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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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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다시 날을 벼린다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뭘 하겠다는 건지, 어떤 시장이 되겠다는 건지 전달하지 못한 한달… 메시지 없는 종합선물세트 공약 넘어 인상적인 컨셉트 만드는 게 열쇠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강금실의 봄은 너무 짧았다. 지난 4월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때부터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기 이전까지였다. 그동안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는 많은 말을 했고 많은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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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닿지 않았다. 50%를 넘나들던 지지율은 30%대로 내려앉아 좀처럼 움직일 줄 모른다. ‘강금실다움’이 사라지고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후보만이 남았다. 냉정하게 보면, 열린우리당의 정당지지도로 회귀하고 있는 과정이다.

초반 ‘이미지 포지셔닝’에 어려움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강풍’은 정치를 접었던 오세훈을 불러들였다.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는 뒤늦게 경쟁에 뛰어들었음에도 강금실을 누를 한나라당의 유일한 카드로 부상했다.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경선다운 경선을 거치면서 지지율을 반등시켰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경선 흥행에 참패했다. 경선 같지 않은 경선을 지나는 동안 강금실 후보의 지지율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5월31일 투표일까지는 20일 남았다. 아직 본선의 초입인데도 벌써 해보나 마나 한 게임이 돼버렸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강 후보는 “5월의 승리는 나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승리를 안겨줄 동력과 계기는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강금실 후보의 고민이 있다.

사실 강금실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강풍’은 그가 정치와 거리를 둬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안으로 걸어들어온 순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비슷한 효과를 누렸던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에 비해 더 불리하게 작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금실 후보 쪽은 이렇게 말한다. 오 후보의 이미지가 언론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면, 강 후보는 인생을 통해 형성됐다고. 하지만 유권자들이 두 사람의 인생을 다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사실관계를 떠나 언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생을 본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좋아한다. 드라마가 있는 후보에게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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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후보 중 누가 더 극적이었는지를 비교하면 오 후보 쪽이 더 강렬하다. 한 사람은 유혹을 뿌리치고 바깥에 머문 반면, 한 사람은 정치를 끊고 나갔다. 2004년 오 후보의 ‘참회록’은 모든 언론의 머리를 차지했다. 안 그래도 투표를 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갖고 있는 한나라당 지지층과의 화학적 결합이, 오 후보에게는 바람막이로 작용하고 있다.

강금실 선거운동본부의 민병두 기획실장은 농담처럼 “다 내 잘못”이라고 말한다. 당시 <문화일보> 정치부장이던 그가 ‘참회록’을 보고 1면 톱기사로 내보냈고 그날 저녁 방송뉴스와 다음날 조간신문들이 다 따라왔다는, 결국 지금의 처지에서 보면 ‘제 발등을 찍었다’는 얘기였다.

두 후보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요소에는 차이가 있다. 강 후보 쪽 핵심인사는 “선거 초반 강 후보의 ‘이미지 포지셔닝’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오세훈 후보는 간명하다. 참신하고 깨끗하다에 대부분이 모아진다. 열린우리당 진대제 경기도지사 후보도 좋든 싫든 전문경영인 출신이라는 것 하나로 모아진다. 강 후보는 강단이 있고, 능력 있고, 똑똑하고, 여성스럽고, 아름답고, 자유롭고…. 점을 찍으면 분산이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좋아했던 이유가 훼손됐다고 느낄 땐 쉽게 지지 철회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치권에 오래 몸담았고 두 차례의 대선을 포함해 크고 작은 선거를 수차례 치러온 이 인사는, 같은 이유로 이미지가 집중된 오 후보의 위험도도 크다고 말했다.

아직 ‘대중의 언어’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래서였나 보다. 열린우리당은 5월5일 ‘검증’을 명분으로 오세훈 후보의 ‘말바꾸기’ 사례를 거론하며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무소신의 전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뚜렷한 선거 쟁점이 없는 마당에 이미지 싸움에서 오 후보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일찌감치 ‘명품·짝퉁’ 논쟁을 시작해 강금실과 오세훈을 구별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네거티브 선거운동 자제’를 의식해 강금실 선거운동본부가 주저하자 우상호 당 대변인 ‘입’을 통해 공세로 전환한 셈이다.

