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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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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의 벽, 민주노동당은 초조하다

등록 2006-03-18 00:00 수정 2020-05-03 04:24

2012년 집권전략 디딤돌로 삼기엔 ‘아직은 먼 당신’ 지방선거
시민운동단체적 이미지나 열린우리당 지지자와의 교차 등 부담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은 정당이다. 정당은 정치상의 이념이나 이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잡아 그 이념이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 단체다. 시민사회단체와는 격을 달리한다. 2004년 총선에서 지역구 2석을 포함해 모두 10석을 얻어 위풍당당하게 국회에 입성한 민주노동당은, 2012년 집권을 목표로 내걸었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 2008년 18대 총선을 디딤돌 삼아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정권 노리는 정당처럼 보인다” 27.4%뿐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을 비웃는 이들을 향한 노회찬 의원의 항변은 설득력이 있었다. “노동운동을 시작할 때 87년 대항쟁 같은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했을 때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의회에 진출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모든 일들이 다 이뤄졌다.”

2012년 집권전략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희망을 키워가기 전에 위기가 닥쳤다. 조승수 의원(울산 북구)이 2005년 9월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제4당으로 밀렸다. 정당 지지도에서 민주당을 앞설 뿐이다. 2004년 총선 전 13%대를 유지하던 당 지지율은 총선 직후 20%를 웃돌 정도로 치솟았으나,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 각인되지 못한 채 현재는 9%를 오르내린다. 정파 간의 갈등 양상은 여전하고 당의 정체성을 우려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튀어나온다. 첫 디딤돌인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현주소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런 고민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지난해 10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한 조사에서 민주노동당을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성격이 강하다”는 응답은 27.4%에 불과했다. 반면, “체제 비판적인 시민운동단체의 성격이 강하다”는 응답이 62.9%로 나타났다. 민주노동당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는 아닌 것 같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지지층만을 대상으로 추려보면 ‘시민운동단체의 성격이 강하다’는 응답이 70%로 오히려 더 높아졌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한귀영 연구실장은 “부유세,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기존 정치 담론에서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이슈를 내걸면서 이슈 파이팅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이를 현실적인 정책으로 연결시키는 데는 상당한 한계를 보인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은 반면 시민운동단체의 이미지가 깨끗하다는 점에서 이같은 인식이 민주노동당에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진보정당으로서 선명한 노선, 기성 정치 담론과는 다른 독자성을 유지하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를 정책과 노선을 홍보하는 장으로 삼기에 민주노동당의 갈 길이 너무 바쁘다. 당선 가능성을 높여야 하고 정치적으로 열린 공간을 통해 사람을 키우고 다음 선거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인식의 높은 벽을 넘어 비판세력이 아닌 대안의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 5·31 지방선거를 앞둔 민주노동당의 첫 번째 고민이다.

부담스러워라, 강금실의 서울시장 출마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풀뿌리 판갈이’를 목표로 한 민주노동당의 두 번째 고민은 최근 9% 안팎에서 정체된 지지율이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한 김종철 전 최고위원은 “한마디로 진보가 뭔지 보여주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이 벌어졌을 때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 손만 들어주고 말았다. 수구세력들이 학교 문을 닫겠다고 반발했을 때 ‘국유화하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했다. 부유세나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은 사회주의적인 정책이다. 자본주의적 삶과는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인데 우리 내부에서도 격동과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당원 중심의 정당이라는 장점이 오히려 대중과의 소통에는 소홀한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했다. 역사상 첫 원내 진출은 ‘당직·공직 분리’ 원칙에 묶여버렸다. 그나마 인지도가 높은 ‘스타급’ 의원들은 최종 당론 결정 권한을 가진 당직(대표·최고위원)을 겸직할 수 없었다. 대중의 지지는 차갑고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민주노동당의 원칙적인 입장은 대중과 몰입할 대상들의 소통을 차단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민주노동당의 ‘대주주’ 격인 민주노총의 신뢰도 추락은 여과 없이 민주노동당의 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당선 가능성이 낮더라도 서울을 비롯해 16곳 광역단체장 선거에 모두 후보를 내어 선거를 치르고 기초의원 당선에 전력투구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당 지지도를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세 번째 고민은, 열린우리당의 지지층과 민주노동당의 지지층이 일정 부분 겹친다는 점이다.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 선거에서는 3번(열린우리당), 정당투표에서는 민주노동당(12번)을 찍은 층이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이다. 민주노동당 지지층 가운데, 열린우리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에 공들이고 있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절반은 우리 사람”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강 전 법무장관이 제3자 개입금지 혐의로 구속됐던 권영길 의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조승수 전 의원을 포함해 여러 노동운동가의 변호를 맡은 바 있어, 민주노동당과의 인연이 간단치 않다. 그러다 보니 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어떻게 ‘강금실 효과’를 차단할 것인지가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김혜경 후보는 “강 전 장관은 귀족을 대변하는 여성인 반면 나는 서민을 대표하는 여성”이라고 부각시켰다. 김종철 후보는 아예 공개 서신을 띄워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노무현 정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으니 출마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문옥 전 감사관을 후보로 내세웠지만 2.5% 득표에 그쳤던 민주노동당은, 현재 거론되는 열린우리당의 다른 후보군들에 비해 민주노동당의 표를 잠식할 가능성이 큰 강 전 법무장관의 출마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법안·FTA 사안에서 반경 확대 기대

