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경쟁이 들어서고 “먹고 살기 훨씬 나아졌다”는 외침이 들리는 도시, 평양 속으로
▣ 평양=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사진 김종수 기자 한겨레 사진부 jsking@hani.co.kr
▣ 사진 이종근 기자 한겨레 사진부 root2@hani.co.kr
“다음에 꼭 제가 일할 때 와서 사시라요.” 홍아무개(26)씨는 빈손으로 나가는 손님의 발길을 멈춰세웠다. “물건을 더 팔면 생활비(임금)를 더 받는 겁니까?” “그렇습네다.” 그래도 혹시나 싶었다. 나흘 뒤 대표단 안내원에게 조심스럽게 확인을 구했다. “그거야 당연하죠. 똑같이 8시간 일해도 실적에 따라 더 받고 덜 받는 거 아니겠습네까.” 매출액이 높아지면 그만큼 ‘보너스’를 주는 것은 이제 북쪽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실리’로 포장되는 자본주의
1995년 평양 중구역에 지어진 47층짜리 양각도 호텔은 대동강에 섬처럼 떠 있다. 홍씨는 호텔 2층 매점에서 일한다. 환전해주는 곳도 딸려 있다. 진열된 상품은 정가가 붙어 있었지만, 남쪽에서 온 한 손님은 1200유로의 물건값을 흥정 끝에 1120유로에 샀다. 80유로를 에누리쳤다. “우린 고저 정해진 값대로만 팝네다.” 점원은 처음에 완강했지만, 한참 손님과 밀고 당기기를 하더니 물건을 내줬다. 좀 싸게 팔아서라도 이윤을 남기는 쪽을 택한 것이다. 대부분은 정가에 구매를 하지만 몇몇 손님들이 호텔뿐만 아니라 관광상품을 파는 곳에서도 흥정을 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서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정책위원은 “외국 관광객을 대하는 곳이란 특수성을 인정하더라도, 옛날 같아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북쪽 경제생활에 자본주의 요소가 점차 늘고 있다. ‘실리’란 이름으로 포장된 채로. 5월14~18일 130여 명의 남쪽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했다가 돌아온 민병석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은 “곳곳에서 북한이 분명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는 평양」북한 경제 현장을 가다
북쪽의 변화를 확인하기란 어렵다. 변화의 강도가 낮아서 그럴 수도 있다. 늘 그렇듯 보려는 것과 보여주는 것 사이에 차이가 크다. 누구도 쉽게 ‘북쪽은 이렇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 체제, 가치관 등의 차이로 말미암아 생기는 관찰자들의 편견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은 경제대표단에 끼어 방북 기간 중 나름대로 2007년 5월 북한 경제 변화상의 편린들을 모아봤다.
“지난해보다 먹고살기가 훨씬 나아졌다.” 선전만은 아닌 듯했다. 북쪽 안내원들은 물론이고, 접촉할 수 있었던 몇몇 평양 시민들의 이구동성이었다. 평양의 한 시민은 “지난해 3천원(북한돈 기준)이던 생활비(급여)가 6천원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물가는? “한 10~20% 올랐다.” 물가 인상폭에 견줘 월급 인상폭이 훨씬 크다. 그가 평양 시민을 대표할 순 없다. 통계를 만지는 경제 전문가도 아니다. 그래서 총체적인 물가 수준을 가늠하긴 어렵다. 단편적으로 짐작해볼 도리밖에 없다. 한 북한 전문가는“국가 재정 상황이 나아지고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라며 “일반 주민들의 생활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30달러 정도는 있어야 한 달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고 알려진 북쪽에서 3천원의 급여가 오른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둘 순 없다. 6천원은 2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1달러의 암시장 가격은 3천원에 달한다. 그래서 생계비의 15~20달러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배급과 부수입의 중요성은 크다.
