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건 웃음으로 대신”한다지만 검증 폭풍 속 지지율 9%p 하락…박 캠프는 제2·제3의 정인봉·김유찬을 기다리며 강도 높여갈 것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2006년 7월8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가 열리기 전까지 7·26 재보선의 서울 송파갑 공천권은 정인봉 변호사(전 의원)의 손에 있었다. 송파갑은 한나라당 텃밭이다. 나가기만 하면 이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명예 회복’의 순간이 코앞이었다.
‘사법적 검증’결과의 두 가지 길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그는 2002년 6월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공천권을 따기 위해 그는 당에 헌신했다. 2005년 3월 ‘황제 테니스’ 논란 때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엄호에 앞장섰다. 하지만 하룻만인 9일 그의 운명이 갈렸다. 당 공천심사위는 지난 2000년 4·13 총선 당시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에게 460만원에 이르는 향응과 성 접대를 한 것이 언론에서 다시 불거진 정 변호사의 공천을 갑작스레 취소했다. 4년 전 ‘사법적 검증’을 한 번 거친 일이 그의 앞을 다시 가로막았다.
하지만 다 같은 길을 걷는 건 아니다. 국회의원이었던 이명박씨는 1998년 2월 의원직을 사퇴했다. 두 해 전 4·11 총선에서 법정 선거비용을 초과 지출하고, 자신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폭로한 전 비서관 김유찬(현 (주)서울아이비씨 대표)씨를 해외로 도피시키려 1만8천달러를 건넨 범인도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때였다. 그는 그해 6·4 지방선거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4년 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그가 당의 공천을 받는 데 ‘사법적 검증’의 결과가 장애가 되진 않았다.
정인봉 변호사는 2월12일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지닌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전력을 제기했다. 그는 “(이 전 시장의) 반성은 있어도 반박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이 본격화한 ‘검증’ 논쟁이 단순한 말에서, 자료 등 실체를 띠기 시작한 쪽으로 비로소 이동한 것이다. 그가 공개한 것은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관련 판결문과 신문·인터넷 기사였다. 당 경선준비위는 ‘태산명동서일필’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선 이미 수사가 종료돼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더 이상 새로운 자료를 얻을 수 없어 검증 절차를 밟지 않고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법적 검증’은 다시 한 번 이 전 시장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정인봉 변호사는 2월23일 당 윤리위에 의혹을 제기하는 방식 등에 문제가 있었다며 반성문을 제출하고, 3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사이 이와 별도로 2월21일 김유찬씨가 기자회견을 열어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때 ‘위증 교사’(거짓 증언)를 부탁받았고, 그 대가로 1억2500만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1만8천달러와는 별도의 돈이었다. 돈을 받았다는 액수와 일지, 이 전 시장 쪽 변호인이 작성한 참고인 진술조서 등을 증거로 제시했으나, 이 전 시장 쪽은 “선거법 위반 사건은 증거자료가 충분한 사건이었으므로 수사나 재판에 위증이 개입할 소지가 원천적으로 없었다”고 반박했다. 의혹을 제기한 쪽이나 의혹을 받는 쪽에 적지 않은 의문이 따랐다.
이 전 시장은 침묵을 지켰다. 다만 그는 “대응하지 않겠다. 웬만한 것은 웃음으로 대신하겠다”(2월20일)고 짧게 말했을 뿐이다. 앞선 자의 여유라기보다, 자칫 의혹의 불길이 번질지 모른다는 부자의 몸조심이었다.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을 검찰로 끌고 가면서 논란을 지속시키고 확산시키다 대선에 패배한 이회창에게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하지만 ‘검증’은 점점 이 전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2등은 무조건 판을 흔들어야 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와 공동으로 2월21일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7%)에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44.2%로 나타났다. 박 전 대표(22.1%)에 견줘 정확히 두 배의 지지율이다. 하지만 큰 변화가 엿보였다. 앞서 2월6일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53.3%였다. 2주 새 9.1%포인트가 하락했다. 같은 기간 박 전 대표는 0.7%포인트가 빠졌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본격적인 하락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지난해 추석과 고건 전 총리의 중도 탈락을 거치면서 지지율 50%가 넘는 상한가를 쳤던 것이 자체 조정 국면에 접어들고 검증이 겹치면서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표가 반사이익을 보진 못했다. 두 후보의 지지층은 많이 다르다. 되레 진흙탕 싸움은 서로 상처를 준 측면이 강하다. 한 실장은 “이번에 제기된 의혹들이 만에 하나 구체적 사실관계로 입증된다면 지지도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손실 외에도 이 전 시장 쪽의 고민이 크다. 이 전 시장 쪽을 돕고 있는 이성권 의원은 “이 전 시장이 직접 나서서 입장을 피력해야 할지와 재판부에서도 인정한 해외도피 부분에 대한 입장을 규명하고 가는 게 맞는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 언제까지 기다려 줄지 의문이다.
