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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강한 ‘남성의원 연대’

등록 2006-03-10 00:00 수정 2020-05-03 04:24

최연희 의원 성추행에 결연한 의지 보이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속내
한쪽에선 처벌 외치지만 다른쪽에선 눈치보며 동정론과 ‘원죄론’ 확산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한나라당에서 최연희 의원의 지난 2월24일 기자 성추행을 바라보는 시각은 ‘의외로’ 다양하다. 당 밖에서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지”라고 거의 예외 없이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지만 당 내부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반응의 양태는 좀 복잡하다. 이같은 내부 지형 탓에 당 차원의 대응도 시원스럽게 한 방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이 먼저 나서 최 의원에 대한 의원직 사퇴 촉구 등 ‘단죄’ 의지를 보이거나 예방대책을 마련하는 등 결연한 의지도 희미하다. 당 한편에서 그래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 의원이라는 온정주의를 바탕으로 한 감싸기가 엄연히 존재하고 또 다른 한편에선 일벌백계 차원에서 의원직 사퇴를 통한 강력한 ‘처벌’이 관철돼야 한다는 주장이 공개, 비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3월2일 의원총회가 누가 나서서 발언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조용한 의총’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누가 성추행에 돌을 던지랴?

“공인으로서 공개된 장소에서 한 공개적 행위를 당이 결코 두둔해선 안 된다. 의원직을 빨리 사퇴하는 것이 당에 대한 도리이고, 이 사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이재오 원내대표)

“한 사람의 훌륭한 사람을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변별력 상실로 인한 부적절한 행위로 인해 죽일 수는 없습니다. 여론재판에 떠밀려 가기보다 이성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본다.”(정의화 의원)

이재오 원내대표 혼자서 총대를 멘 듯 앞장섰을 뿐이다. 오히려 반대편으로 정의화 의원은 2월28일과 3월1일 잇따라 최연희 전 사무총장을 “술 문화의 희생양”이라며 ‘옹호’하는 듯한 글들을 올려 네티즌과 다른 정당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사실 공개된 무대 아래에서 최연희 의원에 대한 동정론은 더욱 폭넓게 존재한다. 영남권의 한 재선 의원은 YTN에서 흘러나오는 최 의원의 성추행 사건 보도를 보면서 “뭘 저런 것을 가지고 왜 그리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같이 술 마신 여기자도 잘못한 것 아니냐”고 떳떳하게 말했다. 성추행에 대한 문제 의식조차 빈약한 것이다. 최 의원이 2월28일 탈당을 하기 앞서 열린 비공개 당 윤리위원회 회의에서도 탈당 권고를 통한 출당 조처를 내릴 것인지를 놓고 의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여론의 흐름과 다소 동떨어진 탈당 권고가 과도한 처분이라는 인식과 반응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옹호론의 요체는 이른바 ‘원죄론’이다. “누구도 돌 던질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5·31 지방선거와 여당과의 대립 관계에서 정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정치공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사태를 더욱 뒤틀어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서울의 한 의원은 “왜 한나라당만의 문제로 정치공세를 퍼붓는지 모르겠다. 남이 안 봤다고 자기가 한 짓은 다 묻어두고서, 신났다고 돌을 던지는 여당 의원들은 먼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는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추가 발언 없이 한발 비켜서 있는 모양새다.

당내 엇갈리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진수희 의원은 “당내 연령대별로 입장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이든 분들은 술문화에 관용적인 게 있는데다 최 의원과 10년 넘게 당 생활을 같이 해오면서 이번 사태의 처리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인지상정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젊은 의원들은 깨끗하게 책임지는 것이 타인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수요모임’과 이재오 원내대표가 소속된 중도파 의원들의 ‘발전연’은 3월1일 동반 등반을 마친 뒤 “최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책임이고 도리”라고 발표했다.

“한나라당 기득권 정서 드러난 것”

최 의원에 대한 도덕적·법적 처벌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원인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성권 의원은 “소수자,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익숙하지 않은 한나라당의 기득권 편향이 몸에 밴 정서가 무의식중에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김명주 의원의 생각도 비슷하다. “한나라당엔 특히 고급 공무원, 판·검사, 기업가 등 이른바 접대받는 것에 익숙한 의원들이 많다. 접대문화와 여성을 대하는 의원들의 태도와 생활습관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단 한나라당의 문제만도 아니다. 한광원 열린우리당 의원이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세상의 섭리”라며 최 의원을 동정하는 듯한 발언을 해 곤욕을 치렀다. 비뚤어진 ‘남성연대’ 의식이 여야를 막론하고 곳곳에서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최연희 의원이 저지른 성폭행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과 발언이 한나라당 내에서 여성 의원들의 몫으로 비쳐지는 것도 같은 문제를 보여준다.

최연희 개인이 아니라 남성들을 중심으로 뿌리 깊게 형성된 잘못된 음주문화와 성문화에서 사건이 비롯됐다는 지적도 재발 방지 차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혜훈 의원은 “특정 집단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모든 당에 투영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의원뿐 아니라 고위 공직자이든 교수든 이번 사건과 같은 경우가 적발되면 강력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정 의원과 진수희 의원도 같은 문제 인식과 접근법을 내놨다. “본질적으로 정치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음주문화와 접대문화를 돌아봐야 한다. 최 의원의 사퇴와 당 내부에서 자정 결의를 하고 법을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이 시대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자체 처벌의 전례 한번도 세우지 못해

최근 허태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성추행범의 5·31 지방선거 공천을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3월 말 자정 결의를 위한 당 소속 의원들의 해병대 입소 훈련도 예정하고 있다. 지난 1년여 사이 곽성문·김태환 의원의 골프장 폭행 사건, 주성영 의원과 임인배 의원의 술집 여주인과 국회 여직원에 대한 성 비하 발언 등 당 소속 의원들의 윤리적 문제가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호구지책으로 내놓은 것들이다. 그러나 늘 구호만 있었다. 당이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 의원들을 자체적으로 먼저 나서 ‘처벌’한 전례를 아직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최연희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을 대신해 국회 윤리위원회도 그 몫을 해주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묵은 때를 털어내고 갈 수 있을지 여전히 회의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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