노동자들도 ‘오버 타임’ 근무
시장이 늘어나고 활발해졌다. 2004년 공터로 있던 오탄강안거리에 있는 김책공대 옆 2천~3천 평의 부지엔 커다란 중구시장이 들어섰다. 남쪽의 초·중·고 실내체육관 모양의 건물은 파란 덮개 지붕으로, 외관은 아주 깨끗했다. 실내는 2층이다. 5월16일 양각도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시장엔 저녁 6시를 전후해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이날 평양화장품공장 옆 봉학시장도 하루 해가 저물어가자 사람들로 번잡했다. 평양시 18개 구역에 시장이 하나 이상씩 들어서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장마당이나 종합시장은 자본주의 요소가 침투한 한 상징이다. 북한의 시장은 자본주의의 그것과 거의 다를 게 없다고 한다. 한 시민은 “인민들은 물건 값이 좀더 싼 국영상점에 가지 않고 시장을 더 많이 이용한다”며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데다, 다양한 상품이 팔리고 흥정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대부분의 생필품을 시장에서 구매한다고 한다. 이제 시장은 인민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됐다.
‘매대’(포장마차)의 등장은 꽤 오래됐지만 최근 들어 그 수는 계속 늘고 있다. 평양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매대는 비교적 깔끔하게 포장마차처럼 꾸며져 있고, 음료수·아이스크림·빵·떡 등 다양한 음식료를 판다. 물품들의 가격은 대부분 100~300원이다. 구역인민위원회에서 기업소나 혁명 유가족 등에게 매대 운영권을 내준다. 수입의 일부를 떼고 나머지는 개인이나 기업소가 갖는다. 평양에서 버스로 40분쯤 떨어진 항구도시 남포는 평양보다 시민들의 생활이 나아 보이진 않았지만, 도시 전체가 생기가 넘쳤다. 남포항 부근의 영남 배수리 공장에서 남포 시내를 거쳐 평양~남포 고속도로 입구까지 가는 동안 50~60개의 매대를 볼 수 있었다. 매대의 형태와 물품도 다양했다. 좌판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시장’의 영역이 넓어지는 현상을 외부인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올해는 지난 2002년 시작된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이하 7·1 조치)가 북쪽식으로 말하면 ‘꺾어지는 해’(5년, 10년)다. 7·1 조치는 임금·환율·쌀값 등 기초생활비를 인상했고, 인센티브제와 독립채산제 등을 확대했다. 하지만 북쪽 인사들 가운데 7·1 조치란 용어를 알아듣는 이는 거의 없다. 한참 대화를 하다 보면 그 때서야 최근 몇 년 새 경제에서 ‘실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늘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평양시 남쪽 낙랑구역 통일거리 끝에 자리한 봉화피복공장은 남쪽 의류업체의 위탁가공을 하고 있다. 1천 평 부지의 공장의 미싱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남쪽 참관단에게 자신을 ‘사장’이라고 밝힌 우범수(53)씨는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씩 일하지만 납품 기일을 맞춰야 하는 이쪽 업무의 특성상 ‘오버타임’(초과근로)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체계도 다층이었다. 급수가 제일 높은 5급부터 1급까지 있다. 매월 작업반별로 우수 노동자 3명을 선정해 인센티브를 준다. 공장 전체의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도 있다. 봉화피복공장의 ‘모델’이 어느 정도까지 일반화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봉조 통일연구원 원장은 “경쟁의 씨앗이 보인다”고 말했다. 북쪽은 평양의 유원신발공장이나 평양화장품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및 그 체계에 대한 질문에 매우 민감해하면서 답을 피했다.
여러 차례 남쪽 자본 유치 의사 밝혀
개방 의지도 곳곳에서 읽혔다. 5월14일 시작된 제10차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엔 지난해보다 많은 12개 나라의 200여 개 업체가 전시 및 참관을 위해 참가했다. 물론 상당수가 중국 기업이고, 전람회에서 소매 고객에게 물건을 팔 욕심으로 나온 곳도 적지 않았지만 북한의 대외무역에 대한 의지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 행사였다. 중국의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도 참가했다.
