떨어져 있던 탓에 그때그때 발생하는 현안에 대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대응이 어려웠다.

“한나라당 이력은 자산”

이날 손 전 지사는 짐도 채 풀지 않은 여의도 캠프에서 오랜만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논란이 돼왔던 ‘한나라당 전력 시비’에 대해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손 전 지사는 그동안 한나라당 전력 시비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의 그는 달랐다.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이력을 사과하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앞으로 한나라당에 있었던 사실이 이번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에 자산이, 효자가 되게 할 자신이 있다”며 힘주어 말했다. 한나라당 이력 논란을 소극적으로 피해가기보다는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손 전 지사의 변화된 행보는 범여권에서 불거져나오고 있는 ‘손학규 위기론’에서 비롯됐다. 더 이상 손놓고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이 손 전 지사 캠프의 인식이다.

손 전 지사가 처한 위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심각한 정체 상태에 놓여 있는 지지율이다. 탈당 직후 10%를 육박하던 지지율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6~7%대로 가라앉은 뒤 더 이상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부터 지지율을 믿고 아무런 뿌리도 없는 범여권에 발을 들여놓은 손 전 지사로서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손 전 지사 쪽 정봉주 의원은 “1등 후보를 공격해서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가뜩이나 당 지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욕심만 앞세우고 있는 탓에 결과적으로 지지율의 하향 평준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동시에 국회의원들의 캠프 합류 속도도 더뎌지고 있다. 손 전 지사가 6월25일 범여권 합류를 선언한 직후 7명의 현역 의원(김부겸·조정식·안영근·정봉주·김동철·한광원·신학용)이 한꺼번에 캠프에 참여한 것 외에는 최근까지 4명(오제세·조경태·우상호·전병헌)의 의원이 산발적으로 합류했을 뿐이다.

범여권에 합류할 때만 해도 8월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할 즈음이면 적어도 30명의 의원이 함께할 것이라던 캠프의 기대는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 됐다. 임종석, 송영길, 김영춘 등 손 전 지사에게 우호적이던 386 초·재선 의원들이 망설이고 있는 것이 캠프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손 전 지사 쪽 핵심 관계자는 “정동영 전 장관이 우리 캠프로 오기로 돼 있던 의원들을 상대로 집요하게 ‘줄세우기에 휩쓸리지 말고 중립지대에라도 남아달라’고 공략했다”면서 “결과적으로 정동영 전 장관의 전략이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인 일부 의원들에게 제대로 먹힌 셈”이라고 지적했다.

애매모호한 화법, 추상적 메시지

의원들의 캠프 합류가 늦춰지면서 동시에 선거대책위원회 출범도 미뤄지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8월 초·중순까지는 선대위를 꾸리기로 돼 있었지만, 의원들의 합류가 8월20일 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의 합당 직후로 늦춰지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후로 연기될 수밖에 없게 됐다. 지지율 정체로 인해 선대위 체제 출범까지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떨어진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 만한 동력과 계기가 손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교수 출신 특유의 장황한 문장과 애매모호한 화법, 추상적 메시지는 그의 약점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방송계의 한 관계자는 손 전 지사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나면 그가 했던 말들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손 전 지사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다음날인 8월10일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날 언론들은 손 전 지사가 이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한나라당 탈당을 헬레니즘 문명에 비유한 사실을 보도했다. 그리스 문화와 동방 문명이 합쳐져 헬레니즘 문명이 탄생한 것처럼 한나라당 탈당도 긍정적으로 봐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를 전해들은 손 전 지사 쪽 관계자마저도 “헬레니즘이 뭐라고?”라며 반문할 정도로 쉽게 전달되지 않는 표현이었다. 대선 출마 당시 손 전 지사가 내세웠던 ‘신창조국가론’의 메시지도 일반 대중의 기억에는 크게 남는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명숙 전 총리 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지금 당장의 지지율이 조금 꺾였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위기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폭발력, 그리고 ‘감동의 콘텐츠’ 같은 것이 손 전 지사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그런 면에서 손 전 지사는 2002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줄곧 1위를 하다가 노무현 후보에게 대역전극을 허용한 이인제 의원과도 매우 흡사하다”고 분석했다.

9월3일에서 5일 사이에 치러지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예비경선은 손 전 지사에게 본격적인 의미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범여권 대선 주자 가운데 꾸준히 여론조사 1위를 지켜온 만큼 손 전 지사가 1위를 차지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지지율 정체로 고민하고 있는 손 전 지사 입장에서는 예비경선이 내심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잘해봐야 본전인 게임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여기서 손 전 지사가 정동영 전 장관이나 이해찬 전 총리를 크게 따돌리지 못하거나, 혹 1위 자리를 내주게 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범여권 유력 주자 가운데 손 전 지사만이 유일하게 예비경선 무용론을 흘리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실제로 정봉주 의원은 8월17일 “예비경선은 치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예비경선이 정말 무산될지는 미지수이다. 우선 대부분의 주자들이 예비경선에 대해 합의한 상황인데다, 며칠 남지도 않은 시점에서 전격 취소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예비경선이 본선처럼 치열해야 하는 이유

신당의 경선 관리를 맡고 있는 국민경선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범여권 대선 주자들로부터 두루두루 공격을 받고 있는 손 전 지사 쪽에서는 컷오프를 통해 몇 명을 쳐내주면 오히려 더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일부에서 예비경선 무용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예비경선이 손 전 지사에게 전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손 전 지사가 예비경선을 통해 흔들림 없는 1위 후보라는 사실을 직접 보여준다면, 이는 그가 비로소 ‘범여권 후보’, 즉 ‘우리 사람’이라는 사실을 범여권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손 전 지사 쪽 관계자 역시 “예비경선을 1위로 통과하면 지금처럼 대여섯 명의 대선 주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한나라당 출신’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일은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경쟁력이 없는 후보를 쳐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예비경선이지만 손 전 지사 처지에서는 본선처럼 치열하게 치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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