한나라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시장 선대위 나경원 대변인은 “보라색에서 흑색으로 선거전을 바꾼 것이냐. 우리는 정책선거로 계속 가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쪽은 근거 없는 흑색 선전과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후보를 검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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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강 후보 자신과 선거운동본부의 정치적 미숙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민병두 기획팀장은 “후보가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강 후보는 아직 ‘대중의 언어’에 능숙하지 않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쉽고 간결한 말보다는 ‘소통’ ‘진정성’ 등 한 번 곱씹지 않으면 ‘소화가 되지 않는’ 표현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시장의 언어’를 썼다. 같은 이유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비판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지만,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이인제 후보가 장인의 좌익활동 경력을 문제 삼자 “그러면 제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는 간결한 한마디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강 후보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고 결점을 보완해야 할 선거운동본부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텔레비전 토론팀은 당내 경선이 끝날 즈음 꾸려졌다. 문화방송 <100분 토론> 이계안 후보와의 토론에서 “망가진 뒤”였다. 메시지 관리팀도 없었다. 강 후보의 ‘메시지’는 주로 후보자 개인의 역량에 맡겨져왔다. 메시지는 후보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운동 현장에서 후보가 내뱉은 말들은 지지를 철회하거나 지지 정도를 강하게 만든다. 따라서 후보의 메시지 관리는 선거운동의 핵심임에도 강금실 선본에서 체계적으로 이를 관리하는 주체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정책 분야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노출됐다.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선거컨설턴트 등 전문가들은 강 후보의 지지도 정체 혹은 지속적 하락의 이유로 정책의 일관성 부재를 꼽으면서 그동안의 선거운동을 “잃어버린 한 달”이라고 지적했다. 강금실 후보가 뭘 하려는지, 어떤 시장이 되겠다는 것인지, 서울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상’이 여전히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의 등장 이후 강 후보는 교육과 복지, 용산 개발 등 수많은 공약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내놓았지만 정작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만한, 강 후보의 이미지를 강화할 만한 것은 없었다”며 “여러 정책들의 근저에 깔려 있는 흐름, 전체적 콘셉트가 무엇인지 드러내 보여주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굳이 찾으려 애쓴다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 후보의 출마 시점엔 ‘패러다임 전환’으로 표현됐다. 기존의 정치, 관행, 문화 등을 모두 바꾸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정책을 관통하는 콘셉트는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책 생산 단위인 ‘시민위원회’도 더는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름다운 패배가 가능하려면…

강금실 선거운동본부의 한 핵심인사는 “열정과 능력 사이에 괴리가 컸던 것 같다”며 “열린우리당의 후보로 확정된 만큼 인큐베이터 단계를 벗어나 제대로 진영을 갖춘 뒤에는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선거운동이 ‘강금실다움’을 잃어버린 과정이었다는 자성 속에서, 다시 날을 벼리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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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강금실 후보를 평가했던 잣대를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에게 들이대도 10~20% 지지율 격차가 날 정도로 선거운동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강 후보가 △개혁세력을 자임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무능에 대한 유권자의 실망감과 지지 철회 △전통적인 지지 텃밭의 부실 등 전체적인 선거 구도의 불리함을 안고 있기 때문에, 지지율 정체의 책임을 강금실 후보와 선거운동본부에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돈 공천과 성추행 파문 등 잇단 악재에도 당과 후보들의 지지율에 변동이 없는 것과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김재원 한나라당 기획위원장은 “명품 공장에서는 불량품이 발생하면 즉시 리콜(수사 의뢰)하고 사과하면 되지만, 불량품 공장에 강금실 전 장관 같은 명품을 데려온다고 공장 전체가 뜨기는 어렵다”고 비유했다.

강금실 후보는 지난 3월 초 <한겨레21>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패배라도 좋다”고 말했다. 정치권에 익숙한 표현으로 하면 “지더라도 선거운동에서는 이겨야 한다”는 정도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선거 구도가 강 후보에게 유리하게 바뀔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 강 후보에게 가장 시급한 숙제는, 그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는 유권자들에게 투표장에 가야 할 이유, 강 후보를 지지해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래야 아름다운 패배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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