2012년 집권전략의 첫 디딤돌로 상정한 5·31 지방선거까지 민주노동당이 넘어야 할 산들이 많지만, 악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오는 4월로 처리가 미뤄진 ‘비정규직 법안’이나 여러 계층의 이해가 걸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정부와의 힘겨루기 국면에서, 민주노동당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하기에 따라, 대안의 정치세력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수도, 다른 정당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지지도를 끌어올릴 수도 있다. 물론, 그 역도 가능하다.


김혜경이냐 김종철이냐

3월18일 서울시장 후보 선출 앞두고 ‘경륜’ 대 ‘정책통’ 대결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3월18일 서울 중구 구민회관에서 확정된다. 투표할 권리를 지닌 당권 확정자는 9600여 명. 이들은 14일부터 닷새 동안 인터넷 투표나 지역위원회(옛 지구당) 방문 투표를 하거나 ‘선출대회’에서 투표해 서울시장·시의원 후보자를 뽑는다. 열린우리당이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입을 쳐다보고 있고 한나라당은 그런 열린우리당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먼저 후보를 결정하는 셈이다.

서울시장 후보에는 김혜경(61) 전 대표와 김종철(36) 전 최고위원이 나섰다. 정치·경제, 사회·문화 분야로 나눠 두 차례의 정책토론회를 벌였지만, 두 후보의 정책적 차이는 그다지 부각되고 있지 않다. 이번 경선이 ‘자주파’(NL)와 ‘평등파’(PD)의 정파 간 대결로 치러져온 민주노동당의 기존 선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두 후보 모두 평등파이거나 그에 가깝다. 또 공공의료·보육·교육과 임대주택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생태·환경 서울 만들기 등 민주노동당의 기존 정책 노선에 충실하기 때문에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 어떻게 표현하느냐 정도의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누가 본선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가 승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김종철 후보는 본선에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30대의 돌파력과 설득력을 강조한다. 대변인과 중앙연수원장을 지내면서 당 정책의 이해도가 높은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김혜경 후보에 비해 일찍부터 정당에 몸담아 현장운동 경험이 빈약하다. 다른 정당의 후보에 비해 젊은 점이 차별성이 있겠지만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김혜경 후보는 빈민운동에 평생을 바쳐온 경륜과 당 대표를 지낸 무게를 강조한다. 귀족 후보 대 서민 후보의 대결을 부각시키면서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정책을 놓고 다투는, 순발력이 필요한 TV 토론에서 약점이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이번 경선에서 특이한 점은, 평등파 혹은 평등파에 가까운 두 후보 가운데 서울시장 선거에 나갈 ‘본선 후보’를 고를 힘이 평등파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은 평등파가 자주파에 비해 우세하긴 하나, 평등파 성향의 두 후보의 대결인 만큼 ‘키’는 자주파에 있는 셈이다. 당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자주파와 각을 세웠던 김종철 후보나,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자주파의 몇몇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했던 김혜경 후보 모두, 후보를 내지 않은 자주파의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누가 덜 미운지를 고르는 선거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나온다. 자주파에 속하는 한 당직자는 “당의 현재를 보고 투표하느냐, 미래를 보고 투표하느냐 고민 중인데 투표를 포기하는 당원들이 많은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후보를 고르는 데에도 정책과 후보의 자질, 본선 경쟁력 외에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민주노동당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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