남쪽 경제대표단엔 많은 기업인들이 참가했다. 특히 세계 2위의 대우조선해양(사장 남상태)과 한국항만기술단(주)(회장 심재근)은 남포항만과 북쪽이 자랑하는 영남 배수리 공장에 대한 투자가 가능한지 검토하기 위해 방북했다. 북쪽은 5월17일 이들의 현장 방문을 배려하는 뜻에서 승합차 한 대를 따로 내줬고, 배수리 공장에서 전체 대표단을 향한 종합 브리핑 이외에 따로 모임을 갖고 면담을 이어갔다. 북쪽 인사들은 여러 차례 남쪽 자본 유치 의사를 밝혔다. 안보와 먹고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바탕 위에서 나오는 자신감으로도 읽혔다.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평양의 전력 사정은 나아졌다는 게 지난해 평양을 방문했던 남쪽 인사들의 공통된 인상이다. 경제의 인프라가 그나마 호전된 것이다. 여기에 핵무기 보유가 가져다준 ‘자신감’이 ‘이젠 경제로!’로 자연스럽게 모아지는 듯했다.
개방 의지가 있다고 해서 개방으로 순조롭게 나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우조선 쪽은 북쪽에 “보장이 있어야 투자를 할 수 있다. 중국과 같은 조건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북한이 그런 조건을 당장 보장해줄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경협이란 이름으로 들어올 수 있는 남쪽 자본을 끌어들일 준비가 안 돼 있는 게 북한의 현실이다. 6자회담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핵 문제 해결의 가닥도 잡혀야 한다. 북-미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하면 자유로운 대외무역은 쉽지않다.
이런 대외적 여건이 좋아지고 개방 의지가 뒷받침된다면 현재 북한 경제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는 전력과 물류 등의 사정도 빠르게 호전될 수 있다. 5월12일 선발대로 도착한 기자단은 다음날 국제호텔인 양각도 호텔 1층 로비 입구의 자동출입문과 엘리베이터가 30여 분 동안 섰다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살림집이 그나마 평양의 밝은 야경을 만들어냈지만, 건물들 사이 도로는 깜깜했다. 공장 가동률이 20~30%에 그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는 것도, 원자재 부족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전력 부족이다.
[%%IMAGE6%%]
판매는 고민 않고 생산만 한다?
여전히 남아 있는 경제 시스템의 경직성도 현재 북한 경제가 처한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평양화장품 지배인은 원료 지원과 현대식 기계 지원을 요구하지만, 기업을 총괄적으로 운영하지 못했다. 원료는 다른 사업 단위에서 중국으로부터 수입해왔지만, 그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중국에서 2005년 4천만달러 이상을 들여 만든 대안친선유리공장의 지배인 또한 원부자재 지원만 요구했다. 남쪽 경제대표단의 내부 사진 촬영마저 금지할 정도였다. 자본과 기업 등 사업 상대방을 대하는 `세련된 태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제관료나 전문가가 아닌 북쪽 인사들이 남쪽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으려다 쉽게 깨지는 것도 이런 이유 등으로 되풀이 되는 문제다. 생산된 제품을 수출할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단지 ‘생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오랜 계획경제에서 비롯된 본질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런 문제는 화장품이나 신발공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봉조 원장은 북쪽뿐만 아니라 남쪽에도 충고를 던진다. “대북 투자에 관심 있는 기업이라면 북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평양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조심스럽게 변화를 모색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방과 체제 안정이란 딜레마에 갇혀 있지만 점점 강하게 개방이란 신호를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거꾸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 ‘구속 연장 재신청’ 당직법관이 심사…검찰 “보완수사 가능”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홍준표 “검찰, 면책적 기소 말고 윤 대통령 석방하라”
“황당 윤석열·김용현 추종 극우에 불안”…다시 광화문 모인 깃발들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오세훈·홍준표-이재명 맞대결 41% 접전…2030 남녀 표심 ‘정반대’
서울중앙지법, 윤석열 구속 연장 불허…“수사 계속할 이유 없어”
귀국한 전광훈 “체포하려면 한번 해봐라…특임전도사 잘 몰라”
[단독] 서부지법, 윤석열 구속심사 전 경찰에 ‘보호요청’ 했었다
인천공항 ‘비상’, 폭설 때보다 혼잡…공항공사 “출국까지 3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