2월2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위치한 박근혜 캠프는 를 돌려보며 한층 여유롭고 활력 있는 분위기였다. 신동철 공보특보는 “검증 국면이 양날의 칼이지만, 긍정적인 측면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박 전 대표가 가장 도덕적으로 준비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보여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들 계산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박 캠프 쪽에선 검증위의 구성을 문제 삼고 있다. 경선의 시기는 가능하면 늦출수록 좋다는 의견을 밝힌 지 오래다. 드러내놓고 얘기하진 않지만, 사석에선 제2, 제3의 정인봉, 김유찬이 나오길 바란다. 이름을 밝히길 원치 않은 박 캠프 쪽의 한 인사는 “2등은 무조건 판을 흔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나 경계하는 것처럼 ‘배후설’에 의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가장 큰 고민은 자력에 의한 반전이 쉽지 않은 걸 잘 아는 상황에서, 막연히 옆집이 스스로 몰락하길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거친 방식의 2라운드가 기다린다
이 전 시장은 대응팀을 꾸려놓고 만반의 준비 태세에 있다. 이제껏 검증 공방이 1라운드였다면 더욱 거친 방식으로 2라운드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검증 공방은 준비 수준이나 예상 방향과 다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큰 게 우리 정치의 경험칙이다. 자칫 조그만 실수로 끌려가는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1등이 유지되는 이상 판이 깨져서도 안 된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 등 몇몇 정치 전문가들은 기업가 출신인 이 전 시장에 대한 “국민들의 도덕적 기대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나라를 이끌 대통령에 대한 도덕적 기대는 결코 작지 않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그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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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공방이 뜨겁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예비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정인봉 변호사와 김유찬씨의 잇따른 의혹 제기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은 2월23일 이 전 시장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과 각각 전화 통화를 해 양쪽 캠프의 의견을 들어봤다.
검증이 계속돼야 한다고 보나.
=무한정 할 순 없겠지만, 하여튼 이야기가 나오니까….
최근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이 빠졌는데.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당연히 빠진다. 이미 지난 1월에 10%포인트가량 빠졌다. 우리의 자체 조사에서는 설 연휴가 지나면서 박근혜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가 상당히 좁혀졌다. 이 전 시장 캠프 내부에서 한 여론조사에서조차도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것으로 안다.
왜 빠졌다고 보나.
=검증의 효과도 있다. 그 다음에 경부운하 같은 공약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도 작용했다고 본다.
박 전 대표가 지지율을 반전시킬 수 있다고 보나.
=충분히 가능하다.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결국 이길 것이다. 박 전 대표는 깨끗하고 도덕적인 후보다. 여권이 박 전 대표를 아무리 공격해도, 공격할 게 없다. 그러니 만날 박정희 갖고서 공격하지 않냐. 이런 것으론 안 통한다. 이 전 시장처럼 이 정권의 네거티브에 무너질 사람이 아니다.
검증 국면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도 빠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건 박 전 대표를 (검증의) 배후로 하는 얘기다. 이 전 시장 쪽에서 지어낸 얘기다. 박 전 대표가 정인봉 변호사나 김유찬씨의 배후라는 얘기인데…. 정 변호사는 우리 캠프가 그렇게 말려도 말을 안 듣는 사람이다. 어쨌든 (법률특보직을) 자진 사퇴하지 않았나. 김유찬씨와의 관계에 자꾸 배후론을 얘기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당 윤리위원회에도 이 문제를 제기해놨다. 그런 식으로 근거 없이 하면 안 된다.
당 검증위원회의 구성을 문제 삼고 있는데.
=당 소속 의원들 누구도 지금 어느 캠프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이 없는데, (후보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겠냐? 의원들 스스로도 굉장히 곤혹스러워한다. 검증이라는 건 우리가 대충 덮는다고 덮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덮어진다면 (검증을) 시작할 필요도 없다. 청와대 등 어차피 가만히 있지 않을 사람들이 있다.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위해서라도 검증은 해야 하는데, 캠프 후보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외부 인사들을 검증위에 참여시켜야 한다. 그래야 국민 상식으로 ‘이건 문제가 있다’ 싶은 것을 철저히 판단할 수 있다. 이 전 시장 쪽도 이런 제안에 반대한 적 없다. 김태호 경남지사도 마찬가지다. 당이 반대하지 않으면 수용될 수 있다. 정인봉 변호사가 했던 방식은 나도 동의할 수 없지만 그 문제의 본질은, (이 전 시장이) 돈으로 매수해서 증인을 해외로 도피시키고 거짓말 편지를 쓰게 하고, 거짓말인 줄 알면서 그걸로 기자회견을 했다는 것이다. 이건 심각한 것이다. 이런 범죄의 본질이 사라지고 없다. 그냥 판결문과 신문 기사를 제출했다고 해서 검증할 가치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 검증위의 첫 번째 판단이었는데, 너무 성급하고 졸속 결정이었다.
검증위가 유야무야 의혹을 덮는다면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검증위가 일단 똑바로 하라는 촉구다. 검증위가 제대로 안 하면 공격할 수밖에 없다. 검증위가 바뀌어야 한다.
검증위에서 서류 접수를 2월24일까지만 받는데.
=한마디로 코미디다. 우리는 서류를 낼 생각도 없고, 내지도 않을 것이다. 검증을 그런 식으로 하는 발상 자체가 빨리빨리 해서 치우자는 거다. 24일까지 서류 접수를 하고, 3월10일까지 (검증)하겠다는 발상에 동의할 수 없다. 24일까지 (검증 관련 서류가) 접수되지 않으면 다 검증된 것이냐? 이 전 시장이 완전히 검증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냐? 그렇게 시한을 정해놓고 하면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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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에 김유찬씨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파악해보라고 요구했는데, 김씨를 고발할 거냐.
=아니다.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다. (김씨의) 그런 주장을 갖고서 자꾸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 않다.
정인봉 변호사나 김유찬씨의 의혹 제기에 큰 틀에서 무대응인가.
=당 윤리위에 정 변호사의 출당 조치를 요구할 생각이었지만, 오늘(23일) 사과한다니 넘어가야지. 사과하면 마무리되는 거다.
박 전 대표의 배후설을 주장하는 까닭은.
=배후가 있는 거 아니냐? 정 변호사는 (박 전 대표의) 특보야 특보. 배후가 없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다.
김유찬씨의 주장을 계속 무시할 거냐.
=최근 김대업씨가 한 번 떴다. 한 인터넷 매체에 ‘자꾸 나를 거론하면 내가 직접 나서서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검증이) 희화화돼가는 거지. 김유찬씨가 한 번 더 나오면 그렇게 되지 않겠나.
어쨌든 검증으로 상처를 입지 않았나.
=조금 있다. 어차피 (지지율) 조정을 받아야 한다. 너무 높았다. 캠프가 태만해질 수 있었다. 박 전 대표도 내려가고 우리도 내려갔는데, 아무래도 우리 쪽이 더 많이 하락했다. 그런 거 일일이 신경쓰면 앞으로 열 달을 어떻게 지내겠나.
검증의 마지막 국면이라고 보나.
=마무리? 그렇지 않다. 검증 자료를 2월25일까지 당 검증위에서 접수한다. 이제 제일 바빠질 시간이다. 다음주부터 박근혜 전 대표의 자료로 일종의 기사 경쟁이 붙을 수 있다. 언론에선 자료가 도착하면 끄집어내서 기사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검증위원회에서 자료 분석을 따로 한다. 말도 안 되는 건 빼버리고 다룰 것이다.
캠프 분위기는.
=우린 박 전 대표에 대한 자료는 전혀 안 낼 것이다. 검증 요구도 안 할 것이다. 정인봉 변호사나 김유찬씨가 낸 자료가 가 있다. 제3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검증 자료는 왜 내지 않기로 했나.
=앞서가는 사람이 어른스럽게 해야 되는 것 같다. 박 전 대표가 어쩌고 이 전 시장이 어쩌고 하면서 진흙탕 싸움이 되면 똑같이 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두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널 수 있다. 그러면 안 되지.
왜 이 전 시장이 직접 나서지 않는 거냐.
=앞선 자의 여유다. 물론 나중에 정리를 한 번 해야겠지. 당 차원의 검증이 다 끝나면 말이다.
캠프의 가장 큰 고민은.
=별로 없다. 우리가 박 전 대표에 대한 검증을 요구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많이 고민했지만, 이제 (안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검증은 필요한 거 아니냐.
=예방약을 맞는 거다. 좋은 거다. 언론이 어차피 검증 모드로 끌고 갈 것이다. 어저께(22일) (김유찬씨의 의혹 제기가) 다 끝났는데, 언론에서는 ‘검증 논란이 격화, 심화되고 있다’ ‘2단계 검증’ 이런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박 캠프 쪽에서 왜 검증에 집착한다고 보나.
=그쪽에선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 거다. 가진 게 없으니까….
앞으로 지지율 격차를 더 벌리는 전략으로 가나.
=이제 지지율 격차를 더 벌릴 필요가 없다. 이젠 ‘민심’에서 ‘당심’으로 행보를 돌려야지.
당에서 경선 후보 등록을 3월 중순으로 당겼는데.
=우리야 좋지. 이제 (박 전 대표는) 꼼짝 못하겠지. 얼떨결에 (당기기로) 합의를 해줬다가, 다시 번복하려고 하는데 그게 번복이 되겠나. 박 캠프는 이제 복잡해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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